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들린 목소리들
스티븐 밀하우저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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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끝까지 읽어나가는데 수 많은 밤이 소요되었다는 사실을 먼저 고백해야겠다. 500페이지 가까운 두께 때문이기도 했지만, 16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소설은 거의 모든 이야기가 매우 기묘해서 한번에 여러 편을 몰아서 읽어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매일 밤 자기 전에 초코렛을 하나씩 꺼내먹듯 단편 1~2개 정도씩을 읽어나갔다. 제목을 보고 환상적인 느낌이 가득한 공포소설 종류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철학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신도 부러워한 필력을 가진 작가라는 소개를 보고 스티븐 밀하우저라는 저자에게 처음 관심을 가졌었는데, 읽다보니 실제로 필력이 대단하기는 하다. 어쩌면 흔할 수 있는 주제를 가지고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접근해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거나, 혹은 이미 유명한 <인어공주>나 <라푼젤> 같은 동화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동심을 깨부수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밤에 들린 목소리들》의 첫 번째 단편 『기적의 광택제』부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어느 날 우연히 수상한 방문판매자에게 거울 광택제를 사게 된 남자는 그 광택제의 독특한 효과를 알게 된다. 바로 거울에 광택제를 바르고 거울을 보면 늙고 활기없던 자신의 모습이 젊고, 활기차보이고 심지어 멋져보이기 까지 하는 것이다. 거울에 비친 것은 모든 것이 마치 자체 뽀샵을 거친 것처럼 아름답고 빛나보인다. 그렇게 남자는 거울에 미쳐가기 시작하고, 오직 광택제 발린 거울 앞에서만 생기를 얻으며 온 집안을 거울로 도배하기 시작하는데...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광택제를 통해서 보는 거울이란 대체 어떤 의미일까란 생각을 해봤다. 난 문득 요즘 시대의 SNS 같은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거울로 보는 실제 모습이 아니라 핸드폰 자체 필터를 거쳐 눈이 커지고 턱이 깎인 아름다운 내 모습이 진짜라 믿고 싶은 심리 같은거? 자신의 제일 즐거웠던 경험, 혹은 자랑하고 싶은 멋진 모습만 잔뜩 찍어서 올리면 그게 정말 자기모습 같기도 하니까, 그렇게 화려한 자신에게 현혹되어 중독되다가 자신의 실제 우울하고 비참한 모습을 맞이했을 때의 괴리감 같은 느낌, 뭐 그런거 말이다. 

저자는 기묘해 보이는 이상한 이야기들을 자유자재로 풀어내며 독자들이 자기 나름의 상상력을 펼치도록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안에서 문득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데, 내게는 『우리의 최근 문제에 대한 보고서』 와 『젊은 가우타마의 쾌락과 고통』 같은 이야기들이 그랬다. 두 이야기는 사람이 너무 아무런 문제없이, 고통도 어려움도 없이 살아가기 시작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 같다.
 『우리의 최근 문제에 대한 보고서』는 어느 한 마을에 갑작스럽게 일어난 자살유행에 관한 이야기다. 처음엔 학생들이 관심받기 위해 하나 둘씩 자살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점점 자살하는 연령대가 높아지고, 다양해지며 마을에서 아무문제 없이 잘사는 부부가 파티 후 나란히 자살을 하기도 한다. 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에 떠나고 싶다는 말을 남긴 채. 이 단편은 보고서 형식처럼 사람들의 자살의 이유가 어쩌면 너무나 평온하고 아무 문제 없는 마을에 살아서라고 난데없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보고서에서 내세우는 앞으로의 자살방지 대책을 들어보면 참 황당해서 혀를 내두름직하다. 
『젊은 가우타마의 쾌락과 고통』 은 싯다르타의 실제 삶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한 이야기로 보인다. 궁에서 아무런 고통과 모자람없이 자라온 가우타마 싯다르타는 세상의 모든 슬픔과 노화, 나쁜 것으로부터 차단된 채 살아왔다. 오로지 즐거운 쾌락만이 그의 삶을 채우고 있다. 심지어 나뭇잎이 나무에서 떨어진다거나, 어떤 사람이 자신 앞에서 운다거나, 늙은 노인조차도 한번도 본 적없이 너무나 퓨어한 세상에서 살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오로지 행복밖에 몰라야 할 것 같은 그가, 근심에 빠진다. 오히려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에 매혹을 느끼기 시작한다. 어떤 과정을 거쳐 궁을 떠나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고, 부처와 같은 깨달은 자가 되었는지 그 시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의 단편들은 하나같이 독특하면서도 극단적이고 또한 흥미롭다. 있음직한 이야기가 아니라 상상력의 극단에서 쓴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환상적이면서도 기이하다. 그럼에도 단편마다 그 나름의 작가철학이 들어 있는 것 같기도 해서 저자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이야기를 쓴 것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밤에 들린 목소리들》은 확실히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나 또한 많은 시간을 들여서 읽었고, 하나하나 시간을 두고 꼭꼭 씹어먹어야 겨우 이해할 수 있기도 했다. 어떤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눈이 스르르 감겨 도저히 못 읽어내겠기에 그냥 넘어가기도 했다.  그래도 책 끝장을 덮고 나니 뿌듯한 느낌이 든다. 뭔가 전혀 새로운 세상을 접해본 듯한 야릇한 기분도 들고, 살면서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신기한 생각을 해보기도 했으니까. 

극단적이면서도 철학적인 기묘함을 맛보고 싶은 사람은 한번 도전해보시길. 
대신, 매일 한 편씩만 꺼내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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