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행복 - 이해인 수녀가 건네는 사랑의 인사
이해인 지음, 해그린달 그림 / 샘터사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녀로서 평생 종교에 귀의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삶이라 왠지 궁금해진다. 
이해인 수녀의 책을 읽을 때마다 특유의 밝고 따뜻한 글 분위기에 놀라곤 하는데, 요즘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때묻지 않은 느낌이 날 수 있나 싶은 건 종교인이기 때문일까, 그녀 특유의 맑은 기운 때문일까. 그녀의 책을 읽으면 마치 딴 세상을 사는 사람을 보는 느낌이 든다. 거기다 수많은 수녀들 중 그녀가 단연 독보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그녀의 글쓰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까지 수많은 시집과 에세이를 내왔고, 꾸준하게 사람들과 편지로 소통을 지속하면서 희망을 전파하는 걸 보면 종교에 귀의한 몸이지만 외롭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기다리는 행복>은 그동안 이해인 수녀가 여기저기 기고했던 글과 시들, 여러 사람과 주고받았던 편지글, 1968년에 처음으로 수녀가 되고 나서 1년간 남긴 일기 등을 담은 책이다. 순서가 중요한 책이 아니기에 아무렇게나 펼쳐서 읽어봐도 무방하다. 특히 책 속에 일러스트가 너무 예뻐서 자주 눈길이 멈추곤 했는데, 적재적소에 보이는 따뜻한 분위기의 그림들이 너무 예뻤다. 


책 속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시가 하나 있었는데, 요즘같이 사건사고가 특히 많이 나는 시기에 읽으니 왠지 더 마음에 와닿는 시다. 


매일 조금씩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죽음을 잊고 살다가

누군가의 임종 소식에 접하면
그를 깊이 알지 못해도
가슴속엔 오래도록 
찬바람이 분다.

'더 깊이 고독하여라'
'더 깊이 아파하여라'
'더 깊이 혼자가 되어라'

두렵고도
고마운 말 내게 전하며
서서히 떠날 채비를 하라 이르며

가을도 아닌데
가슴속엔 오래도록
찬바람이 분다.
- 이해인 <죽음을 잊고 살다가> 전문-

연이은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어이없이 생명을 잃고 있는 이때,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언제나 죽음이라는 낱말은 마음속에 찬바람이 불게 한다. 나도, 그리고 내 곁에 소중한 누군가도 언젠가는 죽을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죽음을 잊고 산다. 그러다 생판 모르는 남이 죽었다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쿵 내려앉으며 잊고 있던 죽음이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책 내용 중에는 강도 살인으로 무기징역 복역 중인 신창원과 주고받은 편지도 있었다. 

요즘은 시의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과 암송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더군요. 해서 어머니의 젖을 갈구하는 아기의 심정으로 암송을 하다 보니 어느새 스무 편을 훌쩍 넘었습니다. 이런 오묘한 맛 때문에 그렇게 많은 이들이 문학을 꿈꿨나 봅니다. 이모님의 시 중에선 <민들레 영토>,<장미의 기도>,<엉겅퀴의 기도>,<사랑의 길 위에서>,<파도의 말>이 좋아서 우선적으로 가슴에 담았고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과 <복종>, 박인환님의 <목마와 숙녀> 그리고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여러 시인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제 안에 담았습니다.」 
<신창원이 보낸 편지 중에서 p.291>

생각보다 문장이 정갈한 것에 놀랐고, 시를 외우고 공부하는 감옥수라니 갑자기 신창원이 다르게 보였다. 한낱 감옥수에게 정성스러운 편지와 함께 시를 공부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고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은 이해인 수녀의 마음 씀씀이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항상 마음속 가득 사랑을 담고 살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걸까. 
나도 좀 더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에 사랑의 인사를 건네봐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