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가정부 조앤
로라 에이미 슐리츠 지음, 정회성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세상에서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게 가장 재미있다. 그것도 내가 아는 사람이 나나 내 주변사람에 대해 쓴 일기를 훔쳐보는 것은 가히 치명적으로 중독성이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1911년, 14살의 소녀 조앤이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날짜순으로 솔직담백하게 일기로 쓴 것이 그대로 하나의 두꺼운 책이 되었다. 일기는 기본적으로 남에게 보여주지 않고 나만 본다는 전제하에 쓰기 때문에 세상에서 자기 자신에게 가장 솔직한 글이다. 그녀의 일기를 읽다보면 소녀 조앤의 순진한 모습과 하루에도 몇번씩 기분이 왔다갔다 하는 사춘기 소녀 특유의 발랄함 때문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속한 가정의 불가해한 여성차별과 그녀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하며 이리뛰고 저리 뛰는 모습들은 안타깝고 짠한 마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뉴베리상 수상 작가인 로라 에이미 슐리츠의 이 소설은 우리가 어린시절부터 만화로 보기도 하고, 책으로도 읽어왔던 <빨강머리 앤> 이나 <작은 아씨들> 을 떠올리게 하는 클래식한 분위기의 소설이다. 


조앤은 아빠와 세 오빠와 함께 스티플 농장에 살고 있다. 엄마는 몇년 전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집안에 혼자 여자로 남게 된 조앤은 아빠로 인해 학교도 강제로 그만두고 아침부터 밤까지 빨래,청소,식사준비,농사 등 집안의 모든 일을 맡아서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한다. 조앤은 책읽기를 좋아하는 똑똑한 소녀이지만 조앤의 아빠는 딸이 공부와 결혼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만 모든 것을 헌신할 것은 강요한다. 심지어 조앤이 다쳐서 얼굴이 찢어지고 피가 철철 흘러 의사에게 치료를 받자, 왜 돈 아깝게 의사를 불렀냐고 다그치는 아주 매정한 아빠다.  아빠를 비롯해 조앤의 오빠들도 조앤이 자기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듯 하다. 조앤은 아빠에게 들킬 것을 염려해 챈들러 선생님께 선물받은 일기장도 숨겨놓고 몰래 쓰고, 그녀의 가장 큰 낙은 챈들러 선생님께 선물받은 책들을 읽는 것이다. <제인에어>,<아이반호>,<돔비와 아들> 이 책들은 조앤의 가장 큰 보물이다. 그런 그녀의 책을 아빠가 불태워 없애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책을 읽으며 더이상 바깥 세상을 꿈꾸지 못하게 하려는 아빠의 속셈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조앤은 농장을 탈출해 자신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조앤에게 준 인형에 숨겨진 비상금 29달러를 가지고 볼티모어로 떠나간다. 엄마는 조앤이 많이 공부하고 배워서 선생님이 되기를 바랐다. 조앤도 엄마의 바램처럼 도시로 가서 공부도 하고, 미술관도 가고, 예쁜 옷을 입으며 교양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길 꿈꾼다. 그렇게 길을 떠나간 조앤이 천신만고 끝에 길에서 우연히 만난 솔로몬 로젠바흐의 도움으로 부유한 유대인 집안인 로젠바흐가의 가정부로 취직하게 된다. 가정부로 일하기 위해 나이도 18살로 속이고, 이름은 재닛 러브레이스로 바꾼 다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가정부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농장에서는 뼈 빠지게 하루종일 일하고도 한푼도 못받던 조앤이 이제는 주급 6달러를 받기 시작했다. 조앤의 엄마는 평생 아빠와 함께 농장 일을 하면서 딸을 위해 끝내 30달러를 마련하지 못하고 29달러에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조앤은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고, 자신이 원하던 물건들을 스스로 구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인인 로젠바흐도 책을 좋아하는 조앤을 예쁘게 여겨 원하는 책을 서재에서 마음껏 빌려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조앤은 가정부 생활을 하면서도 자존심을 지켜야 할 때와 굽혀야 할때를 구분해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줄 아는 아이였다.  이렇게 조앤은 1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동안 그녀의 일기 속에서 쑥쑥 발전해나간다. 그녀의 일기를 지켜보는 것이 즐거운 이유는 언제 주인에게 밑보여 쫓겨날 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가정부'라는 타이틀 안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자신의 자존심과 종교라는 신념을 지키며, 많은 일들이 발생하는 과정 중에도 결국에는 모두의 사랑과 인정을 받아내는 데 있다는 것이다. 


조앤은 잔다르크의 영어식 이름이라고 한다. 실제로 조앤은 나이에 비해 키가 크고, 성격도 거친 편이다. 로젠바흐가의 둘째 아들 데이비드는 조앤에게 잔다르크 같은 전사의 기운을 느끼고 초상화를 그리기 위한 모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이 소설이  클래식한 틀 안에서도 모던함을 느끼게 해주는 이유는 조앤의 여성으로서의 성장이 꽤 현대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으로써 모든 권리를 완전히 박탈당했던 조앤이라는 인물이 스스로 거기서 빠져나와서 삶을 개척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기어이 쟁취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사랑을 하고, 돈을 벌고, 커가는 모습은 그녀의 일기를 몰래 훔쳐보는 우리에게도 뿌듯함을 준다. 


"(..)그런데 언니가 내 이야기를 적어놓았더라고. 그걸 보니 흥미가 생겨 계속 읽었던 거지. 내 험담도 있었지만 좋은 말도 썼더라. 그래서 다 읽어버렸어. 정말 재밌던데! 내가 이렇게 재밌게 읽은 건 언니 일기가 처음이야.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니까 너무 흥미진진했어. 그리고 나는..."

미미가 잠깐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덧붙였다. 

"언니가 나중에 작가가 될 거라고 생각해."

<어린가정부 조앤 중에서>

극 중 미미가 조앤에게 하는 말이다. 언니가 작가가 될거라고 생각한다는 말. 과정이야 어찌됐든 이 책은 실제로 책이 되어 나왔고 우리는 조앤의 일기를 미미와 함께 훔쳐보고 있는 중이다. 나와 상관되지 않는 내용인데도 무지 흥미있어 하면서 말이다. 이 책은 5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임에도 불구하고 14살 소녀의 기준에서 쓰여진 일기라 읽기 쉽고, 중간중간 조앤의 유치함도 즐길 수 있다. 


똑똑함과 강인함, 그러면서도 순진하고 유치하고 사랑스러운 면을 함께 가진 어린가정부 조앤은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간 머리 앤이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것처럼 무척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작가는 일부러 주인공을 예쁘고 오밀조밀한 여자아이가 아닌 키도 크고, 소처럼 생기고 힘이 센 아이로 표현한 것 같다. 예뻐서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니까. 


조앤의 뒷 얘기가 궁금하다.  

오늘은 어떤 날을 살고, 어떤 일기를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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