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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눈동자에 건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1월
평점 :
단편집이 이렇게 골고루 재미있기 쉽지 않은데, 그 어려운 걸 히가시노 게이고가 해냅니다. 단편집의 특성상 흐름이 뚝뚝 끊기기 때문에 단시간에 후루룩 읽어내긴 쉽지 않은데, 이건 뭐 한편만 읽어볼까 하고 잡았다가 어느새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다. 마음에 쏙 드는 표지 디자인과 더불어 짧고 깔끔한 이야기 속에 반전과 트릭이 골고루 들어있어 한편 한편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엄청난 다작 작가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 이지만 사실 나는 그의 책을 읽은게 별로 없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이후로 두 번째 읽는 책이다. 어디선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어릴 적엔 책읽기를 싫어했었다는 글을 읽은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그는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간결한 문체로 읽기 쉽고 재미난 이야기를 잘 써내는 듯 하다. 20페이지 정도 되는 짧은 단편 안에 쭉쭉 읽히는 흥미진진한 전개의 스토리와 더불어 끝에 가서는 여지없이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이 절묘한 소설을 이렇게 다양한 색깔로 써내다니 읽으면서 즐거운 기분이 절로 들었다. 작가의 책을 사놓고 아직 안읽은 게 몇 권 되는데 이번 기회에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다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을 고르라면 마지막 9번째 단편인 <수정염주> 라는 단편이다. 지방의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영화배우를 꿈꾸는 아들과 그를 반대하는 아버지 이야기, 그 집안에는 대대로 행운을 가져다주는 수정염주 라는 물건이 전해내려오는데, 그 물건이 지닌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뭔가 뻔한 스토리 같으면서도 끝에가서 꽤나 심쿵한 결말로 끝나는 바람에 뭉클하고 감동스러웠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단편버전 같다고 했는데, 정말 딱 그런 느낌이다.
<고장난 시계> 라는 단편도 인상 깊었는데, 먹고 사는게 어려워 심부름을 해주고 돈을 받는 일을 하던 주인공,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이 범죄의 일부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맡겨진 일들을 수행한다. 그러던 그가 어쩌다 보니 범죄현장에서 사람을 죽이게 되는데... 과연 그는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지나치게 추리물을 많이 보면 저렇게 될 수도 있는 걸까. 어이없는 주인공의 결말이 너무 웃겼다.
<10년만의 발렌타인데이>는 10년전에 이유없이 이별통보를 받았던 여인에게 갑작스러운 데이트 신청을 받고 나간 잘 나가는 작가의 이야기다. 그 여자는 10년전 갑자기 왜 나를 버렸을까. 이제 내가 잘 나가는 작가가 되니 다시 잘되고 싶나보지? 하고 생각하며 나갔던 그에게 과연 무슨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대 눈동자에 건배>는 우연히 친구를 따라 나간 소개팅 자리에서 만난 여자,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어 쉽게 친해졌지만, 그 이야기 외에는 도무지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는 여자에게 섭섭함을 느끼는 남자의 이야기다. 끝에 밝혀지는 이 두 남녀의 정체가 아주 놀랍다.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지금 시기에 딱 어울리는 이야기지만, 읽고 나서도 계속 궁금증과 미스터리함이 따라다니는 이야기이다. 잘나가는 시나리오 작가와 사귀게 되어 출세길에 오르게 된 배우가 이제는 작가가 오히려 자신의 앞길을 막으려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살인을 감행한다. 과연 그는 완전 범죄를 할 수 있을까?
크고 작은 반전들이 뒤통수를 치고 들어오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에서 그의 다양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도대체 어디서 이런 수많은 소재를 찾아와서 공장에서 찍어내듯 책을 쓸 수 있는 것일까. 나에게는 그의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이긴 하다. 앞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소설들을 더 많이 읽어보면서 그의 매력과 비밀을 마구마구 캐내봐야 겠다.
아름다운 이 밤,
히가시노 게이고, 그대 눈동자에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