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퐁스 도데 - 아를의 여인 외 24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9
알퐁스 도데 지음, 임희근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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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의 <행복의 충격> 이라는 책을 읽은 뒤로, 지중해 기후의 아름다운 남프랑스 지방, 특히 프로방스에 대한 로망이 있다. 따뜻하고 온화한 아름다운 자연이 살아있는 곳, 알퐁스 도데는 실제로는 파리 교외에서 많은 글을 썼지만, 프로방스를 자신의 글 고향으로 여긴듯 이 지방을 배경으로 많은 글을 써냈다. 책 서문을 보면 알퐁스 도데가 누군가에게 프로방스의 풍차를 샀다는 계약서를 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해설에 따르면 사실은 도데는 풍차를 소유한 적도 없고, '방앗간 주인'이었던 적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프로방스 지방에 가면 알퐁스 도데의 풍차라고 해서 입장료를 내야 들어가서 볼 수 있는 관광지가 있다고 하는데 그건 순전히 소설의 배경이 된 풍차라서 그런걸까? 궁금해진다. 
현대문학에서 낸 세계문학 단편선 29번째 주인공은 알퐁스 도데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은 <별> 정도 밖에 알지 못했는데, 이번에 접한 단편들에는 정말 다양한 분위기의 이야기가 눈부신 프로방스의 자연, 해학, 민담들과 함께 자유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책에는 총 2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풍차 방앗간 편지>라는 책에 담겨있던 짧은 단편 24편과 이번에 국내에 최초로 번역되어 선보여지는 <아를라탕의 보물>이라는 중단편이다. <풍차 방앗간 편지>는 알퐁스 도데가 13년에 걸쳐 다양한 지면에 발표했던 단편들을 엮어서 낸 단편집이다.  오랜시간에 걸쳐서 쓰여진 이야기들이라 그런지 이야기가 모두 제각각인듯 이어진듯 다양한 매력을 뽐낸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 중 가장 유명한 <별>을 다시 읽으며 새삼 놀란 점은 피끓는 스무살 청년인 양치기가 스테파네트 아가씨와 함께 언덕에서 별을 보며 밤을 보내는 장면이 눈에 보일 듯 너무 아름다웠다는 점이다. 원래 이렇게 아무런 진전없이 별만 보다 끝나는 스토리였나 싶기도했지만, 아름다운 밤하늘에 대한 묘사가 그런 싱거움을 없애줄 만큼 아름다웠다. 

『우리 주위에는 별들이 커다란 양 떼처럼 유순하게, 소리 없는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앉은 채로 이따금 난 그려보곤 했어요. 저 별들 중에 가장 여릿여릿하고 가장 반짝이는 별 하나가 가던 길을 잃고 내게 내려와서는 이 어깨에 기대어 잠든 것이라고요. 』 < 알퐁스 도데 「별」 중에서 p.48>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단편은 <스갱씨네 염소>다. 화자가 자신의 친구인 시인 그랭구아르에게 왜 파리의 유수 일간지에서 내준 고정칼럼자리를 받아들이지  않냐고 하며 정신차리라는 차원에서 들려주는 염소에 대한 이야기다. 스갱씨는 최선을 다해 염소를 키웠지만, 매번 같은 방식으로 염소를 잃었다. 아무리 맛있는 풀을 주고 행복하게 해주려 노력해도 염소들은 하나같이 줄을 끊고 울타리를 넘어 자유를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자유를 찾아 떠나간 염소들은 매일 밤 늑대에게 잡아먹혀 생을 마감했다. 같은 방식으로 여섯마리나 되는 염소를 잃고 나자, 이번에는 집에 붙어 사는 것이 몸에 익숙해지도록 좀 더 어린 염소를 사서 최선을 다해 길렀지만, 그 염소 블랑케트도 결국엔 울타리 안에 갖혀사는 생활에 싫증을 냈고, 자유를 원했다. 어느 날, 염소 블랑케트는 결국 주인이 방심한 틈을 타 도망을 갔고, 결국엔 자신이 원하는 넓은 장소를 여행했다. 온 숲과 나무와 풀과 산양들에게 환영 받으며 블랑케트는 진심으로 기쁘고 행복했다. 그렇게 밤이 찾아왔고, 어김없이 블랑케트는 늑대를 만났다. 블랑케트는 최선을 다해 아침까지 견뎌보려고 노력하며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늑대와 싸움을 벌였다. 이윽고, 아침이 되었고, 결국엔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자유롭게 살면 빨리 죽는다? 알퐁스 도데는 은근 꼰대기질이 강했는지 유독 교훈적인 이야기를 많이 썼다고 한다. 그래서 이야기들이 전반적으로 아이들이 읽는 동화같은 느낌이 많이 난다. 난 반대로 잠시라도 진정한 자유를 맛봤던 블랑케트는 그래도 행복했겠다, 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보호 아래 행복하지 못한 삶을 길게 영위하는 것보다, 자유롭게 불꽃같은 삶을 누리고 의지껏 끝까지 싸우다 조금 일찍 떠나는 것도 본인만 행복하다면 괜찮은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야기 안에서 어떻게 느끼던 그건 본인 마음이니까 뭐.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에 국내에 처음 선보인다는 <아를라탕의 보물>이라는 단편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알퐁스 도데가 죽기 직전 57세의 나이에 쓴 단편이라고 하는데 앞서 발표했던 단편들보다 사람의 깊은 내면변화와 함께 인물과 풍경묘사를 통한 감정표현들이 마음에 들었다. 
<아를라탕의 보물>은 파리에서 연인에게 상처받은 앙리 당주가 파리와 멀리 떨어진 외딴 마을 카마르그의 사냥용 오두막에 머물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담은 단편이다. 사랑에 상처받았으니, 그것과 관련 된 것에서 멀어지면 상처가 치유되리라 생각했던 앙주, 실제로 카마르그에 머물면서 그 곳 특유의 조용한 침묵과 자연환경 속에서 아픔의 상처가 아물어가는 듯 보였으나, 결국 그가 상처를 극복해내는 방법은 상황을 피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면돌파! 외딴 마을에서 벌어진 그의 심리변화와 그의 어린 소녀 친구 지아의 비밀, 이런 이야기들이 신비하면서도 은근 매력있었다. 특히 단편 뒷부분의 해제에 <아를라탕의 보물>에 대해 정교하게 잘 분석해놓은 리처드 그랜트의 논문이 함께 실려있기에 어려웠던 부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부분을 읽고 나니 소설을 처음부터 다시 한번 더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꽤 세밀하게 쓰여진 작품같아서 책에 실린 알퐁스 도데의 다른 짧은 단편들보다 훨씬 깊은 맛이 있었던 것 같다. 

『"내 보물 속에는 사람 구하는 풀과 사람 죽이는 풀이 있지."
이 아를라탕의 보물은 우리의 상상력과 닮지 않았을까? 다양한 걸로 이뤄져 있고, 밑바닥까지 탐구하기엔 너무나 위험한 상상력 말일세. 사람은 그것 때문에 죽을 수도 있고 살수도 있지.』 
<알퐁스 도데 「아를라탕의 보물」 중에서 p.321>

전반적으로 목가적인 분위기나, 교훈적인 내용이 담긴 이야기가 많고, 단편 하나당 지나치게 분량이 짧은 것들이 많기에 프랑스의 문화를 잘 모르는 독자가 읽기엔 다소 지루하고 힘든 부분은 있었다. 실제로 이 책만 읽으면 어찌나 잠이 쏟아지던지, 몇일 간 나의 자기전 수면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읽다보면 알퐁스 도데 특유의 구수한 문체와 이야기들이 정감가기도 하고, 단편들에 대한 해제가 충실하게 실려있기에, 이야기에 대한 해설을 읽어보는게 사실 더 재미있기도 했다. 잘 몰랐던 알퐁스 도데와 친근해지고 싶다면 충실한 해설이 담긴 이 단편선을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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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7-12-20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의 알퐁소 도데... 괜히 입고리가올라갑니다...^^

다림냥 2017-12-21 00:12   좋아요 0 | URL
ㅋㅋ 그렇죠~~ 추억돋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알퐁스 도데 였습니다ㅋㅋ 특히 <별>은 아주 순수하디 순수하더군용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