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7:3-5 내가 무죄한 피를 팔았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염불은 부처님의 이름을 외우는 일이고 잿밥은 부처님 앞에 차려놓은 밥입니다. 이 속담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건성으로 하면서 자기에게 돌아올 이익에 마음을 쏟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열심은 없으면서 예수님을 통하여 출세하려고 욕심을 품은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가룟 사람 유다입니다.

1. 다른 제자들은 갈릴리 출신이었습니다. 지방 출신이었습니다. 유다는 유대 출신이었습니다. 수도권 출신이었습니다.(마10:4) 유다는 우월감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유다에게는 관직으로 이끌어줄 집안도 없었고 사업을 벌일 자금도 없었습니다. 유다는 남보다 큰 꿈과 좋은 머리가 있었습니다. 유다는 어떻게 하면 출세할까 고민하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고시 공부를 했을 텐데 말입니다. 유다가 꿈을 찾아 헤매고 있을 때 나사렛에서 선지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그 선지자는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사람도 고치고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이 꿈을 실현시켜줄 인물인지 알아보려고 찾아갔습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구름같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듯했습니다. 당장 선거를 치른다면 대통령에 당선될 기세였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에게 이력서를 제출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의 번쩍이는 눈빛을 보고 제자로 채용했습니다. 유다는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처럼 기뻤습니다.

2. 다른 제자들은 직분이 없었습니다. 유다는 돈궤를 맡았습니다. 예수님은 세관공무원 출신을 제쳐두고 유다에게 돈궤를 맡겼습니다.(요12:6) 파격적인 발탁이었습니다. 유다는 어린아이가 엄마의 지갑을 털어 가듯이 예수님의 지갑을 털어가 뒷주머니를 찼습니다. 유다는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발을 닦을 때 화가 났습니다.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면 유다의 수입도 짭짤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요12:4-6) 유다는 푼돈은 그만 벌고 목돈을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이 하루빨리 예루살렘에 입성하길 바랐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대통령으로 추대할 것이고 수제자인 베드로는 국무총리가 될 것이고 돈궤를 맡은 유다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각을 총괄하는 총리보다 재정을 총괄하는 장관이 재산을 불리기가 유리했습니다. 유다는 신분 상승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구름에 떠 있는 기분으로 살았습니다.

3. 그러나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국정 청사진은 펼쳐 보이지 않고 종교지도자들에게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다는 처음에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으나 예수님께서 세 번씩이나 말씀하시자 정말이지 싶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허무하게 돌아가신다면 예수님을 계속해서 따라다녀도 얻을 것이 없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통해 꿈을 실현해 보려던 계획을 접고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유다는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간파했습니다.(마26:3-5) 종교지도자들은 로마제국과 결탁하여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백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예수님을 잠재적인 경쟁상대로 생각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모의하였습니다. 만약 유다가 예수님을 버리고 종교지도자들의 편에 선다면 유다의 앞길이 열릴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유다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예수님과 보낸 3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유다는 예수님과의 ‘인간적인 정’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출세’를 선택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유다는 현실주의자였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버리고 종교지도자들의 편의 서기로 결심했습니다. 유다는 출세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정한 사나이였습니다. 유다는 종교지도자들을 찾아가 예수님을 넘겨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반색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노예 한 사람의 가격인 은전 서른 냥을 셈하여 주었습니다.(마26:14-16) 유다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눈치 빠른 종교지도자들은 서른 냥은 착수금이라고 얼버무렸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일이 끝나면 더 많은 돈과 함께 관직까지 내어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거래는 성사되었습니다. 한쪽은 돈과 권력을 얻고, 다른 한쪽은 정적을 제거하고. 양쪽 다 최상의 거래였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넘겨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습니다.

4.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감돌았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유다는 순간 뜨끔했습니다. 제자들은 저마다 걱정이 되었습니다. “주여, 나는 아니지요?” 제자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주님은 예수님은 메시야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배신자가 누구라고 구체적으로 지목하지는 않았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떠보았습니다.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유다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안다는 표정으로 유다를 바라보았습니다. 유다는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일을 늦추었다가는 발각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마26:17-25) 예수님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 3명의 제자들만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유다는 재빨리 이 사실을 종교지도자들에게 알렸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칼과 몽둥이로 무장한 군인들을 보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유다는 입을 맞추는 사람이 예수님이라고 일러두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알아보고 태연하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유다는 예수님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배신의 입맞춤이었습니다. 이것을 신호로 하여 군인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선선히 붙잡혀 가셨습니다.(마26:47-56)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사형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시켰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공회를 열고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하였습니다. 공회는 사형은 선고할 수 있었지만 집행은 로마제국의 총독이 할 수 있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에게 반역죄를 씌웠습니다. 유다는 그제 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유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유다는 종교지도자들을 찾아갔습니다.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종교지도자들은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달랐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종교지도자들은 쌀쌀맞게 응수했습니다. 유다는 종교지도자들에게 이용당했음을 깨달았습니다.(마27:3-4) 유다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유다의 허황한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다는 은전을 성전에 내동댕이치고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유다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유다는 너무도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습니다.(마27:5) 유다는 출세를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다녔으나 비참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용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출세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다 자신이 친 덫에 자신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성공의 수단으로 삼는다면 유다처럼 실패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신앙의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설계해 주십니다. 자신이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려면 힘들지만 예수님이 우리의 인생을 열어주시면 지름길로 갈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두 번 장담하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철저히 회개하였고 하나님께서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잘못을 후회하였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유다는 자포자기 하여 자살하였습니다. 우리도 베드로나 유다처럼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죄를 지었을 경우 부모가 속 썩이는 자녀가 뉘우치고 돌아오기를 바라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십니다. 돌아오면 부모가 자녀를 용서하듯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로서 맞아주듯이 하나님도 우리를 자녀로서 맞아주십니다. 우리도 혹시 죄를 범했더라도 회개하고 돌아와 하나님께 쓰임 받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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