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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독살사건 - 조선 왕 독살설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수수께끼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인종, 선조, 효종, 현종, 경종, 정조, 고종, 그리고 인조의 아들인 소현세자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들이 모두 독살설에 휘말린 왕들이란 점이다. 조선 27명의 임금 중 무려 8명이 독살설에 휘말렸다는 사실은 500년 전통의 조선 왕조에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사회체제가 붕괴되는 시점 이후 집권한 왕들이다.
도대체 300년 전 조선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조선의 기본 사상은 성리학이다. 조선 개국 공신이었던 정도전 등은 고려의 부패한 불교를 비판하며 국가의 새로운 사상으로 성리학을 채택했다. 하지만 새로운 이념이었던 성리학도 시간이 흐를수록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하며 국가와 민생과는 점차 멀어져간다. 나라를 뿌리째 뒤흔든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이러한 현상은 점점 심해져만 간다. 아래로는 조선 체제의 근간이었던 신분제 사회가 급속히 붕괴되었고, 위로는 왕과 신하간의 권력 다툼이 본격화된 것이다. 이전에는 당쟁이 있어도 왕은 중간자의 입장에서 왕권을 바탕으로 균형을 이루는 세력이었던데 비해 조선 후기로 갈수록 왕권이 약화되면서 사대부들은 왕 자체도 특정 정당의 소속으로 보고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때문에 효종과 현종은 자신에게 충성하는 신하가 아닌 당수인 우암 송시열에게 더욱 충성하는 신하들에 둘러싸인채 왕권 강화를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결국 자신들의 당론과 맞지 않는 왕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명분이 있으면 '반정'을 일으켜 왕을 갈아치웠고, 뚜렷한 명분이 없으면 왕을 '독살'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조선 초기 조선을 강력한 왕권국가로 인식했던 태종과 반대로 조선을 왕과 사대부의 연합 정권으로 인식했던 정도전의 충돌에서는 태종이 승리했지만 오랜 왕조의 역사에서 허약해진 왕권은 사대부들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지 못한채 하나 둘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러한 치열한 정권 다툼이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조선의 지배계급은 자신의 안위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조선은 결국 쇠망의 길로 들어서고 만다. 우리는 흔히 조선왕조 500년의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조선 후기 사회를 조금만 헤집어 보면 곪을대로 곪은 정치의 더러운 이면에 오랜 역사가 반드시 자랑스러운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왕과 사대부들의 정권 다툼으로 날로 피폐해져가던 경제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던 건 바로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조선은 일제에 의해 멸망한 것이 아니라 이미 내부로부터 쇠약해져 언제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중환자였던 것이다.
만약 소현세자가 인조의 뒤를 이어 조선의 왕이 되었거나 정조가 자신의 개혁을 실천할만한 시간이 조금 더 있었더라면 조선의 역사는 지금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정쟁의 와중에서 살아남는 능력까지 보여줬더라면 좋았을거라는 안타까움이 스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