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시간
사쿠 다쓰키 지음, 이수미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어떤 좀도둑이 있다. 생계를 위해 텔레이전 수리일을 하고 있다. 어느 날 고객의 집에 텔레비전을 수리하러 갔는데 주인은 칼을 맞고 쓰러져 죽어있다. 너무 놀라 혼비백산하는 와중에 그 옆에 놓여있는 비싼 보석들이 눈에 띈다. 순간적으로 욕심이 앞서 보석들을 챙겨들고 집에서 그대로 나갔다. 이후 경찰은 블랙박스 등의 여러 증거들을 조사해 모든 물질적인 증거가 딱 들어맞는 그 좀도둑을 범인으로 내세우며 살인죄를 덮어씌운다. 나는 도둑질은 해도 절대로 사람 죽이는 짓 같은건 못한다고 발악을 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얼마 전 종영한 tvN 드라마 '비밀의 숲'의 전반부에 나온 억울한 누명을 쓴 좀도둑의 이야기이다. 그 좀도둑은 도둑질을 한 죄가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순수하게 부인하지도 못한 채 억울하게 감옥에 갖히게 되고, 너무나 억울한 나머지 자살로써 자신의 억울함을 드러낸다. 


이런 속터지는 사례가 과연 드라마 속에서만 존재할까? 빠르게 사건을 해결해서 성과를 내야 하는 경찰들, 특히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이들 조직 내에서 억울한 이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갖히는 사례는 실제로도 비일비재 하다고 한다. 감옥에서 몇 십년을 살고 난 뒤, 사실은 무죄라며 자신의 누명이 벗겨진들 빼앗긴 인생은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조작된 시간은 경찰조직을 지키려는 정의감(!)에 불타는 경찰들 모두가 공범이 되어 사건을 조작하고 엉뚱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워 사건이 빠르게 해결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과정들을 하나하나 르포 취재하듯 세세하고 꼼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고구마를 먹은 것 처럼 답답하다가 다행스럽다가 온탕 냉탕을 오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아버지가 남겨준 재산을 이용해  훌륭하게 사업에 성공한 후, 어릴적부터 살던 고향 동네에 번쩍번쩍하는 '금어전'이라는 집을 짓고 사는 와타나베 쓰네조가 있다. 그는 골프장에서 눈에 띈 미녀 미키코를 집에 무작정 들어앉히면서 첫번째 부인을 쫓아내고, 미키코와 그의 귀여운 딸 미카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미카가 집에 늦도록 들어오지 않은 밤, 엄마인 미키코는 어느 중년의 남자에게 미카를 납치하고 있으니 딸을 살리고 싶으면 돈 1억엔을 달라는 전화를 받는다. 혼비 백산이 된 미키코와 쓰네조는 경찰을 불러 신고한 뒤, 범인에게 1억엔을 기꺼이 줄 생각이 있으니 어떡하든지간에 딸 미카를 구해달라고 말한다. 범인과 약속한 시간, 1억엔을 들고 약속 장소에 나간 엄마 미키코는 지능적인 범인의 수법에 끌려다니다가 결국 범인을 잡지 못하리라고 생각한 경찰의 판단으로 범인에게 돈을 투하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날 미카는 뒷산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쓰네조는 범인에게 1억엔을 주었다면 미카가 살아돌아왔을거라 생각하며 미카가 죽은 시점이 전화를 하기 전인지, 약속시간 이 후 인지 알기 위해 치열하게 매달리게 된다.  미카의 납치사건의 리더를 맡았던 모리타는 쓰네조와 깊은 친분을 맺고 있었으며 영향력을 익히 알고 있는데다, 경찰의 잘못으로 미카가 죽은 것이 밝혀지면 쓰네조에게 받았던 수많은 뇌물과 비리들을 다 폭로하겠다고 쓰네조에게 협박 받는다. 그래서 경찰 조직은 자기들만의 은밀한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이런 과정에서 애꿎게도 시체가 발견되기 전 아부라를 따러 산속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지갑에서 돈을 훔치고선 그옆에 누워있는 시체를 발견하고선 너무 놀라 도망갔던 고바야시 쇼지는 엉뚱하게도 지갑에서 돈을 훔치다가 묻힌 지문 때문에 범인으로 지목되어 살인죄를 뒤집어 쓰게 된다.



소설 조작된 시간은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 정보의 격차와 경찰의 윽박지름 앞에서 어떻게 범죄자로 둔갑될 수 있는지 조서를 쓰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검시, 재판 과정까지 하나하나 다큐멘터리처럼 친절하게 보여준다. 독자들이 생경하게 느낄 수 있는 법률 용어는 마치 법률 관련 책인 것 처럼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 놓아 순간 쉬운 법률서적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런 친절함 덕분에 이 소설은 어려운 법정공방에 대해 긴 시간을 할애해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지루할 틈없이, 읽기 시작하는 순간 멈출 수 없는 몰입감을 준다. 


딸을 잃은 쓰네조와 미키코 , 그리고 누명을 쓴 고바야시 모두가 피해자이며, 경찰은 잃을 것이 없는 비정한 세계. 너무나 비정하지만 거기엔 현실이 담겨있어서 더 비통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이 소설을 쓴 사쿠 다쓰키(필명)는 실제 법조계에 몸을 담고 일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자신이 본 현실의 사건들에서 모티브를 얻어 약간의 상상력을 더해 이 작품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조직이라는 힘 앞에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와 생각은 접어두어야 하는 경찰, 이런 내용은 이미 수많은 드라마와 소설속에서도 많이 다루어진 내용이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고바야시가 누명을 썼다는 것, 경찰이 무엇을 숨기려 하는지 처음부터 알면서 읽기 때문에 더욱더 비통하고 답답하고 안타깝다. 잘못된 누명으로 인해 그의 삶과 그의 가족들이 어떻게 갈갈이 찢겨지는지도 생생하게 그려놓았다. 마음이 아프지만 이런 일은 얼마든지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만약 이런 비슷한 일이라도 당했다면 나와 내 가족의 심경이 어떨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게 다가왔다. 


최근에 읽은 소설 중 가장 빠르게 페이지가 넘어가 도저히 중간에 손을 놓을 수 없는 소설이었다. 소설은 처음부터 훅 빠져들어 읽을 수 있도록 사건이 빠르게 전개됨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늘어짐 없이 끝까지 그 긴장감을 가지고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중간중간 절망과 희망을 주며 독자들을 들었다 놨다하는 작가의 필력에 경의를 표한다. 



찌는듯이 더운 여름 날, 읽으면서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고구마 답답이 같은 마음이 들 수는 있지만, 읽고 나서 결코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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