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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을 위한 길고양이 안내서
이용한.한국고양이보호협회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1월
평점 :
언젠가부터 매년 겨울이 될 때마다 길냥이들이 신경 쓰인다. 그렇게나 따뜻하고 포근한 걸 좋아하는 녀석들인데 얼마나 추울까.
지금 나의 반려묘 다림이도 약 4년 전 겨울이 시작되던 12월 초, 집 앞 골목길에서 만났다. 지나가던 고양이에게 '야옹'하고 인사 한마디 했을 뿐인데 '엇, 나를 키워줄 사람 바로 너다!' 싶었는지 두 두두 달려와서 내 다리에 얼굴을 비벼댔다. 길에서 만난 고양이에게 이런 대접은 처음이라 움찔 놀랐는데, 이 녀석이 자기 발로 우리 집에 따라왔다. 아니, 나보다 앞장서서 우리 집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처음 겪어보는 신기한 일이었기에 바깥이 추우니 몸 좀 녹여주고 보내야겠다 싶었던 마음이 이렇게 4년이 되었다. 다림이가 집에 왔을 때, 처음 보는 내가 낯설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이 녀석은 내 무릎에 올라와서 내려가지 않았다. 나를 다시 내버리지 말라는 듯이 끈질기게 무릎 위에서 버텼다. 같이 있던 오빠가 얼른 나가서 급한 데로 고양이 사료를 사 와서 밥을 주자 허겁지겁 먹더니, 잠시 뒤 만족스러웠는지 '휴우' 한숨 한번 내뱉고는 다리를 쭉 뻗고 그대로 'ㄷ' 자로 잠들어버렸다. 바닥에서 자는 고양이를 고대로 들어서 옮겨도 꼼짝도 안 하는 걸 보고, 이 녀석 정말 피곤하고 무서웠나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구는 걸 보면 분명히 사람 손을 탄 고양이 인가 본데, 누군가 일부러 버린 걸까, 집을 나온 걸까 궁금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다림이는 나와 한 가족이 되었다.
원래 고양이를 좋아하긴 했지만, 다림이를 만난 후로는 더더욱 길고양이들이 신경 쓰였다. 길에서 고양이를 보면 더 눈에 밝히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언젠가는 사람을 잘 따르는 듯한 길냥이를 집에 데려오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아무 도구 없이 맨손으로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오는 건 무리였다. 《공존을 위한 길고양이 안내서》를 보니 길고양이들을 무조건 집에 데려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한다. 다치거나 병들어 구조가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영역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밥과 물을 잘 챙겨주고 개체 수가 늘지 않도록 꾸준히 TNR(중성화 수술)을 시켜주는 것이 좋단다. 내가 즐겨보는 이웃 블로거 중에 1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밤낮으로 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캣맘이 있다. 회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고양이 밥을 챙겨주고, 퇴근하는 길에 또 챙겨주고, 동네 고양이들의 상태와 신상을 훤히 꿰고 있는 그분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한두 번 안쓰러운 마음에 밥을 챙겨 주는 건 가능하겠지만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사비를 털어가며, 동네 주민들의 눈총을 받아 가며 꾸준히 챙긴다는 것은 말 그대로 정말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에 나온 고양이의 발라당 사진이 귀여웠다. 고양이는 발라당으로 신뢰와 유대감을 표현한다고 한다. 다림이도 툭하면 배를 만져달라고 발라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손을 슬쩍 빼서 등을 만지려고 해도 뒷다리로 다시 손을 감아서 배를 만지라고 강요한다. 고양이들이 발라당을 하더라도 배를 만지라는 의미는 아니므로 할퀴는 경우도 많다는데 요 녀석은 배를 쓰담쓰담 하는 것이 너무 좋은가 보다. 뱃살도 많아서 몰랑몰랑 부드럽고 만지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건 고양이와 유대감을 가지는 사람들의 특권이 아닐까. 후훗.
고양이는 볼수록 참 희한하고 신비한 매력을 가진 동물이다. 강아지처럼 사람에게 순종적이지도 않고, 자기 멋대로 구는 경우가 더 많지만 그래서 더 (고양이에게) 사랑받고 싶어진다. 최근 들어 고양이의 그 매력을 알아보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 입양을 하고 있지만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중간에 유기하거나 보호소에 갖다 주는 사례도 많아서 안타깝다. 독자적으로 한 생명을 책임지게 된 건 다림이가 처음인데, 생각보다 그 책임의 무게가 무겁다. 예쁘고 귀여운 면이 더 많긴 하지만 책임지고 감수해야 할 부분도 만만치 않게 많다. 날리는 털을 매일 청소해야 하는 건 기본이요, 고양이 모래로 집안이 저벅저벅 사막화 되고, 스크레처 대신 소파를 긁어놓을 때도 있다. 거기다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야 하고, 오랜 기간 동안 혼자 남겨두고 여행을 가야 할 땐 돌봐줄 이도 찾아야 한다. 이 모든 책임을 질 자신이 없다면 다른 모든 동물도 마찬가지겠지만 고양이 입양은 하면 안 된다. 고양이는 길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더 쉽게 입양하고, 쉽게 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깝다.

몇 년 전에 길에서 페르시안 고양이를 발견해서 동네에서 유기묘를 받아주는 동물병원을 검색해서 가져다준 적이 있는데,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굶은 건지 솜뭉치를 들어 올리는 것처럼 가벼워서 깜짝 놀랐다. 병원에서는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 일주일 정도 주인이 나타나는지 기다리다가 이후에는 안락사를 시킨다고 했다. 그 고양이는 과연 주인을 찾았을까. 만나는 고양이마다 내가 책임을 질 수는 없기에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노력은 하지만, 한참 시간이 지나도록 마음의 짐으로 남기는 마찬가지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이미 우리는 집에서 또는 길에서 고양이들과 공존하고 있다. 고양이의 평균 수명이 15년인데 반해 길고양이들은 2~3년 정도밖에 못 산다고 하는데 그 짧은 수명마저도 추위와 배고픔, 병에 시달리며 괴롭게 살다가 가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그나마 남아 있는 삶을 덜 괴롭게 살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작은 관심과 도움이 절실해 보인다. 그보다 앞서 고양이를 혐오하고 학대하는 정서적인 문제부터 먼저 해결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제발 고양이를 버리지 마세요'
모든 고양이들이 부디 행복한 묘생을 보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