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건너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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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의 순간순간이 모여 미래가 된다. 소설 '다리를 건너다'는 현재의 작은 선택이 미래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다는 영화 '나비효과'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복제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다루는 모습을 다룬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 나 '아일랜드'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이 책은 끝까지 다 읽고 나야 비로소 앞 부분의 퍼즐이 맞춰지는 소설이다. 소설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정보만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무려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라 어떤 미스테리가 펼쳐질까 부푼 기대를 안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왠걸 책의 반 이상이 지나도록 미스터리 같은 부분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봄, 여름, 가을 로 이름 붙여진 각 섹션에 각각의 인물들이 나와 각자의 고민을 갖고 일상적인 생활을 해나가는 모습 밖에 나오지 않아서 약간의 의아함을 가지고 계속 소설을 읽어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로 나뉘어져 각 섹션의 주인공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 이지만 사실 그 일상의 소소함도 묘사가 제법 치밀하고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어서 잘 읽혀지긴 했다. 봄 편에 나오는 아키라와 여름편의 아쓰코, 가을 편의 겐이치로는 모두 서로 약한 연결고리를 가진 인물들이다. 아키라는 아내 아유미와 함께 햇살이 깃드는 정원이 있는 집에 사는데, 조카인 고타로도 함께 살고 있다. 아키라와 아유미는 금슬 좋은 부부이지만 아키라는 몰래 마사와 바람을 피기도 한다. 아내 아유미는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데 어느 날 재능이 없어 보이는 젊은 미술가가 자기 그림을 봐달라고 집까지 찾아와서 떼를 쓰는 바람에 공포심 마저 느끼며 거절한다. 그러던 어느날 집앞에 누군가 쌀과 술을 놓고 사라진다.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이 난데없는 선물을 주니 부부는 불안감이 쌓인다. 


여름편의 아쓰코는 도의원인 남편이 있는데, 최근 의회 회의 중 여의원에게 "애를 못낳나?"하는 성희롱 발언을 한 목소리가 카메라에 찍혀 여론이 뜨거워지자 아쓰코는 자신의 남편이 그 말을 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남편이 그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남편을 지켜줄거라 생각하며 그 일이 밝혀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 와중에 남편이 렌즈사업을 하는 그의 친구에게 고성능 렌즈의 정부 입찰가를 알려주는 댓가로 500만엔을 몰래 받는 장면을 보게 된 아쓰코는 불안에 시달리지만 여전히 그래도 남편을 지켜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던 어느날 아쓰코는 마트에 가서 계산을 하려는데 자신이 장바구니에 넣지 않은 물품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누군가 남편이 한 짓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자신을 놀리는 것이라 생각하고 불안감에 휩싸인다.  


가을편의 겐이치로는 다큐멘터리 제작자인데 홍콩에 선배를 도우러 촬영을 하러 갔다가 촬영된 영상 중간에 자신이 전혀 찍지 않은 황야 배경의 영상이 짧게 끼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여자친구인 가오루코와는 다음달에 결혼하기로 약속한 사이다. 북을 치는 동아리에서 만난 여자친구는 당시 유부남인 유키를 짝사랑 하고 있었는데 그 동아리에서 탈퇴하면서 자신이 가오루코와 사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가오루코가 유키와 몰래 만나고 있는 장면을 발견하게 되는데... 



봄, 여름, 가을 편의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도데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중심내용을 알 수가 없다. 각각의 인물들이 약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딱히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만큼의 사이는 아닌 것 같고, 진행되는 일상도 뭔가의 복선이 되는 것인가 하는 것을 당장에는 느낄 수 없을만큼 평온하기만 하다. 그나마 미스테라 소설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요소는 아키라의 집에 알수 없는 사람이 배달해 놓은 쌀과 술, 아쓰코의 장바구니에 담겨있던 물품, 겐이치로의 촬영영상에 담겨있던 황야의 모습 정도이다. 


책을 다 읽고 옮긴이의 말을 읽으면서 비로소 작가가 왜  소설을 이렇게 이끌어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무조건 현재만을 살아갈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을 담은 것은 아닐까? 내가 지금 하는 선택과 행동이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맞다고 스스로 우기며 넘어가는 일들, 봤지만 못본척 넘어가는 일들, 마치 누구도 알 수 없는 현재의 작은 부분들이 마치 복선처럼 우리 주변에 무수히 깔려있는 것이다. 그런 부분들이 미래에 어떤식으로 나타날지를 보여주고 싶었던지, 작가는 마지막 겨울 편에서 갑자기 7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2085년의 세상을 보여준다. 미스테리와 SF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미래엔 정말 이런 모습일까 상상하며 읽게 된다. 그러면서도 작중 2015년을 살았던 인물들의 미래모습과 그 후세들의 모습들도 엿볼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인물들이 현재에서 했던 일상속의 작은 선택들이 미래에는 어떤 효과를 불러오게 되는지 확실히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책의 띠지에 있는 가쿠타 미쓰요 라는 소설가의 평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오늘 내가 보고 만 것, 하고 만 것, 이야기한 것, 못 본 척 한 것, 하려다 말았던 것, 말하려다 삼킨 것, 그런 사소한 하나하나가 쌓여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 결과가 이 세계라고 재차 망연함을 느낀다." 

- 가쿠타 미쓰요(소설가)



아, 이말이 소설 '다리를 건너다' 의 본질을 꿰뚫어주는 딱 맞는 말이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는 상상처럼 엄청난 유토피아도, 그렇다고 끔찍한 디스토피아도 아닌 그냥 평범한 일상의 연속일지 모른다. 어쨋든 사람은 현재를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종족이니까. 그렇지만 지금의 2017년의 세계도 우리가 지난 날 선택해 왔던 크고 작은 선택과 순간의 결과물이듯, 그 미래도 우리가 지금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른 결과물일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 같은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걸까? '현재'를 살며, 언제나 '지금'을 살 수 밖에 없는 우리가 후회할 일을 남기지 않고, 작은 선택에 따른 결과가 얼마나 클 수 있는지 깨달으라는 의미인건가? 안타까운 미래에서 현재에 보내는 미스테리한 메세지로써 말이다. 


작가 요시다 슈이치는 이 책으로 처음 접했는데 다 읽고 나니 묘한 여운이 있는 것 같다. 2015년의 일상도, 70년 뒤인 2085년의 일상도 너무 정교하게 잘 표현해서 마치 둘다 현재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작가는 그 안에서 우리가 하는 선택들이 마치 '다리를 건너는 것' 같다고 느낀게 아닐까 싶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중에 "그 기회는 물건너 갔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한번 건너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 현재는 한번 건너면 다시는 뒤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신중하게, 더 열렬히 현재를 살아내야 한다. 


앞으로 내 앞에 다가올 또다른 현재를 위해 나중에 후회할 짓은 하지 말기를... 혹시 미래에서 현재의 안타까운 나를 위해 보낸 미스테리한 신호는 없는지 한번 둘러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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