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중국을 찾아서 1 이산의 책 6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김희교 옮김 / 이산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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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역사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 관련 이슈가 온통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다. 정부는 과거의 역사적 과오를 시정하고 공정히 평가하고자 과거사 관련 위원회를 설치해 운영 중이고, 방송에서는 연일 사극이 흘러넘치며, 서점도 시장 수요에 부응하고자 역사서 출판에 여념이 없다. 인터넷 검색 순위에서도 자주 역사문제가 오르내리는데 이를테면 어떤 유물이 발굴되고, 사극의 내용이 어떤 점에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거나, 심지어 역사문제로 인해 대일 대중관계 등 국제 외교가 악화되고 있다는 소식도 종종 들려온다.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이 따로 없다. 역사문제는 각 나라의 정통성뿐만 아니라 때론 이해관계와 직결되므로 영토 다툼처럼 한 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각국의 공식사관 자체가 왜곡으로 치닫곤 한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태왕사신기”나 “주몽” 같은 우리의 사극도 민족의 화려했던 과거를 떠올려주고 민족의식을 일깨우기 때문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지만, 그러한 과도한 애국주의와 민족주의가 역사를 바라보는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시각을 제약한 측면도 없지 않다. 사극과 역사소설은 흥행에 주요 목표를 둘 뿐만 아니라 사실 묘사에서 덜 제약적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들을 쉽게 끌어 모을 수 있지만 역사서는 좀 다른 편이다.

아무래도 역사가들이 지은 책은 사실의 객관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좀 밋밋한 감이 없지 않다. 그것은 대개 밋밋한 사실 나열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극이나 역사소설의 드라마틱한 구성방식과 대조를 이룬다. 그래서 학자들의 역사서는 서점 구석 한 켠에서 먼지에 묻힌 채 몇 년이고 관심을 가져줄 주인을 기다린다. 반면 역사소설은 서점 문 앞에서 “베스트셀러”라는 푯말 아래 가장 먼저 손님을 맞는다. 이런 사실은 역사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사가들을 좌절케 한다. 그러나 모든 역사서가 푸대접을 받는 것만은 아니다.

중국사 전문가인 “조너선 스펜스”의 책들을 둘러봐라! 그의 책은 결코 먼지에 덮혀 있지 않으며, 깨끗이 단장한 채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 스펜스의 역사는 다른 학자들의 그것과 어떻게 다를까? 가장 큰 차이는 그의 이야기가 결코 지루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소설처럼 클라이맥스가 있는 하나의 완벽한 스토리 전개방식을 역사와 접목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픽션을 읽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픽션의 전개방식을 역사에 도입하고 있다 해서 그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오해는 절대 금물이다. 그는 어느 대가 못지않게 공부를 많이 한 학자로서 타고난 감수성을 잘 활용해 역사서술의 새로운 방법론을 개척했을 뿐이다. 그의 역작《반역의 책》과 《신의 아들》은 추리소설을 방불케 하는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를 구사함으로써 나 같은 마니아들의 혼을 쏙 빼놓은 바 있다. 당연히 위의 두 책은 사실관계를 전혀 훼손하지 않는다. 다만 그 사실을 바라보는 스펜스의 시선이 독창적일 뿐이다!

사실 스펜스의 독창성은 탁월한 문학적 감수성과 심미안에서 가장 빛을 발한다. 역사와 문학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역사학의 심미주의”를 추구하는 그의 방식은 독자들로 하여금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그가 즐겨 이용하는 재료들은 역사와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당대 중국의 문학작품들이다. 스펜스는 역사를 서술해가는 과정에서 적시적소에 문학작품의 조각들을 끼워 넣는다. 그가 선택한 시나 소설의 조각들은 이른바 시대정신을 더없이 잘 반영하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과 기막힌 조화를 이루어 시와 문학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역사로 재탄생한다. 때문에 나는 그를 “역사를 연주하는 시인”이라 부른다. 그의 작품《천안문》을 읽어 봐라! 누구라도 그가 연주하는 역사에 매혹되지 않을 수 없다!

스펜스의 작품은 모든 게 다 그렇듯 독창적 실험정신의 산물이다.《강희제》에서 그는 모든 역사학자들이 까무러치게끔 일인칭 주인공 시점을 선택했다. 달리말해 그 작품에서 내레이터는 스펜스가 아니라 강희제이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스펜스가 소설가이지 무슨 역사학자냐고 질타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완벽히 사료를 섭렵했기 때문에, 강희제의 내면세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고 그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덤덤히 말하게 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마테오리치 : 기억의 궁전》의 독창성도 놀라움 자체이다. 기억력으로 유명한 마테오리치의 내면세계, 즉 그의 기억의 저편 어딘가 놓여 있을지 모를 다양한 이미지를 매개로 그의 전기와 아울러 당대의 세계사를 나란히 엮어나가는 방식은 그야말로 전기의 새 지평을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 작품이 실험의 연속이었고 그 독창적 실험을 통해 독자들을 경탄하게 한, 아니 경탄을 넘어 경악시킨 조너선 스펜스야말로 이 시대 가장 위대한 역사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중국과 중국의 풍경 그리고 중국의 역사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는 비단 역사 유물 유적 그리고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국한되지 않는다. 참신한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역사가의 열정과 고뇌가 없다면, 결국 과거의 진실도 망각 속에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꽤 운이 좋은 편이다. '조너선 스펜스'라는 이 시대 최고의 역사가를 만났기 때문이다. 조너선 스펜스와 중국과의 만남! 그 만남은 그 둘 모두에게 윈윈게임이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에 관심 있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희망과 꿈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면 이 시대 가장 위대한 거장의 가장 위대한 작품은 무엇일까? 그를 아는 이라면 아마도《현대중국을 찾아서》를 꼽기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명문대인 버클리가 history101에 선정했을 정도로, 이 책은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역사책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현대중국을 찾아서》는 스펜스의 모든 장점과 독창성이 녹아든 역작이다. 하지만 그의 다른 저작과 달리 이 책은 명조부터 현대까지를 아우르는 통사이기 때문에, 절제와 차분함이 깊게 스며 있다. 마치 오랜 기간의 중국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는 여행가처럼, 스펜스의 새로운 면모인 성숙함과 중국에 대한 진지한 애정이 느껴진다. 사실 그의 이전 작품들은 너무도 도발적이지 않았던가!

사실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역사를 스케치하는 그의 작업은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들의 열정과 유사한 면이 있다. 스펜스의 중국사, 그중에서도《현대중국을 찾아서》는 묘한 여운을 남겨, 독자로 하여금 마치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이의 관조적 태도를 견지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이 작품은 통사가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다는 편견을 무참히 날려버린다. 스펜스는 번영을 경험한 후 곧장 허물어져가는 명왕조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당연히 그 시절을 반영하는 한시가 인용되고, 그 한시는 명나라의 흥망성쇠를 감미롭게 비유하고 있다. 그는 그 시기에 쓰인 모든 자료들 즉 소설 시 편지 따위에서 드러나는 리얼리즘적 요소를 포착해 역사적 사건의 적시적소마다 연결시킨다.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시기의 번영과 외세 침략에 의한 중국의 쇠락이 마치 꿈처럼 감미롭게 묘사된다. 그러나 꿈처럼 덧없이 흘러온 역사는 근현대의 격변기에 이르러 장엄한 대서사시로 도약한다!

광활한 영토와 무수한 인구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은 사람을 흡입하는 매력이 있다. 이에 더하여 삼국지 수호지 같은 거대한 스케일의 고전작품은 중국의 역사를 더욱 장대하고 화려하게 장식한다. 그러나 중국의 진정한 대서사시가 픽션이 아닌 역사적 사실 자체에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할 것이다. 2만 5천 리에 달하는 ‘대장정’이야말로 중국의 장엄한 대서사시라 할 만하다. 소박하며 명석한 통찰력을 지닌 마오쩌둥, 훌륭한 인품을 지녔으며 중국외교의 기틀을 다진 저우언라이, 아편중독자에서 홍군 총사령관에 오른 주더로 대표되는 혁명가들의 이야기는 삼국지의 스케일에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더구나 그들은 유비와 제갈량 같은 지략가들도 실패했던 대륙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고 만다.

스펜스는 중국사의 클라이맥스라 할 만한 20세기의 격변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지만, 역사적 진보의 진정한 가치인 자유와 정의 그리고 민주주의적 요소를 끊임없이 탐색한다. 따라서 마오쩌둥과 대립한 장제스가 그러한 가치를 내팽개치고 인민들의 지지를 상실하자, 단호히 그를 비판한다. 그렇다고 마오쩌둥과 그의 동지들이 구상하고 건설한 사회주의 중국을 스펜스가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옌안에서 순수문학을 추구하려다 좌절을 겪은 딩링의 경우처럼, 마오의 중국이 허용한 문학의 자유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묘사할 수 있는 자유에 다름 아니었다. 이제 사회주의 중국을 비판할 수 있는 자유는 허용되지 않고 오로지 옹호하는 자유만 허용되므로, 스펜스는 진정한 자유가 실종되었다고 진단한다.

중국에 무한한 애정을 품고 있다 해도, 스펜스가 끊임없이 비판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자유와 민주주의적 가치들이 억압되고 천안문사태에 이르러 탄압의 절정에 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그러한 가치들을 상징하는 중국의 진정한 영웅들인 후야오방과 저우언라이에 대한 인민들의 진심 어린 추모를 감동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자신이 지향하는 세계관을 보다 명확하게 제시한다. 스펜스는 과거를 아름답게 연주할 뿐만 아니라, 자유와 정의 그리고 민주주의 가치를 척도로 냉정히 평가한다. 중국 인민들을 향한 진지한 애정이 없었다면, 그의 역사는 차라리 문학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을 향한 그의 진지한 고민과 열정 그리고 애정은 그의 “문학 같은 역사”를 “비전 있는 역사”로 격을 높인다. 그것이야말로 스펜스가 이 시대 최고의 역사가인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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