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마짱의 심부름 서비스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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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서 전해지는 선한 이웃들과 가족간의 따스한 느낌, 시원한 바닷바람이 넘실거리는 조용한 시골동네의 정 넘치는 모습들 때문에 오랜만에 콧잔등이 시큰시큰했다. 난 대놓고 슬픈 이야기보다 이런 따뜻한 이야기에 더 약한가보다. 책 표지에서 전해지는 맑고 따스한 느낌의 에너지가 이야기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것 같아 책을 읽고 나면 몸 전체가 한꺼풀 벗겨진듯 나마저도 좀 더 착하고 순해진 느낌이 든다. 타마짱의 심부름 서비스 의 공식 테마곡 코니 프란시스의 흥겨운 'vacation'도 찾아서 여러번 들었더니 책에서 타마짱이 테마곡을 틀고 심부름 서비스를 시작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노래를 같이 흥얼거렸다. 
♬ V-A-C-A-T-I-O-N! In the summer sun!~ 

타마짱의 심부름 서비스는 실제로 일본의 '마오짱'이라는 심부름 서비스를 만든 실제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설 이라고 한다. 쇼핑약자가 사회문제로 떠오를 만큼 쇼핑사막이 많이 존재하는 일본사회에서 꼭 필요한 존재와 그와 관련된 따뜻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작가는 마오짱과 동승하여 취재를 다녔는데 노인들이 마오짱을 실제 손녀처럼 따뜻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이 이야기를 소설로 써야겠다고 확신했다고 한다. 

매일 바다를 보며 사는 사람들이라 그런걸까. 이 소설에는 진정 인생에 감사하고, 주어진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멋진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몇년 전 사고로 딸을 잃었지만 남은 가족들에게 딸이 남기고 간 행복만큼 더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타마짱의 멋진 외할머니 '시즈코', 언제나 호탕하고 긍정적인 웃음으로 주변사람까지 밝게 만드는 타마짱의 아버지 '쇼타로', 어설프지만 넘치는 사랑으로 타마짱에게 어떻게든 힘이 되어주고 싶어하는 필리핀인 새엄마 "샤린", 이들은 타마짱에게 너무나 큰 힘이 되는 든든한 가족이다. 


1분, 1초, 지금 이 순간도 나는 귀중한 생명을 소모하며 꾸준히 '죽음'으로 다가가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드니 내가 원하는 대로 나답게 살지 않는 시간이 아까워 견딜 수 없어졌다. 그 조바심이 내 안에 쌓여 점점 무거워질수록 '불안'으로, 혹은 '공포'와 비슷한 감각으로 발전하여 마음을 짓눌렀다. 내가 '심부름 서비스'를 생각한 것은 대학 생활을 겉으로만 즐기며 생명을 허비하고 있는건 아닌지 불안했던 때였고, 그래서 내 결단은 빨랐다. <p.130>



엄마가 돌아가시 전 타마짱에게 한말이 있었다. '생명은 곧 시간이란다.' 자신에게 남아있는 생명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전부라고 생각하니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타마짱은 심부름 서비스를 창업하기로 결심한다. 시골에는 곳곳에 가게가 있지않아 교통이 불편한 곳에 사시는 노인들은 쇼핑하는 것 자체가 주변의 도움이 없으면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사랑하는 시즈코 외할머니가 쇼핑약자 였단 사실을 깨달은 타마짱은 할머니와 마을의 모든 노인들을 위해 의미있는 시간을 쓰기로 한 것이다.   


손님 중엔 쇼핑이나 수다라는 목적 없이도 밭에서 갓 수확한 채소를 들고 일부러 나오는 분도 계셨다. 사실은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그럴때 나는 사양하지 않고 받는다. 먹고나서 다음에 만날 때는 반드시 "정말 맛있었어요.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한다. 그렇게만 해도 할머니들은 얼굴에 주름을 잔뜩 잡고 웃어준다. 
심부름 서비스를 시작한 후로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타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순수한 행복감을 느낀다는 당연한 깨달음. 서로 고맙다는 인사를 주고받는 관계가 성립되어 '감사의 캐치볼'을 계속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p.268>


타마짱은 마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주문받아 판매하는 것 외에도 거동이 불편한 혼자 사는 할머니 댁에는 주기적으로 찾아가서 인사도 하고, 필요한 것이 없는지 살피고 가져다 드리기도 한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살뜰한 손녀 역할을 톡톡히 해내던 타마짱은 어느날 무서운 진실을 맞딱드리게 된다. 엄마가 타마짱이 놓고간 준비물을 가져다주려고 집을 나섰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사실, 그 사실을 깨닫고 엄청난 죄책감과 충격에 휩싸인 타마짱의 마음을 토닥여주는 아빠의 말은 아프고 아름답다. 


"엄마가 단 하나뿐인 인생을 살면서 누려야 했을 즐거움이나 행복까지 모조리 짊어지고 살아. 다시 말하면, 엄마 몫까지 굵고 길게 인생을 즐기라는 거야. 짊어지라는 아빠의 말은 그런 뜻이란다. " <p.307>


눈부시게 빛나는 바다가 유유히 흐르고, 순박하고 좋은 친구들이 있는 고향마을. 그 눈부신 풍경 속에는 사람의 인생이란 으레 그런 것처럼 슬픔과 기쁨이 비슷한 비율로 자리잡고 있다. 엄마를 잃은 슬픔을 마음 속 한구석에 묻은 채 밝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타마짱의 가족들, 엄마가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셔서 태어나서 한번도 엄마의 손길을 느껴본 적이 없는 타마짱의 소꿉친구 소스케,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고 싶어 용기를 내어 도시로 나가 취업했지만 거기서 회사 내 성폭행을 당하고 더 큰 정신충격을 받아 방안에만 틀어박히게 된 타마짱의 친구 마키, 마피아로 활동하며 젊은 시절을 탕진했지만 자신을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해주는 쇼타로 덕분에 다시 용기를 가지고 새인생을 시작하고 있는 무뚝뚝한 아저씨 후루타치, 이들은 모두 인생의 어두운 면을 겪으면서도 또 한편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열심히 살아가려 용기를 내는 인물들이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섞인 인생이라야 그림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 그림이 빛과 그늘로 그려지듯 행복과 불행은 인생을 더욱 아름답고 깊이 있게 채색하기 위한 소중한 소재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자신이 그려온 '인생이라는 이름의 그림'을 몇 걸음 뒤로 물러나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자기 인생을 객관적인 눈으로 감상할 준비가 되는 것이다. 
내 인생에 가장 절망적인 그늘을 드리운 사건은 남편과 딸의 죽음이었다. 그 그늘이 너무나 짙었기에 손녀의 생명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빛이 강하면 그늘은 짙어지고 그늘이 짙으면 빛이 더 눈부신 법이니까. <p.358>



나도 시즈코 할머니 처럼 늙고 싶다. 자신에게 주어진 행복과 불행 모든 것을 왜곡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어두운 그늘 덕분에 빛이 더 눈부심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답게 세상을 떠난다. 타마짱의 심부름 서비스는 인물별로 각자 화자가 되어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며 소설이 진행된다. 그들 모두의 웃는 얼굴 뒤에는 인생의 굴곡이 있고, 슬픔과 괴로움이 있다. 소설은 사람들의 인생처럼 추운 겨울, 만물이 소생하는 봄, 뜨거운 생명력이 솟구치는 여름,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 등 다양한 계절과 날씨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행복했던 이유는 이야기가 무작정 행복하기만 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눈부시게 아름다운 배경을 바탕으로 사람들 속에 속속들이 자리잡은 아픔과 괴로움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그 또한 이겨내며 다시 살아갈 힘을 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숨어있었기에 울면서도 웃고 싶었다.


울다가 웃으면 어디에 털이 난다지만, 그런 묘한 기쁨을 느끼고 싶다면 타마짱의 심부름 서비스 읽어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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