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면 그녀는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연애소설을 읽어본지 너무 오래됐다. 중학생 시절 책 대여점에 가서 분홍분홍한 표지의 귀여운 연애 이야기를 담은 하이틴 로맨스 책을 빌려봤던 기억 이후로 딱히 로맨스 소설을 읽어본 기억이 없는 것이다. 오랜만에 뜨거운 사랑 얘기나 한번 읽어볼까 하며 가와무라 겐키의 '4월이 되면 그녀는' 이라는 책을 펼쳐들었다. 푸르른 수채화 같은 우유니 천공의 호수에서 남녀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듯한 표지는 이 두 남녀의 뜨거운 사랑이야기 겠거니 하는 예상을 불러일으켰지만 의외로 이 소설은 교제를 시작했을 때의 러브러브한 감정을 잃어버린 채 점점 냉랭해져 가는 커플의 이야기, 사랑이 도대체 뭐냐며 오히려 되묻는 듯한 느낌의 소설이었다. 


저자 가와무라 겐키는 살면서 절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로 풀어보고 싶어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 죽음, 돈에 관한 것이었다. 죽음에 관한 소설은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돈에 관한 소설은 [억남] ,사랑에 관한 소설 바로 이 소설 [4월이 되면 그녀는]인 것이다. 소설을 쓰기전 조사를 위해 많은 사람을 인터뷰 했던 가와무라 겐키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뜨거운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람을 오히려 더 만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연애감정이란걸 점점 잃어가는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운 뜨거운 사랑이야기 보다는 일상적으로 우리가 접하는 너무 익숙해지다 못해 냉랭해진 연애, 습관처럼 되어버린 연애 같은 일명 '현실연애'를 컨셉으로 잡아 이 소설을 쓴 것 같다. 


사실 20살 무렵 열정만 가득 넘쳐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 아니면 죽어버릴 것 같던 뜨거운 열병같은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진짜 내가 그랬었나' 싶을 만큼 점점 아득하게 멀어진다. 사랑하는 연인과도 처음 교제를 시작할 때와는 다르게 해를 거듭할 수록 서로에게 익숙해져서 점점 서로를 당연하게 여기게 되고, 둘만의 중요한 그 무언가가 빠진듯한 사이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저자는 그런 포인트에서 20대의 한때 불꽃 같은 사랑과 사랑이 지속되어 약간은 냉랭하고 습관적이게 되어버린 사랑을 비교해서 교차해가며 사랑이란게 정말 무엇일지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소설은 대학시절 후지시로의 첫 여자친구였던 하루의 편지로 시작된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라는 도시로 여행을 떠난 하루가 옛날 연인인 후지시로에게 보낸 편지다. 대학시절 사진동아리에서 선후배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동아리 동기들과 함께 떠난 바닷가의 모노레일에서 먼바다에서 터지는 폭죽을 보며 서로의 마음을 고백했다.



그녀와 사랑에 빠진 순간을 후지시로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토록 마음이 흔들린 순간은 앞으로 아무리 오래 살아도 두 번 다시 없을 것 같았다.     

<p. 55>


살면서 가장 떨리는 순간을 함께 했던 하루와 헤어지던 날 후지시로는 떠나가는 하루를 보면서도 잡지 못했다. 스스로 자신은 감정이란건 잘 모르겠다고 느낀다. 후지시로의 부모님은 오랜 기간 부부로 살아왔지만 각방을 쓰며 서로 신경쓰지 않는 별개의 생활을 하다 최근에 이혼을 결정했다. 후지시로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타인에게 마음을 줄 줄 모르는 아버지를 스스로가 닮아간다고 느낀다. 



요컨대 아버지는 애초부터 애정이 결핍된 인간이라고 후지시로는 확신하고 있었다. 천성적으로 타인을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 일시적으로나마 타인을 사랑하려고 애썼던 데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깨닫게 되자 두려웠다. 어느새 자기 자신도 남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없었다. 또렷한 목적의식도 없이 아버지와 같은 의학부에 들어갔다. 동조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자기 감정을 전하지는 않았다. 언젠가 나 역시 타인을 사랑할 수 없게 될까. 머지않아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조차 품을 수 없게 되는 날이 올까. 

<p.60>



대학 졸업 후 정신과 의사가 된 후지시로는 같은 대학의 수의과생인 야요이와 3년의 연애 후 결혼을 앞두고 있다. 함께 예식장을 보러 다니고, 집에서 동거하며 함께 영화를 보고, 밥을 먹지만 잠은 각방에 들어가서 잔다. 2년째 섹스리스인 커플인 것이다. 후지시로는 야요이를 사랑하지만 그 감정이 어떤건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20대의 두근거리던 연애 감정은 너무 먼 얘기다. 소설에는 야요이의 여동생인 준의 커플도 등장하는데 결혼한지 3년이 지났는데 4년동안 남편과 한번도 섹스를 안했다는 준의 말을 듣고 후지시로는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자신의 커플도 돌아보게 된다. 



겉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이는 커플이지만 둘 사이에 놓인 알수 없는 냉랭함을 느끼고 있는 야요이와 후지시로는 '하루'가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보내는 편지를 계기로 다른 국면을 맞게 된다. 후지시로가 대학때 느꼈던 그 뜨거움, 설레임 그런 연애감정이 지금 결혼을 앞둔 자신들 사이에는 없는 것이다. 이런 그들은 다시 자신들의 연애감정, 그 사랑의 뜨거움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 




달과 태양이 겹쳐지는 한순간의 기적, 사랑하는 마음이 겹쳐진, 일식 같은 순간이 되살아났다. 

나는 사랑했을 때 비로소 사랑받았다. 

살아있는 한, 사랑은 떠나간다. 피할수 없이 그 순간은 찾아온다. 그렇지만 그 사랑의 순간이 지금 살아있는 생에 윤곽을 부여해준다. 서로를 알 수 없는 두 사람이 함께 있다. 그 손을 잡고 끌어안으려 한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아직 두 사람 사이에 남아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것, 그 파편을 하나하나 주워모은다. 

p.271


사는동안 사랑은 내 곁에 찾아오기도 하도 떠나가기도 한다. 사랑이 곁에 머무는 그 순간, 달과 태양이 겹쳐지는 한 순간의 기적, 사랑하는 그 순간이 지금 살아있는 나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 소설에는 뜨겁고 절절한 사랑얘기는 없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사랑이 빛났던 그 기적같은 순간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점점 복잡해지고 매말라가는 사회에서도, 두근거림 없는 연애가 지속되는 지금에도, 언제나 빛나는 '그 순간'은 있다. 



우리의 사랑이 가장 빛났던 두근대던 그 기적의 순간을 기억하며, 지금의 사랑도 조금 더 힘을 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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