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9:1-41 세상의 빛이로다.
포항 선린병원에 가면 현관에 ‘하나님은 고치시고 우리는 봉사한다.’는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선린병원측은 병을 고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병원 관계자들은 그저 봉사할 따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15장 26절을 통해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라파’십니다.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치료자이신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을 만나셨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시각장애인들은 안마로 생계를 꾸려갑니다만 예수님 당시의 시각장애인들은 성전이나 시장 근처에서 구걸을 하여 먹고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시각장애인을 불쌍히 보시고 종기가 났을 때 침을 뱉어 밀가루를 고약을 붙여듯이 땅에 침을 뱉어 흙을 개어서 시각장애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각장애인이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었더니 눈이 띄어졌습니다. ‘실로암’은 히브리어 ‘실로아’를 헬라어로 옮긴 말입니다.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실로암 연못은 히스기야 왕 당시에 예루살렘성 밖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기혼 샘에서부터 지하 터널을 뚫어서 물을 끓어왔습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은 실로암 연못에서 기혼 샘의 신선한 물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실로암 연못이 백성들의 목을 시원하게 축여주었듯이 하나님께 보냄을 받은 예수님은 시각장애인의 눈을 시원하게 띄어주셨습니다.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의 이웃들은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이 눈을 뜬 것을 보고 그 사람이다 아니다 논란을 벌였습니다. 사람의 얼굴에 점을 빼느냐 그리느냐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는데 하물며 감겨진 눈이 떠졌으니 얼마나 달라졌겠습니까? 헷갈리겠죠.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이 내가 그 사람이라고 말하자 이웃들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고 물었습니다.(8-10절)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이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고 대답하였습니다.(11절)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은 예수님을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그저 평범한 한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 듣기는 하였지만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의 이웃들은 그 말이 미심쩍었는지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이 어떻게 해서 눈을 뜨게 됐는지 조사해 달라고 바리새인들(유대교 종교지도자들)에게 데려갔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눈을 뜨게 된 경위를 질문하자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은 그 사람이 진흙을 눈에 발라 씻었더니 보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어떤 바리새인은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고 정죄하였고 또 다른 바리새인은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고 변호하였습니다.(13-16절) 정죄한 측은 예수님이 진흙을 이겼고 눈에 발랐고 눈을 뜨게 했으니-일을 했으니 안식일을 어긴 것이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변호한 측은 죄인이 어떻게 표적을 일으키겠느냐-죄인이 아니라고 두둔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의견이 엇갈리자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에게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은 “선지자니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17절)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은 예수님을 그저 한 사람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을 다시 불러서 조사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라고 압력을 넣었습니다.(24절) 바리새인들은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에게 예수님이 선지자가 아니라 죄인이라고 진술하도록 압력을 넣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라.”고 증언했습니다.(32-33절)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은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서 29장 18절(35장 5절과 42장 7절)을 통해 메시야가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율법을 아는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으나 율법을 모르는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은 예수님을 그저 한 사람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이 위협에 굴복하지 않자 유대교에서 출교시켰습니다.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은 예수님께서 육신의 장애를 고쳐주셨으나 바리새인들이 유대교에서 출교하여 마음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육신의 질병과 마음의 아픔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치료자이신 예수님이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을 만나서 “네가 인자를 믿느냐?”고 물으셨습니다.(35절) 인자는 에스겔서에서는 선지자를 인자라 불렀고(겔2:1), 다니엘서에서는 최후의 심판 후에 하늘로부터 와서 권능으로 세상을 다스릴 분이라고 묘사했습니다.(단7:13-14) 인자는 메시야라는 암시이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은 “주여, 그가 누구 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36절) 주여는 당신은 주님이요 나는 종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은 “주여, 내가 믿나이다.”하고 절하였습니다.(37-38절)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은 예수님을 ‘주여’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고백했습니다.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은 예수님을 그저 한 사람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이에서 구세주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 12절을 통해 “나는 세상의 빛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비추는 빛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육체적으로 볼 수 있었지만 예수님을 거부했기 때문에 영적으로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은 육체적으로 볼 수 없었지만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에 영적으로 비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했듯이 지금도 세상은 빛이신 예수님을 거부하며 어둠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한복음 3장 19절을 통해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둠은 죄와 죽음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빛은 용서와 생명을 가져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 12절을 통해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빛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서 42장 6절을 통해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셨고, 이사야서 49장 6절을 통해 “내가 또 너(여호와의 종)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천하 만민을 구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영적인 눈을 떠서 주님의 바램을 충족시켜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