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든 것의 기원 - 예일대 최고의 과학 강의
데이비드 버코비치 지음, 박병철 옮김 / 책세상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중학생 때로 기억한다. 머리를 한껏 뒤로 젖히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저 별빛이 몇 광년되는 거리에서 왔단 말이지?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별이라니...' 학교에서 별에 대한 이야기를 배우고 나서 올려다 본 밤하늘은 아무 생각없이 본 하늘과는 좀 달라보였다. 광활하고 까만 우주를 생각하면 기분이 너무나 아득해져서 지금 내 앞에 있는 자그마한 고민들은 아무것도 아닌걸로 여겨지곤 했다. 마음이 복잡해질 땐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까마득한 우주를 상상했다. 어린 사춘기 소녀의 꽤나 철학적인 자기위로였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부터 지구과학 과목을 좋아했다. 우리를 둘러싼 우주와 그 속에 속한 지구를 나와 떼놓고 과학적으로 생각해본다는건 꽤나 재미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의 기원>은 그야말로 우주의 탄생인 빅뱅부터 시작해서 은하계와 별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지구는 어떻게 생겨났고 생물이 살아가기 적합한 환경이 될 수 있었는지, 특히나 지구에 우리같은 생명체가 생겨날 수 있었던 가능성과 환경에 대해 300페이지(원문은 100페이지)정도의 짧은 분량으로 쾌속질주하며 알려주는 책이다. 엄청난 빅 히스토리를 짧게 담고 있지만, 그 내용은 절대로 쉽지 않다. 방대한 내용을 대충 대충 쉽게 짚고 넘어가는 식이 아니라 오히려 아주 깊이 파헤쳐 다른 책에서 볼 수없었던 전문적인 지식까지 조목조목 알려주기 때문에 사실 일반인이 보기엔... 어렵다. 읽다가 외계어를 읽는 기분이 들어서 몇 페이지씩 훅훅 뛰어넘으면서 읽기도 했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땐 그냥 넘어가는 게 상책! 그렇게 이해할 수있는 부분만 건너뛰면서 읽어도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해하는데는 큰 지장이 없었던 듯 하다.
모든 것의 기원은 예일대의 과학강의 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데이비드 버코비치 교수에게 학생들이 찾아와 막무가내로 이런 수업을 해달라고 요청을 해서 만들어진 수업이라고 한다. 그 학생들은 이 수업을 듣고 정말 다 이해했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과학도나 물리학도가 아닌) 일반인의 지식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책이라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했다. 근데 요상하게도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니 (물론 띄엄띄엄 읽었지만) 우주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 있었던 일들에 대해 조금은 더 전문적으로 알게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기분상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p. 85> 그러나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가장 큰 미스터리는 '달月'이다. 행성이 위성을 거느리는 것이 뭐가 이상하냐고? 달이 있다는 것 자체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달의 질량은 목성이나 토성이 거느리고 있는 가장 큰 위성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목성의 질량은 지구의 300배나 되는데 목성의 가장 큰 위성인 가니메데Ganymede의 질량은 달의 2배 밖에 안된다 (2배 정도의 차이는 그냥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3장 태양계와 행성 중에서 >
지구에 가까이 돌고 있는 달은 실제로 미스테리한 존재이다. 달이 언제, 왜 생겼는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지구에서 보이는 다른 별들에 비해 달은 정말 무지막지하게 크다. 추석 때마다 엄청난 크기의 보름달을 보면 너무 크고 밝아서 놀랍고 경악스럽기 까지 할 때가 있다. 어떻게 저렇게 큰 위성이 우리 옆에 딱 붙어있을까 하고 말이다. 실제로 달은 지구에 중력을 행사해서 조수간만의 차를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 조간대에 사는 생물들이 수상 생활과 육지생활에 모두 적응해서 바다 생명체가 육지로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고 한다. 땅에 발 붙이고 사는 인간과 동물이 생겨난 것도 어쩌면 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 신기하다.
<p. 179> 희귀 지구 가설에 의하면 지구는 은하수의 적절한 위치에 자리 잡은 덕분에 생명체 탄생에 적절한 환경을 확보할 수 있었다. 만일 우리의 태양계가 은하수의 중심에 가까웠다면 초대형 블랙홀이 내뿜는 가공할 복사에너지에 초토화되었을 것이다. 또한 지구는 탄생시기도 적절했고(생명에 필요한 원소들이 모두 만들어진 후에 탄생했다), 물이 고체, 액체, 기체 상태로 모두 존재할 수 있을 정도로 태양과의 거리도 적당했다. 천문학적 조건 외에도 지구는 지질구조판을 갖고 있어서 안정된 기후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달의 조력에 의한 조수현상 덕분에 수상생물이 육지생물로 진화할 수 있었다. (...) 뿐만 아니라 지구는 자전축이 공전 면에 대하여 적당한 각도로 기울어져 있어서 계절이 주기적으로 변했고, 그 덕분에 다양한 생명체가 출현할 수 있었다.
< 6장 기후와 서식 가능성 중에서 >
넓디 넓은 우주, 우리 은하계 너머 어딘가에는 또다른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아는 한 우리 은하계에서는 지구 외의 별에서 생명체를 발견한 일이 없다. 지구는 하필 적절한 위치에서 적절한 기후와 환경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지금의 인류라는 것이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행운 속에서 생겨난 생물체인지도 모른다. 예전에 드라마를 보다가 별거 아닌데 머리에 확 박힌 대사가 있다.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배두나가 조승우와 나누는 대화였다.
배두나가 조승우에게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해요?" 라고 묻는다.
"네"
"왜요?"
"(하늘을 가리키며) 공간 낭비니까?"
외계인이 있을까 없을까에 대한 대화 중 생각나는 가장 명쾌한 대답인 것 같다. 이 광활하고 끝도 없는 우주에 생명체가 우리 밖에 없다는 것은 그야말로 공간낭비 아닌가 말이다.
<p.259> 이 책의 서두에서 말했듯이 우주의 역사를 24시간으로 축약했을 때, 인간의 역사는 길게 잡아봐야 0.04초 밖에 안된다. 이 책 전체가 우주의 역사라면 인간의 역사는 마지막 문장 끝에 찍힌 마침표쯤 될 것이다.
< 8장 인류와 문명 중에서 >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나타난 건 우주의 역사로 보면 불과 1초도 안되는 시간 전에 갑자기 휙 하고 나타난 꼴이다. 그런 인간들이 짧은 시간에 모든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등극하여, 지구 환경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위치에 올라섰다. 하지만 우리가 밝혀낸 우주의 비밀은 아직 먼지만큼도 안 될 듯 하다. 심지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다. 그렇기에 우주 너머에 뭐가 있을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모든 것의 기원> 은 광활한 역사 속 알아야 될 지식들만 쏙쏙 뽑아내서 잘 정리해놓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빅히스토리 책 일 듯 하다. 좀 더 깊게 전문적으로 이 우주와 모든 것의 기원을 알고 싶은 사람들은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물론 어려운 건 각오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