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독서 - 마음이 바닥에 떨어질 때, 곁에 다가온 문장들
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늘 태평해 보이는 사람도

마음의 밑바닥을 두드려보면 

어디에선가 슬픈 소리가 난다.

- 나쓰메 소세키 



마음이 정말 힘들 때 내가 책을 찾았던 적이 있었나..? 난 책을 정말 좋아하지만 오히려 너무 힘들 땐 책을 볼 생각조차 못했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책은 한가할 때 여유나 부리며 즐기기 위해 읽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거겠지. 실제로 최근 내 마음에 여유라는게 생긴 것인지 미친듯이 집어삼키듯 독서를 하고 있다. 

작가 가시라기 히로키는 책 앞머리에 이 책 절망 독서는 지금 당장 절망한 사람을 위해서 쓰기도 했지만, 지금 당장 절망스럽지 않은 보통 사람들도 읽어두라고 권유하고 있다. 독감을 예방하기위해 백신을 맞는 것처럼, 비상시에 필요한 책은 비상시가 아닐 때 미리 읽어둘 필요가 있다는 말과 함께. 


저자는 무슨 말을 하려고 마치 예방주사 처럼 이 책을 미리 맞아두라고 하는 걸까. 절망했을 때 읽으면 뿅 하고 낫는 책이라도 소개해 주는걸까? 

예상외로 저자의 논리는 간단하다. 지금은 평탄한 삶을 살더라도 언제 무슨 일이 생겨서 나의 인생의 행로가 바뀌게 될지 모른다. 그 바뀌는 행로는 내가 전혀 예상하던 바가 아니라서 나에게 절망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라는 주사를 미리 맞아두는 것은 내 인생의 앞이 깜깜할 때 전조등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문학을 읽는 이유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인 듯 하다. 인생에서 실제 겪을 수 있을 수 있는 경험보다 문학 안에서 훨씬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테니. 무엇보다 문학에서는 삶의 긍정적인 부분과 더불어 부정적인 부분까지 그대로 여과없이 보여준다. 실제 세상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 뒤에 가려져 우리가 평소에 잘 보지 못하는 인생의 어두운 면들을 적나라하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즐거운 얘기만 있는 소설은 보려고 하지 않으니까.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무슨일이든 생길 수 있다. 나쁜 일이 나만 피해가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생의 양면에 대해 다 알고 간접 경험이라도 해두는 것이 좋다. 


책을 읽었을 때 내 마음을 정확히 표현해 주는 글귀를 보거나, 음악을 듣다가 내 마음과 같은 가사를 들으면 무척이나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저 사람도 나와 같은 마음을 가졌었구나. 그런 생각때문에 이 세상에 혼자 남은 것 만 같던 기분이 좀 사그라들기도 한다.  사람은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는, 혹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위로받을 수 있는 존재다. 그렇기에 책은 절망한 사람의 옆에서 조용히 묵묵하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    


절망 독서 는 저자가 한참 창창하던 20살 무렵 갑자기 희귀병에 걸려 13년동안이나 병원에 장기입원하면서 불안한 미래에 대해, 불안한 자신의 생명에 대해 고뇌하고 절망하던 시기를 이겨내도록 도와준 책에 대해, 그리고 그 원리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다. 우리 사회는 항상 긍정의 힘을 외치는 사회다. 절망하고 고뇌중인 사람은 사람들 앞에 많이 나서지 않는다. 그래서 예전의 절망을 이겨내고 지금은 희망찬 사람들의 긍정 메시지는 많이 들을 수 있지만, 지금 당장 고뇌에 빠진 사람들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헤쳐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은 거의 찾을 수 없다. 물론 지금 힘든 사람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 "힘내." 라는 단어가 있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 힘내라고 한다고 힘이 나지는 않는다. 그 말은 전혀 힘들지 않은 사람이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건내는 하나의 인사치례 일 뿐이다.


저자는 자신이 아프고 힘들었던 시절, 자기와 같은 절망을 가진 작가들의 책을 보면서 위로를 얻고 힘을 얻었다고 말한다. 특히 도스토옙스키와 카프카의 책을 읽으면서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단다. 오랜 병으로 힘들어하던 저자와 같은 병실의 사람들이 모두 도스토옙스키 책을 읽고 힘을 얻어 병원내에서 한때 도스토엡스키의 책이 돌고도는 유행이었다고 하니 절망스러웠던 그들에게 정말 힘이 되긴 되었나보다. 그래서 저자는 책의 뒷부분에서 자신이 보면서 힘을 얻었던 책과 드라마, 영화 여러편을 소개해준다. 유명한 고전 외에 대부분은 내가 잘 모르는 작품이었다. (우리나라에 별로 출판되지 않은)일본작가의 책이나 드라마가 많아서 접근하기 어려울 것 같아 좀 아쉬웠다 ㅠ  일본 문화에 밝거나 익숙한 분들은 찾아서 봐도 좋을 것 같다. 


절망에 빠진 사람은 그 안에서 묵묵히 절망을 이겨내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 시간이 필요이상으로 길 필요는 없지만 짧아서도 안된다. 스스로 괜찮아졌다는 마음으로 툭툭 털고 걸어나올 수 있기 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시기를 좀 지나면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정신은 회복되지는 않은 상태, 즉 감정의 고원상태가 어느정도 지속된다. 사람마다 그 기간이 다르기에 다른 사람이 서둘러 기운을 내라고 닥달하거나, 부담을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혼자 힘으로 꿋꿋하게 그 시간을 견뎌내야 정말로 이겨낼 수 있다. 그런 시간을 함께 해줄 책을 미리 알아두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전 사회가 긍정의 힘만을 부르짖는 지금 시대에 오히려 미리 절망의 시기를 대비해 어두운 책, 절망적인 책들도 읽어두라는 저자의 메시지는 새롭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여러 문학을 통해 이런 예방 주사를 맞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기쁨 보다는 슬픔에 더 공감하기 쉬운 것 처럼 우리네 사람은 언제나 작은 절망을 달고 사는 존재들이니까. 언제 나에게 절망이 다시 찾아올 지 모르니 나의 책장에 꽂힌 예방주사들을 열심히 읽어둬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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