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저넌에게 꽃을
대니얼 키스 지음, 구자언 옮김 / 황금부엉이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펼쳐들자마자 눈을 의심케 하는 오타 투성이의 초등학생 일기 수준인 찰리 고든의 '경과 보거서'를 볼 수 있다. 찰리고든은 33살의 어엿한 어른이지만, 아이큐 68의 저능아 어른이다. 한 대학교에서 실험실 쥐 앨저넌의 뇌를 수술해서 쥐의 지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수술에 성공하였고, 그 기술을 처음으로 인간에게 적응해보기 위한 적임자를 찾았다. 찰리는 배우고자 하는 동기가 아주 뛰어난 저능아였기에 운좋게도(?) 수술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찰리는 수술 전 천재 쥐 앨저넌 과의 미로찾기 게임에서 단 한번도 이길 수 없었지만, 수술 후 앨저넌과의 미로게임 따위는 가뿐히 이길 수 있는 천재가 되어간다. 

< 앨저넌에게 꽃을 >은 찰리 고든이 수술을 받기 전인 저능아 시절부터 수술을 받고 나서 엄청난 지능을 지닌 천재가 되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 또다른 변화를 맞이하게 되기까지의 모든 경과보고서가 담긴 책이다. 날짜상으로 따지면 3월부터 11월까지인 고작 8개월 남짓의 시간동안 이 세상 사람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바보와 천재사이를 벼락같이 오간 그의 이야기는 SF 소설 의 탈을 쓴 휴먼스토리이다.  


일반적인 감각을 지닌 사람이라면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으며, 따라서 원인도 두가지 라는 점을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빛에서 빠져나올 때와 빛 속으로 들어갈 때이며, 이는 육신의 눈 뿐만 아니라 정신의 눈에도 해당된다. 이 점을 기억하는 사람은 시야가 흐릿하고 혼란스러운 사람을 보았을 때 쉽게 웃지 않을 것이다. 먼저 그 사람에게 더욱 밝은 곳에서 지내다가 벗어나서 어둠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지를 물어보거나, 아니면 어둠 속에서 있다가 대낮의 빛을 향해 고개를 돌려서 지나치게 밝은 빛을 봐서 앞을 못 보는 것인지 물어볼 것이다. 그는 자신과 같은 조건과 존재 상태에 있으면 행복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가엾게 여길 것이다. 저 아래에서 올라와 빛 속으로 걸어가려는 자를 보고 웃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 웃음은 빛에서 나와 동굴로 되돌아가려는 자를 맞이하는 웃음에 비해 더욱 그럴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플라톤 [국가], 앨저넌에게 꽃을 p. 5 >



빛과 어둠에 관한 플라톤의 글이 이야기 시작 전에 서문처럼 쓰여져 있다. 책을 읽으면서 줄곧 이 글의 의미심장함을 느꼈다. 
바보가 갑자기 천재가 되면 어떤 현상이 생길까? 예를 들어 내가 불쌍히 여기던 옆집의 동네 바보가 어느 날 천재가 되어 돌아와 20개 국어를 하고, 듣도보도 못한 이론에 관해 나에게 묻기 시작한다면 나의 반응은 어떨까? 거기다 그동안 그가 알아듣지 못할거라 생각하며 막 내뱉었던 말을 그가 다 기억해내서 "사실은 그때 니가 날 비웃고 무시했던 거구나." 하고 나온다면 난 좀 무서울 것 같다... 

찰리 고든은 저능아로 태어나 어릴 적 부모에게 버림받고, 어느 빵가게에서 청소 등의 잡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빵가게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그가 순진하고 착한 바보라서 마음껏 놀려먹으며 지낸다. 찰리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웃어주는 것이 좋다. 그들이 자신을 좋아하기 때문에 웃어주는거라 생각하며 '좋은 칭구들'이라 여긴다. 찰리 옆에서 "야, 너 찰리 고든 같은 짓 좀 하지마." 라며 자기들끼리 찰리를 놀리며 조롱하는 말을 해도 찰리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찰리가 극비리에 뇌수술을 받고 조금씩 지능이 상승하기 시작한다. 천천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들이 그때 나를 비웃었던 것이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바보같이 웃고만 있었구나.' 그런 생각들이 찰리를 괴롭히고, 외롭게 만든다. 변화는 빵가게 동료들에게도 찾아온다. 바보같았던 찰리가 어느 날부터 눈빛이 달라지고 똑똑해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자신들이 모르는 어려운 말을 하기 시작한다. 찰리에게 두려움과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 동료들은 이제 스스로 찰리를 피하며, 같이 일하기 싫다고 하기에 이른다. 자신의 정신적 고향이었던 빵가게에서 쫓겨나듯 그만두게 된 찰리는 똑똑해짐과 동시에 외로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찰리는 계속적인 심리 상담으로 어슴프레하기만 하던 머릿속 기억을 되짚어가며 자신이 왜 부모에게 버림받았는지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가기 시작한다. 그 속에서 자신의 부모님이 자신을 대하던 태도와 여동생과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 또한 자신의 글자 선생님이었던 키니언 선생님이 점점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다. 저능아 일때는 어른으로만 보였던 그녀가 생각보다 어렸다는 것에 놀라며 그녀를 사랑하는 감정을 가지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와 깊은 관계를 맺으려 하면 머릿속이 윙윙거리며 공황장애가 온다. 자신에게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왜 저능아 찰리가 내 몸에서 떨어져 나와 멀리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드는지, 찰리는 혼란스러워하며 자신의 모든 지적 능력을 총 동원해 연구를 하기 시작한다. 

소설을 읽으면, 어눌하고 오타투성이었던 그의 글이 시간을 거듭할수록 점점 유려해지고, 나중에 가서는 이해하기도 힘든 고차원적인 말도 쏟아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자신을 수술했던 교수와 박사도 찰리와의 대화에서 지식의 한계를 드러내고, 찰리는 그들도 결국엔 전문성에 한계가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무지라는 어둠속에 갖혀살던 찰리가 지식이라는 빛을 알게되고, 그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수록 주변 사람들은 자신의 무지가 드러날까 두려워하고 그를 피하게 된다. 소설 < 앨저넌에게 꽃을 >은 바보가 단시간에 천재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본인의 심리적 문제, 주변사람들의 변화 등을 잘 짚어내고 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아프다. 어쩌면 그냥 모르는게 약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저능아였던 찰리는 주변의 놀림을 당할지언정 그래도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겼으나 똑똑해진 찰리는 알게 되는 것이 많아질수록 점점 고독해지고, 그의 똑똑함이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고 주눅들게 만들기도 한다. 찰리에게 행해진 실험을 발표하는 자리에 실험참가자로 함께 가게 된 찰리는 자신이 실험실 돼지가 된 듯한 느낌을 가지며 저능아였을 때는 마치 인간이 아니었던 것처럼 취급 받는 것에 분노한다. 그리고 자신의 동료 천재 쥐 앨저넌과 함께 도망치는데...  과연 그는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가슴이 저릿함을 느꼈다. 그냥 엎어져 펑펑 울고 싶은 기분이랄까. 너무 티없이 순수한 어린아이를 보면 눈물이 핑도는 것처럼, 마냥 울고 싶은 그런 느낌. 문체만으로 한 인간의 지능수준과 감정상태를 눈에 보일듯 잘 나타낸 대니얼 키스에게 찬사를 보낸다. 과연 SF계의 노벨상 인 휴고상과 네뷸러상 수상작 답다. 그의 다른 저서 빌리밀리건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앨저넌과 찰리, 대니얼 키스 모두에게 꽃 한송이 소박하게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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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1 08: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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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1 14: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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