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니처 나비사냥 2
박영광 지음 / 매드픽션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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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칼에 스무번 넘게 지속적으로 찔리면서 죽어가는건 어떤 느낌일까. 과연 이게 상상 가능한 고통일까? 여기 오직 죽어가는 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냄새를 즐기기 위해 비오는 밤마다 먹잇감을 찾아 헤매이는 연쇄살인범이 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 피튀는 살해 현장을 뒤에서 유유히 지켜보는 눈이 하나 있다. 자신이 노렸던 먹잇감을 죽이고 있는 또 다른 살인범과의 만남, 그 순간 둘은 같은 살인마로써 뭔가 통했던 걸까. 이들은 살인하는 방법 즉 자신만의 독특한 살해 방법인 '시그니처' 로 서로 사인을 보내며 소통한다. 이들의 미친 살인경쟁은 어떤 결말을 맺을까. 

시그니처 는 현직 형사가 직접 쓴 범죄수사 소설이다. 소설에 나오는 두 살인범도 실제 연쇄살인범인 유영철과 정남규를 모델로 하여 실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상상을 더해 픽션화 했다. 실제 유영철은 경찰에 잡히고 나서 자신의 살해에 대한 아무런 증거가 없었던 이남동 살인 사건에 대해 자신이 저지른 살인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범인은 2년뒤에 잡힌 정남규로 밝혀졌다. 작가는 살인현장에 없었다면 절대 알 수 없는 디테일한 부분까지 유영철이 다 알고 있었다는 부분에 착안하여 혹시 유영철이 그 당시 살인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 

소설은 주인공인 태석의 옛 사랑 지선이 어느 날 갑자기 범죄의 습격을 받아 집 앞에서 20번 넘게 칼에 찔렸으나 가까스로 살아나 의식없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서서히 전개된다. 젊은 날, 둘은 사랑했고 결혼을 약속했지만 마을 군수였던 지선 아버지의 반대로 태석은 지선에게 이별을 고하고 서울로 가게 된다. 하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지선을 범죄의 피해자로 만나게 되자 태석은 마음이 착찹하기만 하다. 그러면서 점차 그동안 지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된다. 태석이 지선을 잊고 살았던 그 시간 동안에도 지선은 태석을 잊지 못하고 힘든 세월을 보내왔던 것이다. 태석은 잊고 있던 지선에 대한 감정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하고, 지선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미친듯이 범인을 잡기 위해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하지만 태석의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이 주변 경찰들에게는 불편하게만 느껴지는데... 그래서 태석은 같은 경찰들의 방해와 눈치를 받으며 어렵사리 사건을 수사한다. 

경찰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살인범은 유유히 길거리를 누비며 새로운 먹잇감을 찾고, 또다른 살인범의 시그널에 반응하며 점점 살인을 발전시켜 나간다. 살인범의 어린 시절 끔찍한 과거 시절도 중간중간 나오는데 어릴 적 환경이 그렇지 않았다면 과연 살인범이 되지 않았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소설 시그니처 는 현직경찰이 직접 쓴 범죄소설이라 그런지 사건에 현실감도 있고, 수사과정이나 경찰 내부 조직의 분위기도 세부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좋았지만, 아쉬웠던 점은 주인공 태석과 지선의 이야기만 너무 붕뜨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현실감 있는 사건들 가운데 지선의 독백과 이야기는 너무 옛날 신파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고, 태석은 주인공으로써 충분히 매력있긴 하지만, 모든 면에서 실수 하나 없이 딱딱 떨어지는 완벽 히어로 같은 모습이라 오히려 좀 아쉬웠다. 나머지 인물들이 모두 주인공 태석을 빛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엑스트라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서 현실적인 범죄묘사 부분에 비해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어설픈 사랑 이야기를 덜어내고 좀 더 사건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풀어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500페이지가 넘는 두께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술술 잘 읽히고, 다음 얘기가 자꾸자꾸 궁금해지도록 만드는 힘이 있는 소설이다. 전편 나비사냥에서 이어진 두번째 얘기로 알고 있는데, 나비사냥의 내용을 몰라도 소설을 읽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소설 초반 태석의 여동생이 범죄의 피해자로 나오는데, 아마도 그 사건이 전편인 나비사냥에 대한 사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그니처를 읽고 나니 오히려 앞 이야기인 나비사냥이 궁금해진다.  

연쇄살인범의 서늘함을 느끼고 싶다면 한번 읽어보시길. 아마 비오는 날 밤에는 밖에 나가기 싫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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