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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아이들
정희재 지음 / 꿈꾸는돌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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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티베트의 아이들은 오늘도 히말라야를 넘는다. 추위와 배고픔, 감시의 눈초리를 번뜩이는 중국 공안을 피해 부모와 함께, 혹은 마을 사람들과, 때로는 혼자서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를 넘는다. 아이들이라고 히말라야가 더 관대한 것은 아니다. 어른들도 넘기 힘든 그곳을 아이들은 제대로 된 장비나 의복도 없이 단지 자유를 찾아 걷고 또 걸어서 넘는 것이다. 히말라야를 넘어 다람살라에 도착한 아이들은 오랜 기간을 혹독했던 탈출 경험에 악몽에 시달리고, 동상에 걸린 손발을 잘라내기도 하지만 오늘도 아이들은 히말라야를 넘는다.
중국의 티베트 침략과 점령 이후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티베트인들은 티베트를 탈출해 다람살라와 라다크 등에 정착했다. 망명 생활 중 티베트의 문화와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이들은 티베트 어린이 학교를 세우고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 양육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인도에 부모가 있는 아이들 뿐 아니라, 혼자서 티베트를 탈출한 아이들, 부모가 티베트에서 아이를 직접 데리고와 학교에 입학시키는 아이 등, 티베트의 내일을 이끌어 갈 인재들이 티베트 어린이 학교에서 배출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차분하고 간결한 문체로 순수하고 투명한 어린이 마을 아이들의 모습을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그려낸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아이들의 똘망 똘망한 눈망울과 밝은 웃음 소리가 맴도는 듯 하다.
중국의 침략으로 티베트는 땅만 빼앗긴 게 아니라 고유의 문화와 종교를 말살당하고 있다. 티베트의 수많은 승려들을 고문과 박해 끝에 살해하고, 살생을 금하는 티베트인들에게 살생을 강요하고, 티베트 언어의 사용을 금지하는 등 중국의 탄압 정책은 일제 시대에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중단을 촉구하는 중국의 모습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티베트 침략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난을 콧등으로도 듣지 않는 중국. 그들은 지나간 역사에서 도대체 무엇을 배운 것일까.
하지만 티베탄들은 중국인들이 해를 입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티베트를 탄압함으로써 중국인들이 이 생에 쌓는 업보를 위해 기도한다. 성가시게 구는 모기도 그만의 존재 이유가 있을거라며 모기향을 피우지 않고, 영겁의 윤회를 거치는 동안 내 어머니였을지도 모르는 이 세상 모든 생물을 하나하나 소중히 여기는 이들. 그들이 바로 티베탄이다. 이와같이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티베트의 정신은 물질 문명에 찌든 현대인들을 티베트로, 다람살라로 불러들이고 있다.
네팔의 무스탕에서 중국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을 준비하던 티베탄들 앞에 달라이 라마는 다음과 같은 메세지를 보냈다. '폭력을 폭력으로 심판해서는 안됩니다. 군대를 해산하십시오.' 세상의 어느 지도자가 자국 군대를 향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종교라는 이름으로,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난 숱한 전쟁으로 점철된 인류 역사에서 티베트의 존재는 특별하다.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의 독립을 위해 애쓰고, 티베트식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배출되고 있지만 고향 땅을 잃은 이들이 얼마나 타국에서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달라이 라마는 이미 고령이고, 국제 사회는 자국의 이익 외에는 관심이 없고, 티베트의 아이들도 점차 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가고 있다. 한국만 해도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이유로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금지시키지 않았던가.
이 모든 걱정이 그저 기우였으면 좋겠다. 티베트 아이들이 더 이상 히말라야를 넘지 않아도 되기를, 중국인을 위해 기도하는 티베트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에 더 이상의 눈물은 없기를 그리고 티베트가 하루 속히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