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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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학번보다는 85년생에 더 가까운 세대다. 그래서 그 시절 영수를 모른다. 군대 얘기는 더더욱 모른다. 80년대를 추억하기엔 난 너무 어렸고, 고작해야 <응답하라 1988> 시리즈를 보며 저 땐 저랬지 하며 어설픈 공감을 했었더랬다. 드라마에 나오는 80년대도 정치적 이야기보다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웃들의 이야기와 그때의 촌스러웠던 패션이 더 눈길을 끌었다. 드라마 속 덕선의 큰언니 보라만이 시대에 관심을 가지고 학생 운동을 하다가 부모님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저자는 그때 그 시절, 변방의 군대 이야기를 주제에 올렸다. 시대의 중심에서 학생 운동을 했던 현장의 불타는 이야기가 아니라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땅굴을 파고, 끝없이 눈을 치워야 했던 자신의 군대 시절 이야기 말이다.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 저자의 말에서 작가 이정서는 그 중요했던 1987년, 절대 권력인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직접 뽑는 민주주의를 쟁취한 그 해에 역사적 현장에 함께 하지 못했던 자신의 부채감을 내려놓고자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비록 변방에 있었지만, 거기서도 작은 역사는 일어나고 있었다고 말이다. 

「대학생활 1년 하고도 한 학기를 끝내고 났을 때, 내게 남은 것은 5학점이 빵구 난 성적표와 급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뒤의 상실감이 전부였다. 일상화된 최루탄과 깨어진 보도블록의 시대. 도서관에 들어앉아 공부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시대를 비켜가려는 당사자나, 타인에게 모두 욕돼 보이던 시대에 나는 어느 순간 질려있기도 했다. 」
<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 p.31>


그 시절은 그랬다. 부모님들은 자기 자식만은 학교 도서관에서 시대에 상관없이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하길 바라고 있었겠지만, 그 시절 현장에 있던 학생들은 그렇지가 못했던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공부를 하는 것이 욕되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주인공 이윤은 도피하는 심정으로 군에 입대한다. 

군대는 사회에서의 계급과 상관없이 모든 것이 공평하게 짬밥 순으로 진행되는 사회다. 그런 만큼 온갖 다양한 무리들이 한 곳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는 곳이다. 이윤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이야기는 1980년대와 2000년대를 오가며, 현재 30대 중반의 출판사 사장이 된 이윤이 그때 그 시절 사람들의 현재 모습을 찾고 기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윤과 같은 국문과 출신으로 왠지 친근하게 느껴진 선임 하치우, 우락부락 무서운 외모를 지녔지만 정 많고 따뜻한 임 병장, 이윤의 같은 학교 후배지만, 어딘가 얼빠진 듯 보이는 고문관 85학번 김영수 등등 이들은 2000년에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이 소설은 2000년에 한번 출간되었다가, 2017년 우리 손으로 부패 대통령을 끌어내린 역사적인 사건을 맞아 수정을 통해 다시 출간된 듯하다. 새 천년이 시작된 2000년, 얼마 안 된 것 같지만 그것도 벌써 약 20년 전이다. 벌써 그때 태어난 아이들이 고등학생인 것이다. 그만큼 시대는 또 많이 변했다. 소설 속에서 군대의 남자들이 씹어뱉듯 내뱉는 여성에 대한 표현이 좀 불편했다. 아무리 군대에서는 남자들끼리 별소리를 다 한다지만, 굳이 꼭 필요하지 않은 부분에 그런 표현까지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는 하다.  

2018년 지금은, 30년 뒤쯤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훨씬 더 좋아진 세상에서 지금을 돌아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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