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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음을 정리해 드립니다
가키야 미우 지음, 이소담 옮김 / 지금이책 / 2017년 8월
평점 :
이렇게나 읽으면서 뜨끔뜨끔한 책이라니, 책을 읽다 주변을 자꾸 돌아보게 됐다. 탁자위에는 여러권의 책들이 나뒹굴고 있고, 소파에는 벗어던진 옷과 가방이 아무렇게나 어질러져 있는 내 주변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나도 혹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걸까? 잠시 생각해봤지만, 결론은 귀차니즘이다. 책을 다 읽자마자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며 며칠 묵은 먼지들을 털어냈다. 냥이가 있는 집은 하루만 청소를 안해도 살수가 없다. 털을 뿜뿜하는 냥이와 하루가 멀다하고 집에 도착하는 책 택배들, 몇일만 정신을 안차리면 온 집안이 냥이털과 냥이 화장실모래, 그리고 여기저기 던져놓은 택배박스들로 난리가 난다. 그나마 책에 나오는 하루카의 집만큼 쓰레기집은 아니라는 것에 스스로 위안삼으며 그래도 좀 더 깨끗하게 살기로 결심해본다.
<당신의 마음을 정리해 드립니다> 는 정리 전문가인 도마리가 4가지 케이스 고객들의 집에 방문하면서 집안 정리에 대해 겪은 일들을 소설로 풀어낸 이야기다. 재미있는 건 집을 정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지저분한 집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의 심리에 중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가진 심리적인 문제를 건드려 깨닫게해줘서, 스스로 문제점을 깨닫고 알아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이다.
첫번째 케이스인 하루카는 번듯한 직장이 있는 고소득자 32세 여성인데 집에는 발디딜 틈이 없도록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차있다. 집안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썩고있는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코끝을 찌르고, 물건들이 길을 가로막아 창문쪽으로는 갈수도 없고, 당연히 주방도 엉망진창이라 음식을 해먹을 생각은 하지도 못하며 매일 편의점 음식같은 인스턴트로 끼니를 때운다. 친구가 홈파티에 초대하는 척 하면서 자신의 아이를 봐달라고 은근슬쩍 맡긴다는 걸 알면서도 거절하지 못하는 바보같은 여자다. 회사내에 남자친구가 있고 5년이나 만났지만 그 남자는 유부남이라 남에게 대놓고 얘기도 하지 못하는 처지이다. 그 남자는 이혼 할테니 자기와 결혼해달라며 하루카에게 매달릴 때는 언제고, 최근엔 21살의 새파란 어린애 후린과 바람이 났다. 그런 사실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이러지도 못하고 있는 우유부단함의 결정체 하루카, 그녀는 도마리의 도움으로 쓰레기집에서 스스로 탈출할 수 있을까?
소설에 나오는 각 사례들은 겉으로 보기에 꼭 쓰레기장처럼 더럽지 않더라도 가지고 있는 물건을 절대 못버리는 사람, 먼저 떠난 아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집안일을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 모든 일에 의욕이 없어 집안일에 완전 손을 놓아버린 사람 등등 비슷한 듯 다른 배경으로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가진 마음의 문제는 다 다르지만, 도마리는 세심하게 곁에서 관찰하고 주변 가족들과의 문제들을 파악하여 은근슬쩍 도움을 주고 본인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준다.
나도 한때, 이유 모를 우울증이 한참 내 정신을 지배하던 때가 있었다. 마냥 아무것도 하기 싫고 삶에 의욕이 없었으며,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종일 멍하니 앉아서 보냈고, 집청소는 물론 밥도 거의 안 챙겨먹는 생활이 지속되었었다. 마음의 병은 주변이 어떻든 신경쓰지 않게 만든다. 스스로가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으니 힘들여 청소할 필요도, 나 자신을 챙겨야 할 필요성도 못느끼기 때문이다. 그때의 황폐한 정신 상태를 떠올려본다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의 상태가 이해가 되기도 한다.
당신의 마음을 정리해 드립니다 는 자신도 모르던 마음의 병을 물리적인 환경을 보고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사람은 자신의 심리상태를 어떻게든 주변에 표식으로 남기나보다. 책에 나오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짓을 나도 조금씩은 다 해본 것 같다. 한때 미친듯이 많이 하던 충동구매, 쓸데 없는 물건도 버리지 못하던 습관들이 지금은 어떻게 나아졌지 생각해보면 심리상태가 변해서 인가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심리를 '정리' 라는 키워드를 통해 풀어낸 것이 흥미롭다.
그나저나 나도 도마리 처럼 청소하는 것이 즐거우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거야.
나도 도와줘요 도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