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은 사람은 한번 태어나서 한번 죽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현세적인 만족을 추구합니다. 인생을 즐기다 가려고 하죠. 그러나 성경은 사람은 한번 태어나서 두 번 죽는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서 9장 27절을 통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사람이 육체적으로 한번 태어나서 육체적으로 한번 죽고 유황불이 활활 타오르는 불못에 던져져서 영적으로 또 한 번 죽게 된다고 말씀합니다.(계20:14) 불못은 죽지도 않으면서 영원토록 밤낮으로 괴로움을 당하는 곳입니다.(계20:10) 성경은 두 번째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두 번(거듭) 태어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요한복음 3장 5절을 통해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물은 육체적인 출생을 성령은 영적인 출생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거듭 태어나게 되는 겁니다. 거듭난 사람은 육체적으로 한 번 죽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한 번 태어난 사람은 불못에 던져져서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하지만 두 번 태어난 사람은 깨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믿다가 죽은 사람을 잠을 잔다고 표현합니다.(마9:24,막 5:39,요11:11-14,행 7:60,고전 15:51-52,살전4:13-17,벧후 3:4) 예수님은 나사로를 자다가 깨어난 사람의 시범 케이스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의 성인 남자들은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매 년 세 차례씩 예루살렘을 방문했습니다.(출23:14) 예수님도 12살 때부터 예루살렘을 방문하셨습니다.(눅2:42)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실 때마다 동쪽으로 3Km 떨어진 베다니 마을에 들르셨습니다. 베다니 마을에는 언니인 마르다, 여동생인 마리아, 그리고 나사로 이렇게 삼남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오라버니’인 나사로가 오빠도 되고 남동생도 된다고 말합니다. 정황상 남동생으로 사료됩니다만 우리말 성경에 오라버니라고 나왔으니 오빠라고 여기겠습니다. 예수님이 방문하시면 천한 종이 대야에 물을 담아 발을 닦아주었습니다. 오빠인 나사로는 예수님의 머리에 감람유를 붓고 볼에 입을 맞추고 포옹을 하고 귀한 손님으로 환영하였습니다. 언니인 마르다는 음식을 장만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여동생인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정신을 빼놓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삼남매는 예수님을 존경하였고 예수님도 삼남매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인 나사로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빠가 병들었으니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로의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병이라며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가지 않으셨습니다. 나사로는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더운 나라라 시신이 빨리 부패하기 때문에 당일 장을 치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산 중턱에 있는 석회암 바위를 파서 동굴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물로 깨끗이 씻기고 냄새가 나지 않도록 향유를 바르고 천으로 둘둘 감싸고 세마포 수의를 입혔습니다. 동굴 무덤은 맷돌같이 둥근 돌로 굴려서 막고 시루떡을 찔 때 김이 새지 않도록 밀가루로 붙이듯이 점토로 동굴 틈새를 봉인하였습니다. 일 년이 지나 살이 썩으면 무덤 문을 열고 들어가 뼈를 추려서 유골함에 넣고 무덤 벽에 있는 납골당에 넣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 동안 조문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문상하는 것을 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에 상가는 조문객들로 북적였고 큰소리로 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에 일당을 받고 곡하는 사람들로 시끄러웠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째 되는 날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오셨습니다.(요11:17)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삼일 동안 무덤 주위에 머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나사로는 나흘이 지났기 때문에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그동안 의지하며 살던 오빠가 갑자기 죽자 너무 운 나머지 눈이 퉁퉁 부어올랐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이 조문을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언니인 마르다가 예수님을 영접하며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 이다.”(11:21) 마르다는 예수님이 오빠를 살려주시지 않아 못내 아쉬웠습니다. 예수님이 마르다를 위로하셨습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11:23) 예수님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11:24) 마르다는 오빠가 나중에 살아날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 예수님은 부활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아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이신 예수님을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동생인 마리아를 부르셨습니다. 마리아도 아쉬움을 쏟아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 이다.”(11:32) 마리아도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가 우는 모습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우셨는지 아니면 믿음이 있으면서도 믿음이 없이 행동하는 모습을 보시고 안타까워서 우셨는지 알 수 없지만 예수님도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11:35) 나사로의 무덤에 이르자 시신 썩는 냄새가 풍겼습니다. 예수님은 무덤 문을 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는 썩는 냄새가 난다고 정색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를 보시고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11:40) 물으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르시고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 이다.”하고 기도하시고,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고 부르셨습니다.(11:43) 사람들은 예수님의 얼굴과 동굴 무덤을 번갈아 바라봤습니다. 죽었던 나사로가 손과 발을 베로 동인 채 걸어 나왔습니다. 나사로는 중국 귀신인 강시가 손을 앞으로 내밀고 콩콩 뛰듯이 손과 발이 묶였기 때문에 깡충깡충 뛰면서 나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고 이르셨습니다.(11:44) 나사로의 흐물흐물하던 살결이 어느새 탱탱하게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시면서 첫째, 예수님이 생명과 죽음을 다스리는 권세가 있다고 보여주셨습니다. 사람이 귀로 들어서 얻은 지식은 30%, 눈으로 보고 얻은 지식은 50%, 손으로 만져 보고 얻은 지식은 80%가 기억된다고 합니다.(한국학교발명협회 발명의 길잡이 365일) 예수님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예수님이 부활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아나고 예수님은 생명이기 때문에 살아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시면서 둘째, 예수님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예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시어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고전15:20)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죽음이 찾아왔지만 예수님의 순종으로 인해 생명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시면서 셋째, 우리도 예수님을 믿다가 죽으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 생명의 날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시면서 넷째, 영적으로 자고 있는 우리에게 깨어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자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서 깨어나 도약의 날개를 펴야 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