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4:5-42 친히 듣고 앎이라.

어제(2008년 2월 23일)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니 세 여자가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는 기사가 눈에 띠었습니다. 방송인 허수경 씨는 두 번 이혼을 했지만 엄마가 되고 싶어서 남편 없이 시험관 아기를 임신하고 출산했다고 합니다.(남편 없이 아이를 가진 사람을 비혼모라고 하네요.) 허수경 씨는 결혼을 하지 않거나 했더라도 사별하거니 이혼으로 인해 여자 혼자서 아이를 기르는 싱글맘이 되었습니다./ 연기자 최진실 씨는 아들과 딸의 성을 조씨에서 최씨로 변경해줄 것을 법원에 청구했다고 합니다. 가족관계법이 개정되어 최진실 씨처럼 엄마의 성으로 바꾸거나 재혼한 경우 새 아버지의 성으로 변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크리스천 연기자 신애라 씨는 몇 년 전 예은이를 입양한데 이어 지난 1월에 생후 100일 된 예진이를 입양했다고 합니다. 신애라 씨는 고아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는 우리나라에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세 여자의 선택에 관심을 가졌다면 오늘 본문은 사마리아 여자의 선택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여섯 시쯤 물을 길러 나왔습니다.(6절) 요한복음의 여섯 시는 우리나라 시간으로 정오입니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사람을 찜통에 넣고 삶아버리는 시간이죠. 여자들은 찜통더위를 피해 아침과 저녁에 물을 길러 나왔습니다. 여자들은 우물가에 모여서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물가는 오늘날의 인터넷처럼 여론을 수집하고 확대 재생산하고 배포했습니다. 우물가에서 찍히면 동네에서 매장됐습니다. 여자가 우물을 길러 나온 동네는 사마리아 지방의 수가 마을이었습니다.(5절) 학자들은 가까이에도 우물이 있었으나 여자가 멀리까지 물을 길러왔다고 주장합니다.(LABC, 151쪽) 아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이었죠. 여자는 다른 여자들의 시선을 피하고 싶어서 아무도 나오지 않는 정오 시간에,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기를 기대하며 멀리 떨어진 우물로 물을 길러 나왔습니다. 여자는 대인기피증이 있었습니다. 여자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여자는 남성 편력이 심했습니다. 여자는 다섯 번 결혼해서 다섯 번 이혼했고 지금도 다른 남자와 동거하고 있었습니다.(18절) 고대 세계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이관직 교수는 여자가 여러 번 이혼했으나 또 다시 결혼한 것으로 보아 미모가 뛰어나지 않았나 추측했습니다.(이관직, 226쪽) 아무튼 여자는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헐떡이듯이 굶주린 사랑을 채우기 위해 여자는 이 남자 저 남자를 전전했습니다. 그러나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면 오히려 갈증이 일어나듯이 사랑을 채우기 위해서 남자들을 바꿔봤으나 여전히 만족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여자는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고 대답했고 예수님이 “네가 남편이 없다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고 말씀한 걸로 보아 여자는 여섯 명의 남자들을 전전했지만 만족을 누리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자가 남자를 통해 만족을 얻으려던 첫 번째 선택은 실패했습니다. 여자가 실패했듯이 우리도 전철을 밟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보기에 사람들은 연령대에 따라 주요한 관심사가 있는 것 같아요. 10대에서 20대는 이성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시기는 이성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30대에서 40대는 물질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시기는 어떻게 하면 대박을 터트릴까를 고민하는 것 같아요. 50대에서 60대는 명예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시기는 감투를 준다면 사족을 못 쓰는 것 같아요. 여자가 남자를 전전했듯이 우리도 이성과 물질과 명예를 좇아 헤매고 있지는 않는지요? 여자가 여섯 명의 남자를 전전했으나 만족을 누리지 못했듯이 우리도 이성과 물질과 명예를 얻더라도 안식을 누리지 못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에게 또 다른 선택이 있음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여자와 우물가에서 생수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여자가 메시야 곧 그리스도가 오실 줄을 안다고 말하자 예수님은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고 말씀하셨습니다.(26절) 너에게 말하는 내가 메시야 곧 그리스도다. 예수님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기다리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여자는 과거를 알아맞힌 사람이 누군가 궁금했는데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밝히시자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말하고 돌아다녔습니다.(28-29절)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물동이를 버려두었습니다. 물동이는 귀중하고 유용한 물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여자의 관심은 물을 긷는데 있었습니다. 현실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예수님을 알리는데 있었습니다. 전도에 있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세상 부귀영화에 관심이 있었더라도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를 궁리해야 합니다./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동네로 들어갔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여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었습니다. 여자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돌아다녔습니다. 대인기피증 환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다른 사람들을 찾아 돌아다니는 대인접촉증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치유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상한 감정과 억압된 기억에 짓눌려 살았더라도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상처가 말끔히 녹아내려야 합니다./ 동네 사람들은 여자의 말을 듣고 호기심으로 구경나왔다가(30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고(39절)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습니다.(41절) 여자가 예수님과 동네 사람들과의 다리를 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여자가 예수님을 통해 만족을 얻으려던 두 번째 선택은 어땠을까요? 대 성공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여자에게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 신 줄 앎이라.”고 말했습니다(42절). 동네 사람들은 여자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었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스스로 믿게 되었습니다. 여자가 남자들을 선택했을 때는 본인도 만족함이 없었으나 예수님을 선택했을 때는 동네 사람들까지도 만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10장 13절을 통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가 여섯 명의 남자를 전전했다는 도덕적 비난을 받았지만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구원받았을 것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혼혈인이라고 사회적인 차별을 받았지만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구원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14절과 15절을 통해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데 구원을 받으려면 믿어야 하고 믿으려면 들어야 하고 들으려면 전파해야하고 전파하려면 보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보내야 전파하고 전파해야 듣고 들어야 믿고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이 외면하는 사마리아 수가 마을에 들어가신 것도, 대인기피증에 걸린 여자를 만나신 것도, 여자에게 메시야라고 알리신 것도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으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복음을 전하여 처음에는 우리를 통하여 예수님을 믿었더라도 나중에는 스스로 믿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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