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고 나면, 평소 책 좀 읽는다 하는 자칭 책덕후들은 반드시 한 두번쯤은 찔리는 구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부터도 몇 번씩이나 뜨끔 했었으니까.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는 거의 동화 수준이 아닐까 싶을 만큼 너무나 쉽게 쓰여진 책이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들을 곰곰히 씹어보면 꽤 깊은 통찰이 담긴 문장들이 많아서 곳곳에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읽었다. 책덕후와 냥덕후를 같이 겨냥한 책이라지만, 사실 책에서 고양이 특유의 귀여움은 별로 느낄 수 없긴 하다. 고양이 말투치고 너무 애교가 없잖아, 고양이 말고 강아지나 요정, 일반 사람 그 무엇을 갖다놨어도 괜찮았을 것이다ㅋ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서점을 이어받게 된 린타로는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얼룩고양이가 말을 하는걸 보고 깜짝 놀란다.(우리 고양이도 말을 할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 ㅋㅋ) 고양이는 난데없이 린타로에게 책을 구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어주고 둘은 함께 책의 미로를 향한 환상 여행을 시작하는데.... 책의 미로 속에는 자신의 방식대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분명 책을 좋아하는 것 같긴 하지만, 그 방법이 잘못된 듯 보인다. 린타로는 그들에게 붙잡힌 책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책에는 생전에 할아버지가 해주신 말씀 중 참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다. 

「"무턱대고 책을 많이 읽는다고 눈에 보이는 세계가 넓어지는 건 아니란다. 아무리 지식을 많이 채워도 네가 네 머리로 생각하고 네 발로 걷지 않으면 모든 건 공허한 가짜에 불과해."」 
<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p.65> 

책을 읽다보면 많이 읽었다는 사실 만으로 자신이 많이 안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단순히 다른 사람의 지식을 읽은 것이 전부인데도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된 짜릿함에 젖어 실제 내 것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을 바탕으로 내 생각을 보태고, 다듬어서 진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인데 말이다.

「"책을 읽는다고 꼭 기분이 좋아지거나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아. 떄로는 한 줄 한 줄을 음미하면서 똑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읽거나 머리를 껴안으면서 천천히 나아가기도 하지.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면 어느 순간에 갑자기 시야가 탁 펼쳐지는 거란다. 기나긴 등산길을 다 올라가면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 것처럼 말이야"」 
<p.124>

책 읽기를 등산에 비유하다니 탁월하다. 어떤 책들은 읽는 동안 고통스러운 책들이 있다. 어려워서, 난해해서 힘들다가도 다 읽고 나면 왠지 모를 뿌듯함이 드는 책, 끝까지 읽어야 비로소 전체적인 흐름이 눈에 들어오는 책, 그것은 산 꼭대기에서 바람을 맞으며 탁트인 전경을 바라보는 느낌과 정말 비슷할 것이다. 

한때 나는 미친듯이 책을 빨리 읽기에 몰입했었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빨리 읽고 다음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에 시달렸다. 단지 누군가에게 "나 이 책 읽었어" 이 말을 한마디 하기 위해서 였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읽었던 책 목록들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자마자 벌써 내용이 희미해졌으니까. 그러다 우연히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 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의 지독한 슬로 리딩 방법을 읽고 나서 내 독서가 잘못되었단 걸 깨달았다. 빨리 읽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천천히 꼭꼭 씹어서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을.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크고 작은 부분들을 놓치는게 인간이다. 기차를 타면 먼 곳으로 갈 수 있지만 그렇다고 식견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길가에 피어 있는 이름 없는 꽃도 나뭇가지에서 지저귀는 작은 새들도 자기 발로 걸어가는 우직한 산책자를 따르는 법이다. 」 <p. 127>

그렇지만 지금도 속독하는 버릇을 완전히 버리진 못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책을 읽으려는 욕심 때문에 빨리 읽긴 하지만, 그래도 그때와 다른 것은 좋은 구절은 포스트잇을 붙여 표시해두고 다시 읽어보며, 다 읽고 나면 서평을 쓰며 다시 전체적인 내용을 음미해본 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정말 많이 나아졌다.

「"책에는 마음이 있지. 소중히 대한 책에는 마음이 깃들고, 마음을 가진 책은 주인이 위기에 빠졌을 때 반드시 달려가서 힘이 되는 법이야"」
<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p.228>

내가 위기에 빠졌을 때 달려와서 힘이 되 줄 내 책들은 과연 몇 권이나 될까. 
힘들 때 달려와 줄 책을 많이 만들려면 그만큼 한권 한권 소중하게 읽고 쓰다듬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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