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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우웬 : 그의 삶, 그의 꿈 - 세계영성의 거장 시리즈 01
마이클 오로린 지음, 마영례 옮김 / 가치창조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사람이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듯이 독자는 누구의 책을 읽느냐에 따라 세계관이 달라진다. 헨리 나우웬은 노인목회에 전념하던 나를 영성목회로 이끌어준 장본인이다. 나는 나우웬의 [예수님의 이름으로]를 읽으면서 예수님의 설교가 서기관들과는 달리 권위가 있었던 것처럼 그의 글은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영혼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느꼈다. 나는 온라인을 검색하며 그의 책을 탐독하였다. 그의 책은 대부분 짧지만 긴 여운이 남는다. 그의 글은 머리에서 나온 이상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나온 묵상이기 때문이다. 그는 심리학자가 아니라 영성 가였다. 그의 책은 대부분 개인적이지만 꾸밈없는 고백이 돋보인다. 그의 글은 자신을 미화하는데 치중하지 않고 내면의 갈등을 털어놓기 때문이다. 그는 지킬박사가 아니라 하이드씨였다. 나는 드아드르 라누에의 [헨리 나우웬과 영성]을 읽으면서 나우웬의 일생과 영적세계를 알게 되었다. 라누에는 나우웬의 저서들에 나타난 그의 영적세계인 하나님과의 관계와 자신과의 관계와 타인과의 관계를 조명하였다. 나우웬에 대해 심층 분석한 책이다. 나는 나우웬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그가 영성분야에 남긴 업적이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삶이 궁금해졌다. 그의 책은 그의 삶을 통해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는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듯이 나의 궁금증을 속 시원히 풀어줄 책을 오랜만에 발견하였다. 나우웬의 멘티인 마이클 오로린이 멘토의 삶과 꿈을 다룬 책이었다. 오로린은 사진을 곁들여 나우웬의 일생을 연대기적으로 추적하였다. 오로린은 나우웬이 짧은 글을 썼듯이 많지 않은 분량으로 그의 인생역정을 그려냈다. 나우웬은 네이메겐 대학교에서 박사 논문이 거절되는 아픔을 겪었다. 나우웬은 예수님이 고향인 나사렛에서 배척을 받으셨듯이 조국인 네덜란드보다 미국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오로린은 나우웬이 자신을 미화하지 않았듯이 그의 허물을 감추지 않았다. 나우웬은 어린 시절부터 심리적으로 불안하였고 자신을 탓하는 수치심이 있었다. 저자는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지만 내 생각엔 업무 리더인 아버지와의 갈등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추론된다. 나우웬이 동성연애자였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솔직담백한 그도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의 메시지를 색안경을 끼고 들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하다고 그가 완벽하지 않고 허물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크게 들어 쓰시지 않았나 생각된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을 통하여 죄로 얼룩진 세상에 희망의 밝은 빛을 비춰주신다. 아무튼 헨리 나우웬은 개신교와 가톨릭을 통틀어 사랑받는 저자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책은 가톨릭에서 출판한 것을 개신교에서 다시 출판하고 개신교에서 출판한 것을 다시 가톨릭에서 출판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그가 가톨릭 신부였지만 개신교 대학교에서 가르쳤듯이 그의 책이 인기가 있더라도 중복해서 출판하는 것은 교회 일치운동을 역행하는 처사다. 이 책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인터넷 가톨릭서점 바오르딸>에 가면 마이클 오래플린의 [하느님의 연인 헨리 나웬]이란 책이 번역되었다. 목차가 다른 것을 보니 아닌지도 모른다. 책을 읽다보니 아쉬운 점이 눈에 띄었다. 번역자는 신학전공자가 아니라 그런지 전문용어 번역에 서툴렀다. 38쪽의 '학교의 교구 목사'는 ‘교목 신부’로 번역하는 것이 나았고, 53쪽부터 나오는 '바티칸 Ⅱ'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번역했어야 했다. 사실 이 정도는 전문용어도 아닌 일반용어가 아닌가? 이외에도 여러 군데서 아쉬움이 남았다. 출판사는 헨리 나우웬의 전기인만큼 부록으로 그의 연표와 작품을 수록하고 가능하면 번역 현황까지 소개했으면 좋을 뻔 했다. 출판사가 작은 수고를 하면 그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그의 책이 더 많이 팔릴 것이기 때문이다. 헨리 나우웬에 대해 알고 싶으면 이 책부터 읽고 나서 그의 작품을 읽으면 좋을 듯싶다. 당신도 나우웬같이 작은 예수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