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자본론 - 사람과 돈이 모이는 도시는 어떻게 디자인되는가
모종린 지음 / 다산3.0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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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와 문래창작촌에 있는 수제 햄버거집에서 약속을 잡았었다. 집에서 지하철 몇 정거장 거리인데,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원래 철강소 거리였던 노쇠해진 골목길에 최근들어 하나둘 씩 아기자기한 카페와 맛집, 공방들이 속속 들어선 모습이었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80년대의 모습을 간직한 낡은 골목길이라니, 걸어다니며 골목길 주변을 구경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분위기 있고 멋졌다. 어스름한 저녁, 낡은 건물 공방의 옅은 불빛 안에서 노란 새끼고양이가 야옹야옹하며 지나가던 우리에게 인사했다.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한 거리인지 아직은 빈 가게도 적잖게 보이긴 했지만, 반짝반짝하는 도심의 휘황찬란한 거리와는 달리 향수를 자극하는 독특한 매력이 있어 다음에 꼭 좋은 카메라를 들고 사진찍으러 와야겠다며 다짐했었더랬다. 
독특하고 개성 가득한 골목길은 사람을 부르는 매력을 지닌다. 요즘 골목길이 여기저기서 부상하고 있다. 샤로수길, 합정 카페거리, 경리단길, 연희동 등 수많은 골목길들이 핫하게 뜨고 있다. 어딜가나 볼 수 있는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가게만 가득한 거리가 아닌 저마다의 개성이 가득한 개인 상점들이 늘어서 있어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운 곳, 그 곳이 요즘 많은 사람들이 찾는 핫플레이스다. 

《골목길 자본론》은 모종린 교수가 대한민국 도시의 경제와 문화의 발전을 골목길 상권의 발전과 특화의 관점에서 재미나게 풀어낸 책이다. 경제도서라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중간중간 예쁜 거리 사진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다양한 골목길 이야기, 세계 각국의 골목길과 도시 발전이야기들이 담겨있어 지루하지 않게 술술 읽히는 책이다. 골목길이 언제부터 이렇게 핫플레이스가 되었을까. 2000년대 중반쯤부터 부상하기 시작한 홍대, 이태원등의 거리가 이제는 한국에 여행온 관광객들은 물론 한국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거리가 되었다. 점점 탈물질 시대가 된다는 반증일까, 사람들은 라이프 스타일에서 점점 다양한 개성과 문화를 찾기 시작한다. 그들의 호기심과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다양한 매력을 지닌 골목길이 크게 부상하며, 유동인구가 많아지고 발전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골목길의 부상은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하는데, 유동인구가 많아지고 상권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젠트리피케이션 현상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하면서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말하는데, 한국에서는 기존에 골목길의 부흥을 이끌었던 상점들이 임대료 상승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현상을 말한다. 핫한 골목길 상권의 건물주는 오른 땅값만큼 이익을 취하고 싶을 것이기에 더 높은 임대료를 부르기 마련이지만, 그렇게 단기적인 이익만 바라보다가는 어렵사리 만들어낸 개성 넘치는 골목길의 이미지를 다시 일관된 프랜차이즈들만 즐비한 재미없는 거리로 바꿔버릴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책에 나오는 내용중에 흥미로웠던 점은 스타벅스 임팩트였다. 낯선 가게들이 가득한 낯선 골목길에서 스타벅스 로고를 보는 순간 익숙한 느낌에 마음이 푹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스타벅스가 입점한 곳은 자연스레 중심 상권이 된다. 다른 브랜드의 커피전문점보다도 스타벅스의 효과가 월등히 높다고 하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스타벅스 사랑은 알아줘야 할 것 같다. 

「하루빨리 매력적인 골목상권을 조성하길 원한다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상권 확대 효과가 큰 거점 상점의 유치다. 성공한 골목상권은 경기가 나쁠 때도 꾸준히 유동인구를 유발하는 상점, 즉 거점 상점을 보유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실패가 없는 명실상부 거점 상점은 젊은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커피전문점 스타벅스다. (중략) 
재래시장과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대형마트와 달리 커피전문점과 같은 골목형 프랜차이즈는 오히려 골목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거점 상점으로 언급한 스타벅스가 대표적인 예다. 스타벅스 매장 입점이 주변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에서 입증됐다. 미국 최대 온라인 부종산 정보 사이트 질로(Zillow)의 연구에 따르면, 1997년에서 2014년 사이에 일반 주택의 평균 지가 상승률이 65퍼센트였던 것에 반해 스타벅스 주변 주택은 96퍼센트나 오르며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 골목길 자본론 p 128~129>

철저하게 해당지역에만 집중한 기업의 성공사례도 인상깊었는데, 대전의 성심당 제과기업과 서울 연희동과 신길에만 위치하고 있는 사러가 쇼핑센터가 그예다. 성심당은 대전의 구도심에 성심당거리를 형성할만큼 큰 규모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에는 진출하지 않고 오로지 대전 지역만을 무대로 활동한다. 사러가 쇼핑센터도 철저히 지역에 기반하여 질좋은 유기농 먹거리를 판매한다고 하니 꼭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 곳 모두 지역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는 곳이고, 연희동 일대의 몇몇 식당들은 '사러가 쇼핑센터 식재료를 씁니다'라고 내걸고 장사를 할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소비하는 곳이다. 

이제는 획일화된 도심보다는 다양하고 개성넘치는 골목길이 유행을 주도하고,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서울을 비롯해 지방의 각 골목길마다 아직 더 발전할 여지는 충분하다. 다만 골목길 상점의 개성과 질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장인의 육성과 골목길을 찾는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공공재를 제대로 공급하는 것은 정부가 좀 더 발벗고 나서야 할 문제일 것이다. 책을 읽다보니 서울 내에 있는 골목길도 안가본 곳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날이 풀리면 예쁜 골목길을 찾아서 맛있는 것도 먹고, 예쁜 공방도 구경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아주 흥미로우면서도 뇌를 자극하는 좋은 경제도서를 읽은 것 같아 뿌듯하다. 
쉽게 차근차근 다양한 경제원리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는 책이니. 골목길과 도시의 경제가 궁금한 분들은 시간내서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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