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의 눈물 대한민국 스토리DNA 16
전상국 지음 / 새움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의 숨겨진 광기를 지켜보는 일은 참 흥미로운 일이다. 코너에 몰렸을 때 고양이를 무는 쥐처럼 폭발하듯 쏟아져나오기도 하고, 속에서 몰래 이글이글 타오르기도 한다. 특히나 격동적인 70년대, 또 그보다 거슬러 올라가 전쟁이 있었던 50년대를 겪었던 이들은 생의 많은 것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지금보다 더 무서운 광기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으리라. <우상의 눈물>은 전상국 작가가 자신의 작품 들 중 특별히 엄선하여 뽑은 단편 9편을 묶은 선집이다. 비교적 최근에 쓰여진 <플라나리아>(2002년)를 제외하고 나머지 작품들은 대부분 1970년대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어둡고 혼란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니 만큼 전체적으로 소설은 어둡고 음침하다. 그럼에도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흥미롭게 끌어가는 기술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작품을 읽어갈 수 있었다. 특히나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70년대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듯 생생하게 경험하는 것은 또 다른 독서의 즐거움이라 하겠다.

작품들 중 특히나 기억에 남는 작품들을 뽑아보자면 <우상의 눈물>, <우리들의 날개>,<전야>, <아베의 가족> , <투석> 같은 작품들이다.  스토리 라인이 재미있어서 흥미진진하기도 했지만 사람 마음 속에 숨겨진 속내를 드러내는 방식이라던가 가족간의 일그러진 관계들이 잘 드러나 있는 것 같아 좋았다. 특히 <우리들의 날개>에 드러나는 미신을 믿는 가족들이 행하는 비이성적인 행동들은 꽤 공포스럽기도 했다. 손이 귀한 집안에 태어난 막내아들 두호는 귀한 자식 임에도 왠지 하는 짓이 미운 아이다. 거기다 어머니는 어느 날 점을 보러 갔다가 두호가 집안의 액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문제는 두호였다. 두호가 사라는 것이었다. 한 집안에 살이 낀 사람이 둘 있으면 그렇게 안좋다는 얘기였다. 손이 귀한 집일수록 그런 일이 흔하다고 했다. 
"느 아버지하고 두호가 바로 상극이란 거여!"
고모가 말했다. 
"그럼 액땜을 하면 될거 아냐?"
내가 비꼬는 투로 묻자 고모가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딴 방법은 없다더라. 두 사람 중에 하나가 죽는 수 밖에..."
그 말을 어렵잖게 해내는 고모의 얼굴에 개기름이 번지르르 했다. 」 
< 『우리들의 날개』 중에서 p.111>

둘 중에 한명이 죽어야 한다면, 그것은 두호라고 믿는 어른들의 생각. 하지만 그들은 그 속내는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고, 두호가 아파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방치하는 대신 두호가 죽고 나서도 죄책감을 덜 느끼기 위해 두호에게 엄청나게 많은 장난감을 사준다. 두호의 형인 '나'는 부모님들이 두호에게만 보여주는 편애 때문에 두호에게 살의를 느끼기 시작하는데...  

이런 가족간의 살의는 <아베의 가족>이라는 단편에서도 나타난다. 태어날 때부터 심한 장애아로 태어나 제대로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아,아, 아베" 라는 말 밖에 하지 못하는 큰 형의 존재는 가족을 침울함으로 몰아넣는 원인이었다. 형을 인간이 아닌 냄새나는 짐승 정도로만 대했던 형제들, 그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가족들, 그들은 결국 아베를 혼자 한국에 내버려두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지만, 아베가 한국 어디에 있는지만은 어머니 만이 알고 있다. 어머니는 아베를 어떻게 했던 것일까. 

<투석>이라는 작품은 어느 날 부터인가 날벼락처럼 창문을 깨부수고 날아오는 돌팔매질 때문에 시작되는 이야기다. 가족 각자는 알 수 없는 죄의식을 느낀다. 혹시 저 돌이 나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은 자신이 지금껏 잘해왔다고 억지로 덮어두었던 과거 행적들을 한꺼풀 벗겨 생각해보게 한다. 전상국 작가는 <투석>을 이야기 짜임새등에 있어 자신의 대표작으로 삼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1970년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만큼 이야기 속에서는 꽤 불편한 장면들도 많다. 남자에게 유린당한 여성을 조사하는 경찰이 호기심을 가득 담은 얼굴로 어땟냐고 물어보는 장면이나 딸이 동네 청년에게 당하고 혼삿길이 막히자 나몰라라 하는 집안 분위기등 저땐 정말 저랬었나 하는 장면들이 많다. 특히나 여성들도 남성에게 과하게 순응적인 모습들이 담겨있어 이것은 남성의 시선에서 쓰여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땐 다들 그랬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간이 흘러 세대가 변할수록 그 전 시대가 어땠는지는 자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때 그 시절 사람들의 생생한 속내와 생활이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일일 것이다. 우리가 겪지 못한 일을 겪었던 그들의 특수한 상황에 보편적인 인간의 심리를 더하면 언제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탄생하니까 말이다. 신기한 것은 아무리 세대가 변해도 환경은 변할 지언 정 인간의 깊은 속내는 쉽사리 변하지 않는 다는 것, 형태를 달리해서 계속해서 계승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계속해서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겪어보지 않은 70년대의 향기를 진~하게 느낄 수 있었던 소설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