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 양장본
법정스님 지음 / 범우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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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익숙해진 친구들 잘 지내다가 한 학년을 마치고 새로운 학년에 들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일은 내게는 흥분되고 유쾌한 일이 아니라 불편하고 불안한 일이었다. 한참 사춘기를 지나 내 외모와 주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관심과 걱정을 하던 그시절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올라가 적응하는 일은 큰 도전이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운이 좋게도 강하게 나를 이끌어줄 담임선생님과 순수하고 정의로운 친구들을 가까이하면서 1학년을 시작할 수 있었다. 같은 반에 집으로 가는 방향도 비슷해서 1년 내내 붙어다녔던 기억이 난다.  

특히 그중 반장이기도 했던 한 친구가 1학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 내게 책 한 권을 선물해 주었다. 그 친구는 올곧은 성품에 평행봉과 역기로 단련된 역삼각형의 멋진 몸을 가지고 있었다. 2년전에 보았을 때도 여전히 그때의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형이 읽어보라고 해서 읽었던 책인데 꼭 권해주고 싶은 책이라는 말과 함께. 그 책이 법정의 무소유이다. 범우사 문고판으로 나온 당시의 무소유는 생전 처음 듣고본 책이었다. 스님이 쓴 책이니 불교에 관한 것일 테고 무언가 어른들이 읽는 책이라는 어렴풋한 두려움에 읽어가던 그 책의 이야기 하나마다 깊은 울림과 여운을 진하게 느꼈던 기억이 난다. 불교에 관한 책이 아니라 불교를 공부한 사람이 불교적인 세계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소박한 이치를 일상에서 겪는 사소한 일이나 풍경을 통해 풀어놓는 그 글솜씨가 놀라웠다. 무소유하는 삶이 자유롭고 아릅다운 삶이라는 가르침은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할 지침이 되었다. 적어도 마음만으로는.  

법정의 수필집은 몇년을 주기로 계속 발간되었으나 이후 대학 시절에 몇권을 읽었으나 무소유에서 느꼈던 강력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 시절에는 더 현실적이고 더 직접적인 세상을 얘기하는 책들이 강한 자극을 주었으므로. 그리고 세월이 흘러 몇년전에 구입한 책이 "텅빈 충만"이었다. 제목만으로도 무소유와 연속성을 가지는 것으로 짐작되었고 그리하여 무소유에서 느꼈던 감동을 다시 맛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어느정도 갖고 읽어 나갔다. 하지만 법정 스님의 철학과 글솜씨는 이전과 변함이 없이 오히려 더욱 원숙해 졌겠지만 내 몸 속의 울림은 그때만큼 커지지 않았다.  

이제 다시 몇 년의 시간이 흘러 법정 스님이 수필집이 아닌 불교에 대해 좀더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법문집을 냈다는 기사를 접하니 불교에 대한 해석이 어떨까 하는 관심이 든다. 좀더 여유와 마음의 준비가 생기면 한권씩 집어들어야 겠다.  

작년에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 선물받아 읽던 무소유를 딸이 물려받아서 읽었으니 무소유와 이 책을 선물한 그 친구는 내 추억의 책장에서 1번을 차지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설 전날이기도 해서 오늘 그 친구에 안부전화를 했다. 몇년전 동창회에서 십몇년만에 보고 다시 몇년만에 하는 통화였다. 여전히 씩씩한 목소리에 예전에는 우리 참 친했었는데 하는 그 말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다음에는 꼭 전화를 끊으면서 말한대로 저녁에 소주잔을 부딪치며 그 때를 함께 되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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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전산 이야기 - 불황기 10배 성장, 손대는 분야마다 세계 1위, 신화가 된 회사
김성호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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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전산 이야기"는 특이한 경영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일본전산의 슬로건이나 목표는 아주 투박하고 거칠다는 느낌이 들고 심지어는 좀 세련된 조폭세계, 예를 들면 채권추심업체의 사훈으로 더 적합한 것이 아닌가 할 생각이 들 정도다.... 

일본전산이라는 회사는 세계의 모든 모터, 즉 가전제품, 자동차, 로봇 등 거의 모든 종류의 모터를 만드는 회사로 주거래 기업이 애플, IBM, 3M, GE, 노키아, 필립스, 토요타 등 초일류 글로벌 기업들이다. 조립식 장난감이나 선풍기의 모터 정도만 상상하던 나로서는 모터에도 IT산업과 함께 하는 초정밀 초소형 모터시장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사실이 놀랍다. 모든 움직이는 것들에는 모터가 필요하다니 그들의 사업영역은 무한대이다.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사장의 경영철학과 경영방식을 성공스토리와 함께 읽어 나가는데 흥미롭다는 면에서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경영방식중 특히 기존의 내 사고와는 다른 부분이 2장 채찍을 아끼지 않는 리더가 회사를 살린다는 것이다. 그는 아끼는 직원일수록 호통을 치고 혹독한 질책을 가하며 이를 통해 자극을 준다고 말한다. 호통 경영이라고 불리는 이 방식의 핵심은 1) 혼이 나본 사람이 성공한다는 풍토를 보여준다. 2) 좋은 점을 찾은 후에 혼을 낸다 3) 상대에 따라 혼내는 방식을 달리 한다. 4) 눈에 보이는 성과와 관련된 인재들을 중심으로 혼낸다 이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통상적인 생각과 달리 질책은 공개적으로 하면서 질책한 직원에 대한 위로나 칭찬은 사적으로 은밀히 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사장이 직원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몰래 보여줌으로써 직원의 분발을 복돋우는 이런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피터 드러커니 스티븐코비니 데일 카네기니 하는 경영혁신이나 자기혁신을 주제로 하는 경영서적들을 잘 거들떠보지 않는 내게 이런 책들이 점점 눈에 들어오고 감동을 느끼는 걸 보니 점차 의식의 기성세대가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아래는 일본전산이 도약을 위한 시기마다 내걸었던 슬로건이다.

1981년 <우리의 다짐> 

'타협' 금지 

'책임전가' 금지 

'변명' 금지 

1983년 <믿음이 가지 앟는 사원의 조건> 

힘들 때 바로 도망가는 사원 

자주 몸이 아파 쉬고, 지각하며 건강관리 의식이 없는 사원 

쉽게 남의 일처럼 발언하는 평론가 사원 

끝맺음이 어설픈 사원 

쉽게  '하겠다'고 말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원 

1999년 <우리의 철학> 

행동에 있어서는 '스피드' - 경쟁상대보다 두배 빠르게 

생각에 있어서는 '비용' 개념 - 낭비하는 습관, 무리라고 말하는 습관, 기복이 있는 일처리 제거 

경영에 있어서는 '개성' - 어설프게 남 흉내내지 않도록 

 2003년 <신성장 선언> 

경쟁상대를 압도하는 스피드 넘치는 업무 

이길 때까지 싸우는 집단 

신제품, 신시장, 신고객, 3신 전략 가일층 추진

이책의 제목. 

1. 위기에 강한 직원이 회사를 살린다 

2. 채찍을 아끼지 않는 리더가 회사를 살린다. 

3. 조직전체를 휘감은 열정이 회사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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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탄생 - 한국어가 바로 서는 살아 있는 번역 강의
이희재 지음 / 교양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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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신간소개란을 통해서 "번역의 탄생"을 처음 접한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처음 각인한 것은 홉스봄의 자서전 "미완의 시대"의 번역자로서였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가 여자라고 확신했다. "희재"라는 이름이 더 여성적이지는 않은 것 같은데. 어쨌든 그의 프로필을 좀더 세심히 살펴보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고 나서야 그가 선비풍의 멋진 남자라는 걸 확인했다. 특히 한국에서 몇 손가락에 꼽히는 실력과 어쩌면 번역에 관한 철학을 갖추고 있는 전문번역가라는 걸. 

영어로 된 자료를 볼 일이 많은 나는 항상 우리말로 번역할 때 좀더 한국적으로 또는 한국어답게 표현하는 법에 목말라 있었다.  이 책은 이런 내 욕구를 100% 완벽하게 채워주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알게 모르게 영어식 표현에 물들어 있는 우리 글쓰기를 영어와 비교함으로써 한국어의 글쓰기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번역을 통해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기술(아니 이말은 이희재에게는 실례일 것 같다. 따라서 "예술"로 정정)을 통해 우리 글쓰기를 더 완벽하게 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게다가 영어를 조금하는 딸 녀석이 영어와 한글을 번갈아가며 사고해야 할 때 둘 간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분명히 알고 우리 말을 더 능숙하고 아름답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데 아주 유용한 지침이 될 것 같다. 따라서 최소한 한 권의 값으로 두명의 독자는 확보함으로써 책값은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이 책을 주저없이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혼자만 읽어도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지만. 

이 책은 영어사전처럼 책상 위 손닿는 곳에 꽂아두고 두고두고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영어를 한글로 번역 요약하는 것이 업무의 일부분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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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의 풍경 - 고종석의 한국어 산책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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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고종석의 한국어산책: 말들의 풍경”, 개마고원, 2007(2008.9.24)

읽어 나가던 책들의 보유목록이 끊겨 책꽂이를 둘러 보다가 다시 집어든 책이다. 드물게 두 번 읽는 경우인데 막상 목차를 둘러 보니 몇 개를 빼고는 모두 처음 접하는 제목들인 듯하다. 머리에 축적된 지식으로 남기지 못하고 단순히 일독했다는 뿌듯함 자체는 점점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다.

소제목이 와닿는 일부분만을 전철 안에서 다시 읽는다. 다음의 순서로.
1. 김현, 또는 마음의 풍경화
2. 화사한, 너무나 화사한_정운영의 경제평론
3. 임재경, 마지막 지식인 기자
4. 나는 ‘쓰다’의 주어다_김윤식 서문집
5.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
6. 한자 단상_그 유혹적인, 치명적인 매력과 마력
7. 한글, 견줄 데 없는 문자학적 호사

첫째 글은 김현의 글쓰기가 (그의 전부인지 아니면 그의 일부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종석의 글쓰기의 모태이자 이상향이라는 점을, 정운영의 화사한 글쓰기는 어쩌면 화려함을 추구하는 부르주아적 사치일 수도 있다는 점을, 셋째, 한글이 음소문자이자 소리글자로서 세계역사상 가장 과학적이고 “문자학적 호사”를 누리는 글자라는 점을 알려 준다.

이외에도 우리나라의 최고 다작 작가는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라고 스스로 자조하는(!) 책의 서문만으로 또다른 책한권을 만들어 내는 김윤식보다 더 다작의 작가가 고은과 강준만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문법적으로 단정할 뿐만 아니라, 심미적으로도 반들반들 닦인 글을 쓰는 다산 저자가 김정환이라고 평가한다. 그의 책을 읽도록 유혹하는 치명적 표현이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지만 아무나 쉽게 골라내지는 못할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를 서남사람인 고종석은 이렇게 골랐다.(pp.144-149)

하나, 가시내. .... ‘가시내’라는 말에 깊은 울림을 입힌 이로 서남 출신의 시인 서정주가 있다.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콩밭 속으로만 작구 다라나고/ 울타리는 막우 자빠트려 노코/ 오라고 오라고 오라고만 그러면“(입마춤). 내게도 가시내라는 말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정감있게 말할 줄 알던 형이 있었다.
둘, 서리서리. 황진이의 시에서 사랑의 부사로 나오는 단어로 놀라운 상상력으로 시간을 공간으로, 물질로 바꿔놓는 표현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셋, 그리움. 그리움은 결핍의 정서적 효과다. .. 모든 사랑의 시는 그리움이다. 사랑은 결핍과 부재의 상태에서 가장 격렬하기 때문이다.
넷, 저절로. ‘저절로’는 애씀이나 집착을 넘어선, 마음과 몸의 가장 높은 단계이기도 하다. 인위와 자연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이 ‘저절로’의 매력 또는 마력이다.
다섯, 설레다. 설렘은 마음의 나풀거림이다. 설렘이 없다면 생은 얼마나 권태로울 것인가.
여섯, 짠하다. 서남 사람들이 말하는 ‘짠하다’는 표준어 ‘안쓰럽다’와 뜻이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고스란히 겹치지는 않는 것 같다. “짠하다”에는 안쓰러움과 애틋함이 버무려져 있다. ‘짠하다’는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연민의 형용사다.
일곱, 아내. ‘아내’라는 말이 내게 아름답게 들리는 것은 내가 남자이기 때문일 테다.
여덟, 가을. 가을(가을걷이, 추수, fall)은 결실의 계절인 동시에 조락의 계절이기도 하다.
아홉, 넋. 넋에 대한 믿음을 지닌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 그러나 넋이 사라진 세상은 얼마나 허전할 것인가. 얼마나 납작할 것인가.
열, 술. 이 말이 아름답게 들리는 것인지 이 말이 가리키는 물질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인지 섞갈릴 때가 있다. 아무튼 ‘술’이라는 말만큼 들리는 말이 내가 아는 외국어에는 없다. ‘술’의 마지막 소리인 설측음 /ㄹ/은 술의 물리적 성질을, 다시 말해 액체로서의 유동성을, 그 흐름으 본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들린다. .......그리고 두 자음을 이어주는 원순 후설모음 /ㅜ/는, 내게, 술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마시는 것이라는 점을, 또 마시되 예컨대 모음 /ㅏ/가 연상시켰을 수도 있듯 폭음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 있게 느릿느릿 마시는 것이라는 점을 함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이 글을 술한잔 걸친 한밤에 쓴 글이었던지 후기에서는 ‘술’을 빼고 ‘그윽하다’를 보태고자 한다.)

한편 1960년대의 시인 김수영의 경우 「가장 아름다운 말 열 개」라는 수필에서 마수걸이,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총채, 글방, 서산대, 벼룻돌, 부싯돌을 꼽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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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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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 오주석의 옛그림읽기의 즐거움1, 솔, 2005(개정판)

몇 년동안 책에 관심이 뜸했더니 그동안 너무나 유명해진 사람이 있었다. 우리 옛그림 평론가 오주석. 우리 옛그림도 감상하기에 따라서는 이렇게 훌륭할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며, 우리 그림에 대한 자부심도 심어준다.

먼저 나온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보다도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먼저 보았더니 일부 겹치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그래도 그림을 통해 사람을 보고, 사상을 보고, 역사를 보고 이를 아우러는 동양사상의 기저를 파헤치는 작가의 박학이 놀랍다.

특히 읽으면서 가장 깊이 오래 여운이 남는 부분은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부분에서 펼쳐내는 ‘물에 관한 상념’에 관한 논의다.

(pp.38-43에서 발췌)
'고결한 선비가 물을 바라본다‘ 는<고사관수도>. ....세상에 가장 흔한 것이 물이지만 옛사람들은 물에야말로 지극한 도리가 깃들어 있다고 하였다. 서양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 같은 사람은 ’물은 생명의 근원이며 우주의 본질이라고 설파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물이다”라는 말도 남겼다...... 그럼 우리 성현들은.....

물이 우주 삼라만상의 온갖 생성을 이루는 바탕이라는 전통적인 관념은 “관자”의 「수지」에 잘 정리되어 있다. “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만물의 본원이며,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며, 아름다움과 추함, 어짊과 못남, 우둔함과 현명함을 낳는 장본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세상을 다스려 교화시킬 때 그 해답은 물에 있다. 물이 한결같으면 사람들 마음이 바르게 되고, 물이 맑으면 민심이 편안해진다. 한결같으니 더러운 욕심을 내지 않고, 민심이 편안하니 행실에 삿됨이 없다.” 󰡔관자󰡕는 이어서 물이 가지는 주된 미덕과 갖가지 물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인 인간을 삶을 길게 설명하고 있다.


현명한 노자는 󰡔도덕경󰡕에서 물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고루 이롭게 하고서도 다투지 않는다. 그리고 뭇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기꺼이 처하나니, 그런 까닭에 거의 도에 가깝다.”

씩씩한 맹자도 말했다. “흐르는 물이라는 것은 앞에 놓인 구덩이를 하나하나 모두 채우지 않고는 나아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물이 이렇게 큰 바다까지 이르는 과정은 마치 “군자가 도에 뜻을 두고서 덕을 하나씩 이루어나가 결국 원대한 목표에 이르는 것과 같다.”

물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사색은 동양 사상의 원천인 󰡔상서󰡕와 󰡔주역󰡕에 극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첫째, 동양철학의 바탕을 이루는 큰 틀의 하나인 오행을 살펴보면, 물은 수화목금토 다섯 가운데서도 첫 번째로 꼽힌다. 이것을 숫자로 표현하면 만물은 낳는 숫자 1,2,3,45 가운데 1이고, 만물을 이루는 숫자 6,7,8,9,10 가운데서도 첫 번째 6에 해당된다. .....물은 이렇게 시원적 생명의 상징이다. 둘째, 물은 정치의 성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셋째, 물은 문명과 문화의 상징이다. 󰡔주역󰡕의 이치, 즉 동양사상의 근본 이치가 모두 담겨있다는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는 전서에 의하면 각각 하수와 낙수라는 강물 속에서 나왔다고 한다. 하도와 낙서는 성리학에서 우주의 생성과 운행의 원리를 모두 요약해 상징한 심오한 도형이다. 더욱이 우리가 요즘 쓰는 ‘도서(圖書)’라는 단어는 다름 아닌 하도와 낙서의 합성어다. 여기서 하도와 낙서가 갖는 동양 문명사적 중대성과 의미심장함을 짐작할 수 있다. 고대인들이 도서, 즉 인류 문화의 전개를 가능하게 한 문자가 물에서 나왔다고 본 것은 앞서 물을 생명의 원천, 우주의 본질로 인식했던 자연과학적 접근보다도 훨씬 의미 깊은 철학적 상념이라 하겠다. <고사관수도> 속의 선비에게도 독서는 하루 일과 중의 가장 큰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역시 맑은 물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제일 먼저 하도와 낙서를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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