요 10:1-10 나는 양의 문이다.

예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24절기(태양의 위치를 기준으로 계절을 구분한)는 농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4월을 예로 들면 4일은 청명(淸明)입니다. 청명이 되면 농사를 짓기 위해 논과 밭둑을 손질하고 못자리판을 만듭니다. 20일은 곡우(穀雨)입니다. 곡우가 되면 봄비가 내려 여러 가지 작물에 싹이 트고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우리나라는 농사를 지었으나 이스라엘은 양을 치며 살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수백에서 수천 평의 농사를 지었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십에서 수백 마리의 양을 쳤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가족모두 달라 들어 농사를 짓고 양을 쳤습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경에서 야곱의 아내 라헬(창29:10)도 모세의 아내 십보라(출2:16)도 양을 쳤습니다.

농부나 목자나 해가 뜨면서부터 일이 시작됐습니다. 해가 뜨면 농부는 농기구를 챙겨서 논으로 나갑니다. 목자는 양떼를 이끌고 푸른 풀밭으로 나갔습니다. 농부는 해가 지기 전에 일해야 하기 때문에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땀 흘려 일합니다. 목자는 어디선가 들짐승이 나타날지도 모르기 때문에 양떼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습니다. 한참 일하다보면 목이 마릅니다. 농부는 그늘로 나가 막걸리로 목을 축입니다. 목자는 양떼를 이끌고 시냇가로 갔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합니다. 농부는 농기구를 챙기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목자는 배가 불룩해진 양떼를 이끌고 우릿간으로 들어갔습니다. 농부는 짚을 엮어서 초가집을 만들고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담을 쳤고 싸리나무로 대문을 만들었습니다. 목자는 동굴이나 아니면 공터에 돌이나 나뭇가지로 담을 두르고 담 위에 가시를 올려놓고 우릿간을 만들고 양떼가 드나들 수 있는 조그만 문을 만들었습니다. 밤이 되면 농부는 다리를 쭉 펴고 잠을 잤습니다. 그러나 목자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목자는 담 밖을 어슬렁거리는 들짐승을 신경 써야 했고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입구를 단단히 지켜야 했습니다. 농부는 낮에는 다른 농부와 함께 일하다가도 밤에는 자기 집으로 가서 따로 잤으나, 목자는 낮에는 자기 구역에서 따로 풀을 뜯기다가도 밤에는 다른 목자의 양떼와 함께 재웠습니다. 양떼를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성경에서 야곱은 외삼촌의 양떼를 지키기 위해 낮에는 더위에 허덕였고 밤에는 추위에 떨면서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다고 말씀합니다.(창31:40) 성경을 보면 목자가 양떼를 먹이고 지키듯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먹이시고 지키신다고 생각했습니다.(시23:1, 77:20, 79:13, 95:7, 100:3, 사40:11, 겔34:11-31)

이처럼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흔하게 보는 목자와 양과 우리를 비유로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비유라기보다는 ‘알레고리’라고 해야 적절합니다.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목자는 하나님입니다. 목자는 지팡이를 가지고 양떼들의 길을 인도하고 막대기로 들짐승의 공격을 막아냅니다. 목자가 지팡이로 길을 인도하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고 있을 때에 길을 인도해 주시고, 막대기로 보호하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보호해 주십니다./

양떼는 교인들입니다. 양떼는 목자를 필요로 합니다. 첫째, 양은 시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개와 고양이는 길을 잘 찾아가는데 양은 눈이 어두워서 길을 잘 찾아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제비와 연어는 방향감각이 좋아 고향을 잘 찾아가는데 양은 길치라 집을 잘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양이 눈이 어둡듯이 우리는 눈앞의 일에만 급급합니다. 그러나 목자는 멀리 볼 수 있습니다. 장기로 말하면 우리는 최하수이고 하나님은 초고수입니다. 우리는 고집을 부리지 말고 우리의 인생 전체를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둘째, 양은 방어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슴도치는 몸을 웅크리면 가시가 돋아나고 스컹크는 가스를 배출하고 달아나는데 양은 들이받을 튼튼한 뿔도 없고 도망갈 빠른 발도 없습니다. 양이 무기력하듯이 우리는 마귀의 공격에 취약합니다. 그러나 목자는 막대기로 들짐승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목자를 떠나지 말고 양떼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품에 머물러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양떼는 목자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양은 시력도 양하고 방어능력도 없지만 청각이 발달되었다고 합니다. 목자는 밤에 양떼들을 함께 재웠다가 아침에 따로 데리고 나갑니다. 양떼가 목자의 휘파람 소리를 알아듣기 때문에 섞일 염려가 없었다고 합니다. 목자가 이름을 부르면 양떼는 주인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라 나갑니다. 목자가 위험하다고 소리치면 양떼는 위험을 감지하고 가던 길을 멈춥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도둑은 누구일까요? 목자는 어디선가 들짐승이나 도둑이 나타날까봐 낮에도 한눈을 팔지 못했고 밤에도 선잠을 자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속담에 ‘열 사람이 지켜도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고 목자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도 도둑을 막아내기 어려웠습니다. 목자가 돌이나 나뭇가지로 담을 두르고 담 위에 가시를 올려놓고 우릿간을 만들고 양떼들이 드나들만한 조그만 문을 만들고 입구를 단단히 지켰지만 도둑은 돌로 만든 담을 슬며시 넘어오거나 나뭇가지를 살며시 헤치고 들어왔습니다. 여기서 도둑은 거짓 선지자를 가리킵니다. 도둑이 우릿간을 뚫고 들어와 양떼를 훔쳐가듯이 지금 거짓 선지자가 교회로 침투하여 교인들을 빼내가고 있습니다. 도둑이 남의 양떼를 약탈하여 자신의 배를 불리려하듯이 지금 신천지 추수꾼들이 교인들을 빼내가고 있습니다. 대형교회는 교인들을 빼가고 개척교회는 교회를 접수하려 합니다. 도둑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들어오듯이(요10:10) 이단들은 신앙생활 잘하는 교인들을 실족시키려고 들어옵니다. 이단문제 전문가에 의하면 우리 포항에도 이단들이 침투하여 포섭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단을 막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어디서 성경공부를 하자고 제안하더라도 함부로 참석하면 곤란합니다. 이번 주 18일(금)에 포항중앙교회에서 [이단 사이비 대책 세미나]를 합니다.

예수님은 양의 문입니다.(10:7) 도둑은 담을 넘어오거나 헤치고 들어오지만 예수님은 문을 통해서 들어오십니다. 담을 통해 드나드는 양떼는 도둑에게 죽음을 당하지만 문을 통해 드나드는 양떼는 목자에게 꼴을 얻습니다.(10:9) 이단에게 속아 넘어가는 교인들은 잘못된 교리에 세뇌되어 결국은 신앙을 잃게 되지만 정통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는 교인들은 신앙이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는 거짓 선지자를 통해서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우리에게 멸망을 안겨줍니다. 비참하게 안겨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풍성하게 주십니다.(10:10) 우리는 담을 넘어오는 도둑에게 미혹되지 말고 문으로 드나드는 예수님을 통해 천국에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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