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 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냉철한 지성의 상징, 다윈의 후계자, 무신론자, 환원론자...... 이러한 표현들은 '리처드 도킨스'에게 지겹도록 따라붙는 수식어이다. 도킨스는 다윈과 헉슬리를 잇는 진화론의 신봉자, 좀 짓궂게 표현하자면 '진화론의 3대 교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존 호건'의 "과학의 종말"에 따르면, 그는 우주에 또다른 생명체가 탄생해 진화해 왔다 해도, 지구의 진화 메커니즘을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할 만큼, 진화론의 논리적 아름다움에 매료된 인물이다.

 도킨스는 더 나아가 진화생물학계의 역사에서 진화론을 능가하는 패러다임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의 전망에 따르면 진화생물학계에 남아 있는 앞으로의 과제는 진화론의 거대한 틀 내에서, 부분적 내용을 채워나가는 용접이나 납땜질 식의 소소한 '퍼즐 맞추기' 작업만이 기다릴 뿐이라고 예견한다. 적어도 진화론은 그에게 종교였던 셈이다! 그의 이런 오만할 정도의 자신감이 많은 적들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도킨스는 이 시대 최고의 '과학의 전도사'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문자가 탄생한 이래 가장 논리적으로 글을 쓴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도킨스를 지목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논리적 완성도는 그가 어떤 거짓말을 하고 있다 해도, 모든 이들을 믿게 할 정도다! 그의 "눈먼 시계공" "확장된 표현형" "이기적 유전자"를 읽어 보라! 소름이 돋을 정도로 천재성이 번득이는 그의 작품들은 진화생물학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하나 같이 당대의 세계관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충격을 몰고왔던 도킨스의 작품들은 놀라움 그 자체이다.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충격파를 몰고와, 진화생물학계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바꾼 작품은 단연 "이기적 유전자"이다!

 그렇다면 "이기적 유전자"의 세계로 충격적인 지식여행을 떠나보자. 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진화의 메커니즘에서, '개체의 이익'은 가장 근본적인 전제로 간주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이해의 폭이 확대될 수록, 그 전제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커져만 갔다. 이를테면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집단을 지키려하는 꿀벌의 이타성은 개체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으로 말하자면, 생면부지의 사람을 구하고자 종종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지 않던가?

 논리적 모순에 직면한 진화생물학계는 더 나은 이론체계를 필요로 했다. 그것은 개체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생명체나, 이타성을 발휘하는 생명체 모두에게 모순되지 않을 만큼 포괄적이며 논리적 완성도를 갖춘 이론틀이어야 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도킨스는 몇몇의 선행연구를 근거로, 개체의 이익이 아닌 유전자의 이익 즉 "유전자의 자기 복제와 보존"이야말로 생명의 궁극 목적이자 진화의 전제라는 혁명적인 이론을 정립했다. 그 이론은 꿀벌과 인간의 이타적 행동이 개체의 이익이 아닌, 동일 유전자 집단의 이기적인 증식과 보존에 기여할 수 있다는 명쾌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지금은 진부한 감도 없지 않으나,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설은 진화생물학계의 수많은 모순을 바로잡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도킨스의 충격 발언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과연 인간의 몸이란 무엇인가라는 도발적인 물음을 던지기에 이르렀다. 놀랍게도 그는 인간의 몸이란 이기적 유전자의 자기복제와 보존에 유리하도록 프로그램된 기계에 다름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좀 극단적으로 비유해서 우리의 몸체가 '로버트 태권브이'라면, 유전자는 태권브이를 조종하는 소년 '훈이'였던 셈이다!

 도킨스의 이론이 제시되었을 무렵, 사람들이 얼마나 커다란 충격에 빠졌을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결국 인간들은 "이기적 유전자"라는 미물에 놀아난 셈이었고, 인간의 숭고한 도덕성도 그 미물들의 생존전략에 따른 진화의 산물로 생겨났으니! 심지어 어떤 학자는 유전자로부터 독립된 자신의 주체성을 천명하고자, 독신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사실 도킨스와 마찬가지로 '매트 리들리'가 "이타적 유전자"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듯, 진화의 산물로서 등장한 인간의 덕성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자연과학이 이기적 유전자 이론으로 사회과학의 권위에 치명상을 입혔다 해도, 자연과학이 직면한 딜레마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대안은 바로 사회과학에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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