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열대
해원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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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슬픈 열대가 해원 이라는 작가의 첫 데뷔작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책이며, 더군다나 소재도 낯선 콜롬비아의 마약 카르텔을 둘러싼 이야기라니, 읽기전엔 사실 소재와 500페이지가 넘는 두께에 먼저 겁이 났었더랬다. 그런데 읽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흡입력 있는 스토리와 실감나는 장면 묘사에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재밌는 소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엄청 스펙타클한 영화 한 편을 오랜 시간에 걸쳐 본 듯한 느낌이었다. 소설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너무나 잘 그려져서 내가 글을 본건지, 영상을 본건지 잠시 혼동스럽기도 했다. 이 소설은 다소 붉은 피가 낭자하고 사람이 셀 수 없이 잔인하게 죽어나가는 물리적인 잔인성과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거나 구하지 못해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잔혹한 고통이 공존한다. 


소설의 주인공 권순이는 북한의 최정예 군인 출신이다. 누구보다 뛰어나고 정확한 실력을 인정받아 북한 공화국의 명령에 따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살인등의 임무수행을 해왔다. 그러다 군인으로서 종속감을 느끼며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었던 권순이가 군으로 복귀해 처음 맡은 임무는 무역선으로 위장한 배의 화물을 안전하게 지키는 임무였다. 그러다 그 배가 사고로 침몰하게 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순이는 구조되어 콜롬비아의 최대 마약 조직인 메데인 카르텔 농장인 일명 '동물농장'에서 용병으로 일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메데인 카르텔의 조직을 몰살시키려는 음모를 가진것으로 보이는 '늑대'의 존재를 알게 된 조직원들은 어떻게든 '늑대'의 존재를 찾아서 카르텔의 몰락을 막으려 한다.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어 다양한 인물들의 얽히고 섥힌 관계들을 보여주고 그 실타래를 풀어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와중에 '늑대'의 습격을 받아 코카인 농장을 운영하던 부부가 목숨을 잃고, 그의 어린 딸 리타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채 발견되어 순이와 함께 지내게 된다. 순이는 배 침몰 사고 때 눈앞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소녀들을 구하지 못하고 혼자 살아났다는 죄책감으로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고, 리타는 부모가 자신의 눈앞에서 목이 잘려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고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과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이 하나의 동기가 되어 또다른 폭력을 놓고, 그것은 또다른 분노와 죄책감을 가져오게 된다. 



자신이 구하지 못한 소녀들에 대한 죄책감의 반작용인지 순이는 리타를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지키려 하고, 리타는 리타대로 부모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분노로 불타 자꾸만 위험을 무릅쓰게 된다. 이런 과정들은 영화 '아저씨'를 연상시켰다. 절대 죽지 않고 소녀를 구하러 가는 강한 '아저씨'와 그를 기다리는 어린 소녀. 여기서 순이는 여자니까 '아줌마'...인가... ㅋㅋㅋ 암튼 순이의 끝내주는 걸크러쉬는 소설 전체에 걸쳐 너무나 멋지게 그려지고 있다. 글로 보는 액션신이 이렇게 실감나게 느껴지다니 놀랍다. 


슬픈 열대는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해서 만들어진 소설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무척 구체적이고 실감난다. 이야기 중 나오는 배가 침몰했던 사건도 실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아픈 기억 세월호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순이가 배에서 겪었던 일들, 배가 침몰할 때의 구체적인 정황들이 너무 실감나게 그려져 나도 마치 물속에서 같이 숨이 꼬르륵 막히는 것 같았다. 3년전 그때도 그 일을 뉴스로 접하고 밤에 잘때 물 속에 빠져 숨을 못쉬고 허우적 거리는 꿈을 꾸다 깨곤 했었다. 사건을 뉴스로 접한 우리 국민들 모두가 죄책감으로 힘들어했듯 비슷한 일을 직접 겪은 순이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픈 열대 속에는 진한 폭력성과 함께 인간 속에 내재된 죄책감과 고통, 그러면서도 옆에 있는 이와의 믿음과 연대감 등의 감정들이 다양한 인물들에 걸쳐 고르게 잘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 사건에 기반을 둔 비교적 큰 스케일의 이야기 속에 각 인물의 감정들까지 하나하나 놓치지 않은 것을 보면 작가의 내공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만간 진짜 영화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고통은 죽어야 끝난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마치 죽음이 마음의 평화를 위한 수단인듯 목숨을 내놓고 미친듯이 싸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그들의 고통이 느껴지는 찐득한 피냄새가 진동하는 한편의 영화같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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