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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만에.
최근에 읽은 소설 중에 가장 강렬한 시작을 알리는 첫 문장이었다. 남자아이 아당은 이미 죽었고, 딸아이 밀라는 강렬하게 저항하다 죽어가고 있다. 아이를 죽인 보모는 자살하기 위해 자신의 팔목을 긋고, 목에 칼을 꽂았지만 결국 죽지 못했다. 그녀는 왜 아이들을 죽였는가. 그녀는 도대체 누구인가. 끔찍한 살해현장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함께 시작하는 이 소설은 긴장감 가득하게 시작하지만, 다 읽고 나서는 알쏭달쏭한 마음만 한가득이다. 이 책의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는 두번째 책으로 <달콤한 노래>를 내고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2016년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여성으로서는 역대 12번째 수상자라는 영예를 안게 된 그녀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엄마 미리암과 보모 루이즈의 언제 깨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긴장 상태와 완벽한 듯 보이지만 어딘가 수상한 보모 루이즈의 속마음을 상상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리암과 폴은 결혼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이를 얻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미리암은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전적으로 육아에 매진하게 된다. 처음엔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것 같다. 초라한 모습으로 외출했던 어느 날, 미리암은 법대에 같이 다녔던 친구 파스칼을 만나게 된다. 파스칼을 보자 자신의 처지가 더욱 한심스럽게만 느껴지던 차, 파스칼이 뜻밖의 일자리를 제안하게 된다.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 여기며 미리암은 변호사 일을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렇게 자기를 대신해 아이들을 봐줄 보모를 찾게 된다.
부부는 여러사람을 면접 했지만 그 중 루이즈는 단연 완벽했다. 루이즈가 그전에 아이를 봐줬던 주인집 사람들도 루이즈에 대해 너무나 칭찬일색이다. 우아한 말투와 조용한 행동거지를 가진 루이즈를 보모로 맡게 되어 미리암과 폴은 너무나 만족스럽다. 루이즈는 보모의 역할을 완벽하게 하는 것은 물론, 미리암이 잘 하지 못하던 집안 청소와 식사 준비까지 완벽하게 해내기 시작한다. 어느새 루이즈는 미리암과 폴 부부에게 없어서는 안될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가 되어간다.
작품 속 보모 루이즈의 캐릭터는 참 독특하다. 보모로써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내고 아이들과 진심으로 동심에 젖어 함께 놀아주는 사람이지만 정작 자신의 딸 스테파니는 방치하고 심지어 학대하기도 한다. 딸이 끝내 사라졌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미리암의 집에서 그토록 완벽하게 살림을 하고, 척척 음식을 해내던 루이즈는 막상 자신의 원룸 아파트에 도착하는 순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마치 스스로가 자신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 같다. 주변의 다른 보모들과는 전혀 사적인 것을 공유하려 들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을 가르치려 들어서 루이즈는 그들 사이의 암묵적인 왕따같은 존재다.
시간이 지나면서 몇가지 사건을 겪고 난 후, 미리암과 폴은 점점 루이즈에게 불편한 기색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하지만, 각자의 일이 성공가도를 타기 시작한 참이라 너무 바쁘다. 루이즈가 당장 그만둔다면 생활이 굴러가지 않을 정도로 너무 많이 의지하게 된 것이다. 루이즈는 완벽하게 이 가족에게 동화되고 싶다. 아이들이 모두 유치원에 가게 되어 보모가 필요없어지게 될 상황이 두려워진다. 그녀는 그렇게 자기 자신으로서가 아닌 다른 가족 안에서 동화된 감정을 느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녀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자신의 삶, 자기 딸의 삶보다 자기가 보모로써 돌보는 아이와 그 가족이 우선이 된 삶, 그건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던 것일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알쏭달쏭한 느낌과 함께 먹먹한 감정이 올라온다. 주인집 아이들을 죽이고 자기도 죽고자 했던 여자, 인형처럼 가녀린 몸을 지니고 평생을 있는 듯 없는 듯 살았던 여자, 그녀의 속엔 도대체 무슨 마음이 숨어있었던 걸까. 하루아침에 아이를 다 잃고 짐승처럼 울부짖은 미리암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작가가 <달콤한 노래>를 통해 여자들의 어떤 면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는지 궁금해 진다.
달콤한 일상 속에 숨어있던 전혀 달콤하지 않은 이야기들과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은 루이즈,
나는 아직도 그녀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