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역사기행 - 서해컬처북스 4
요시무라 사쿠지 지음, 김이경 옮김 / 서해문집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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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2002년에 출판되었지만 책에서 저자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좀 더 오래 전에 집필된 책인 듯 하다. 저자는 일본 와세다 대학의 고고학자로 이집트 유적 발굴을 지휘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집트 유적과 역사를 설명한다.  

이집트는 크게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로 나뉜다. 이런 구분은 신왕국 시대의 신관 마네토가 정리한 왕명표를 따르는데 저자는 이 왕명표를 참고하면서 현대에 와서 밝혀진 고고학적 사실을 근거로 이집트 역사를 구성하고 있다. 비록 오래된 책이지만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데다가 이집트에 대한 텍스트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점을 감안할 때 이만한 책이 없을 듯 싶다.

쿠푸왕, 투트시모스 3세, 하트셉수트 여왕, 람세스 2세 그리고 클레오파트라 7세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역사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인물들 뿐만 아니라 기자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에 얽힌 신비와 쿠푸왕의 태양선,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례 사원, 아부심벨 신전 등 이집트 곳곳에 펼쳐진 장대한 고대 유적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책장이 순식간에 넘어간다. 여기에 유적 발굴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흥미를 더한다.

세계적인 유적들을 가보면 아직도 발굴 중인 곳이 많다. 해당 국가의 주도하에 발굴이 진행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해당 정부의 허락을 받은 외국의 고고학자들이 자국의 지원을 받아가며 발굴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발굴의 현장에는 언제나 최첨단 장비와 엄청난 재력으로 무장한 일본의 고고학 단체가 포함되어 있어 부러운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일본의 경제 규모를 우리가 따라잡기는 힘들겠지만 사실 이것은 돈의 문제라기 보다 인식의 문제가 아닐까. 자국의 이익을 위해 유물을 발굴한다는 명목 하에 약탈을 자행하던 서구 열강의 행태를 닮아서도 안되겠지만 우리의 문화유산 뿐 아니라 세계 문화 유산에 대한 관심 자체가 부족한 점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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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독살사건 - 조선 왕 독살설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수수께끼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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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선조, 효종, 현종, 경종, 정조, 고종, 그리고 인조의 아들인 소현세자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들이 모두 독살설에 휘말린 왕들이란 점이다. 조선 27명의 임금 중 무려 8명이 독살설에 휘말렸다는 사실은 500년 전통의 조선 왕조에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사회체제가 붕괴되는 시점 이후 집권한 왕들이다.

도대체 300년 전 조선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조선의 기본 사상은 성리학이다. 조선 개국 공신이었던 정도전 등은 고려의 부패한 불교를 비판하며 국가의 새로운 사상으로 성리학을 채택했다. 하지만 새로운 이념이었던 성리학도 시간이 흐를수록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하며 국가와 민생과는 점차 멀어져간다. 나라를 뿌리째 뒤흔든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이러한 현상은 점점 심해져만 간다. 아래로는 조선 체제의 근간이었던 신분제 사회가 급속히 붕괴되었고, 위로는 왕과 신하간의 권력 다툼이 본격화된 것이다. 이전에는 당쟁이 있어도 왕은 중간자의 입장에서 왕권을 바탕으로 균형을 이루는 세력이었던데 비해 조선 후기로 갈수록 왕권이 약화되면서 사대부들은 왕 자체도 특정 정당의 소속으로 보고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때문에 효종과 현종은 자신에게 충성하는 신하가 아닌 당수인 우암 송시열에게 더욱 충성하는 신하들에 둘러싸인채 왕권 강화를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결국 자신들의 당론과 맞지 않는 왕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명분이 있으면 '반정'을 일으켜 왕을 갈아치웠고, 뚜렷한 명분이 없으면 왕을 '독살'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조선 초기 조선을 강력한 왕권국가로 인식했던 태종과 반대로 조선을 왕과 사대부의 연합 정권으로 인식했던 정도전의 충돌에서는 태종이 승리했지만 오랜 왕조의 역사에서 허약해진 왕권은 사대부들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지 못한채 하나 둘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러한 치열한 정권 다툼이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조선의 지배계급은 자신의 안위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조선은 결국 쇠망의 길로 들어서고 만다. 우리는 흔히 조선왕조 500년의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조선 후기 사회를 조금만 헤집어 보면 곪을대로 곪은 정치의 더러운 이면에 오랜 역사가 반드시 자랑스러운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왕과 사대부들의 정권 다툼으로 날로 피폐해져가던 경제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던 건 바로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조선은 일제에 의해 멸망한 것이 아니라 이미 내부로부터 쇠약해져 언제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중환자였던 것이다.

만약 소현세자가 인조의 뒤를 이어 조선의 왕이 되었거나 정조가 자신의 개혁을 실천할만한 시간이 조금 더 있었더라면 조선의 역사는 지금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정쟁의 와중에서 살아남는 능력까지 보여줬더라면 좋았을거라는 안타까움이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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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욕망
마거릿 크로스랜드 지음, 이상춘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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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5세의 애첩이었던 마담 드 퐁파두르의 삶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원래 제목을 붙이지 않고 뜬금없이 왜 '권력과 욕망'이란 제목이 붙어있는지 이해가 안된다.  

태양왕이라 불리던 루이14세의 뒤를 이어 그의 증손자인 루이15세가 부르봉 가의 왕위를 잇는다. 왕위에 오를 당시 고작 다섯살이었던 그를 대신해 오를레앙공이 섭정을 맡았고 루이15세의 실질적인 통치는 1726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진다. 어린 나이부터 모든 권력의 중심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던 그는 사냥과 여자 외에는 매사에 별다른 의욕이 없었기 때문에 프랑스를 통치하기에 적합한 인물은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의 직격탄을 맞은 건 루이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지만 사실상 혁명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루이15세와 그의 애첩들이었다. 

그의 애첩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퐁파두르 후작부인과 뒤바리 백작부인이다. 마담 드 퐁파두르의 사후 사창가 출신으로 나이든 왕을 매혹시켰던 뒤바리 백작부인은 당시 도핀느였던 마리 앙트와네트와의 불편한 사이로 유명한 인물이다. 마담 드 퐁파두르는 20년 가까이 베르사유 궁전에 머물며 왕의 정부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정치에도 깊이 관여하여 실질적인 왕비의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귀족이 아닌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나 '왕의 여자'가 될 것이라는 예언 하나만을 믿고 왕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야심가 중의 야심가인 그녀의 삶은 분명 흥미로운 이야기거리이다. 단순히 왕의 섹스 파트너로서만이 아닌 정치에 있어서도 자신의 주장을 펼쳤던 그녀는 오스트리아와의 긴 전쟁을 종식시키고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인 마리아 안토니아와 루이15세의 손자인 루이16세를 결혼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녀에 대한 평가는 사치와 향락을 일삼다가 프랑스 혁명의 원인을 제공한 타락한 여성으로 귀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저자는 이러한 일방적인 평가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사실상 여성의 사회 진출이 불가능했던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왕에게 접근함으로써 자신의 꿈을 이루려했던 진취적인 여성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녀가 어떻게 정치에 관여했고, 얼마나 왕에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표피적으로만 다루고 있을 뿐이다. 저자가 주로 강조하는 건 그녀가 그 모든 야심에도 불구하고 루이15세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이야기뿐이라 실망스러웠다.  

게다가 저자의 실수인지 번역자의 실수인지 모르겠지만 앙리2세와 앙리4세의 표기마저 혼동되어 있어 다른 인명 표기의 진실성마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누구보다도 아름다웠고 야심만만했으며 교양있었던 마담 드 퐁파두르의 삶을 다룬 책이 나와서 기쁘긴 한데 좀 더 잘 만들어진 책이었으면 더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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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 왕 이야기 1 - 엑스칼리버
장 마르칼 지음, 김정란 옮김 / 아웃사이더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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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아발론 연대기"라고 하는데 좀 더 익숙한 "아더왕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고 있었다. 하지만 출판사가 망하면서 4권까지만 나오고 출판사를 옮겨 11월쯤 "아발론 연대기"라는 이름으로 전 8권이 재출간 예정이다. 이렇게 좋은 책을 내는 출판사가 망하다니 출판 현실의 열악함은 말하기 민망할 정도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기원후 5세기경이지만 실제 문화적 배경은 11-13세기를 담아내고 있다. 아더는 기원후 500년 경의 실존 인물로 알려져있다. 브리튼 섬을 침략하는 색슨 족을 물리치기 위해 왕들에게 고용된 용병 대장이었다고 하는데 이 시기는 로마 제국 말기, 즉 메로빙거 왕조의 시작 시점과 맞물려있다. 영화 <킹아더>가 그렸던 아토리우스라는 인물은 그런 면에서 신화적 존재의 아더왕보다는 실존 인물 아더에 더 가까운 인물이었으니 영화의 해석이 전혀 생뚱맞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아더왕이라고는 하지만 당시 기준에서의 왕이란 우리가 상상하는 절대 권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인접 지역의 영주 중 가장 강한 존재일 뿐이기 때문에 신화 속에는 수많은 왕들이 등장한다.

 1권의 핵심은 악마의 자식으로 태어난 멀린이다. 브리튼 왕들의 조력자로서 미래를 내다보는 신출귀몰한 이 마법사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시작된다. 멀린의 도움으로 우터 펜드라곤왕의 아들인 아더가 태어나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던 그는 마침내 엑스칼리버를 뽑으면서 브리튼의 왕위를 계승한다. 원탁의 기사, 랜슬롯과 귀네비어 등이 등장하는 장대한 신화가 이렇게 시작된다. 아더왕 이야기에서 왕권은 하얀 여신으로 상징화된다. 아더는 물을 구하러 갔다가 늙고 추악한 검은 마녀에게 키스를 하게 되는데 그녀는 하얀 여신으로 변신하면서 그가 왕이 될 것임을 예언한다. 왕이 되기 위해 그가 엑스칼리버를 뽑는 유명한 장면보다 이 하얀 여신이 왕권에는 더 중요한 존재인 것이다.  

아더왕 이야기는 고대 켈트인의 환상과 기독교 전설의 결합으로 탄생한 신화이다. 그리스 신화에 가려져 우리에게는 덜 알려져 있지만 그리스 신화보다 드라마틱하고, 인간적이고, 어두컴컴하면서도 흥미진진하다. 보티건, 엠리스왕, 우터왕으로 이어지는 아더왕 선조들의 투쟁의 역사와 서정적인 시가 어우러져 신화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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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 1 - 르네상스의 거장
세르주 브람리 지음, 염명순 옮김 / 한길아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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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것저것 손대다가 제대로 이뤄낸 건 하나 없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다빈치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그가 천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그의 천재성이 너무나 다방면에 걸쳐 있고, 그 다방면의 일을 하느라 제대로 끝낸 일이 없다는 사실이 그에 대한 비아냥의 근원이 된다. 하지만 저자는 다빈치에 대해 섣불리 평가하지 않는다. 그저 사생아로 태어나 피렌체에서의 미술 수업을 거쳐 밀라노, 프랑스에 이르는 그의 삶의 여정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모나리자>, <암굴의 성모>등 스푸마토 기법을 이용한 그의 그림들이 주는 신비함 때문에 그는 종종 중세 비밀결사 단체나 음모와 연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의외로 그의 미술 작품은 많지 않은 편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미술이라는 한 분야에만 얽매이기엔 그의 천재성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누구의 평가보다 그가 남긴 노트를 중심으로 다빈치에게 접근한다. 끝없는 호기심과 지적 욕구로 채워진 그의 노트들을 통해 우리는 화가일 뿐 아니라 군사전문가, 건축가 등의 모습을 한 다빈치를 만나볼 수 있다.  

당대의 인정을 받는 천재였지만 평생을 미켈란젤로와 마찬가지로 권력에 자유롭지 못하고 좌지우지 되었던 르네상스의 고단한 예술가의 삶이 측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줄, 자신의 실험적인 발명품을 알아봐 줄 주군을 끊임없이 찾아야 했던 그를 비아냥 거리기엔 그는 삶을 너무나 열심히, 부단히 노력하며 살았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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