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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의 첩자 ㅣ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8
해리 터틀도브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14세기 동로마 제국을 무대로 한 대체 역사 소설이다. 저자는 동로마 제국의 몰락 요인을 끊임없이 국경을 위협하던 아랍인에게서 찾고 있다. 이들이 이슬람이라는 종교 아래 하나로 뭉치면서 제국을 압박했고, 결국 1453년 콘스탄티노플은 오스만 투르크의 메메드 2세에 의해 함락당한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터틀도브의 세계는 '만약 마호메트가 이슬람교를 창시하지 않고, 크리스트교로 개종했다면...'이라는 역사적 가정 하에 출발한다. 그랬다면 제국을 끊임없이 위협하던 이슬람 세력도 없었을 것이고, 동로마 제국의 영화가 1453년에 그런 식으로 끝장나지 않았을 거라는 것이 저자의 가정이다.
실제로 14세기의 동로마 제국은 이미 그 수명을 다해 줄어드는 영토를 속절 없이 바라보고 있는 시기였지만, 저자가 설정한 제국은 아직도 페르시아와 자웅을 겨루는 찬란한 천년 제국이다. 뿐만 아니라 디오클레티아누스에 의해 동로마와 서로마 제국으로 나누어진 이래로 잃었던 이탈리아와 갈리아, 브리타니아 까지 회복하여 고대 로마 제국의 영광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의 주인공 바실 아르길로스는 이러한 제국의 비밀 첩보 요원인 '마지스트리아노스'이다. 로마 군단의 척후병으로 활동하던 그는 야만족으로부터 망원경의 원리를 습득하는 공을 세우고, 제국의 심장부인 콘스탄티노플의 정보부로 출세를 하게 된다. 그 이후 아르길로스의 활약은 눈부시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천연두 백신인 우두 접종을 발견하고, 야만족에게 화약의 원리를 습득하는 한편,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재건 작업의 스트라이크를 해결하고, 점토 도기를 이용한 인쇄술을 도입하며, 와인을 증류시킨 브랜디가 등장하더니 심지어는 수 많은 정교회 신학자들을 제치고 성상 파괴 운동을 말끔히 해결해버리기까지 한다.
저자의 탄탄한 역사적 지식과 이에 활력을 불어넣는 상상력이 흥미롭긴 하지만 불과 몇년 사이에 아르길로스라는 인물을 통해 서양 역사의 주요한 발명들이 언급되어지는 설정은 어딘지 허술하고 어설퍼 보인다. 아무리 모하메트까지 개종시키고, 곧 망할 비잔틴 제국을 위풍당당하게 세워 놓은 상상력이라고는 하지만, 한 사람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을 순식간에 해치우는 주인공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이야기의 무대가 비잔틴 제국이고, 최전성기의 아름다운 도시 콘스탄티노플에 대한 묘사가 매혹적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잘난 주인공 덕에 흥미가 반감되고 만다. 게다가 정치적 의도는 없다 하더라도 이슬람을 역사에서 아예 제거해 버리는 설정을 미국인이 썼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찜찜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