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명의 눈 속에는 천 개의 세상이 있다 - 세상을 보는 각도가 조금 다른 그들
가오밍 지음, 이현아 옮김 / 한빛비즈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과연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과연 지금 정상일까?이 책을 읽으면 이런 의문들이 머릿속을 마구 떠다닌다. 

"천명의 눈속에는 천개의 세상이 있다." 이 책은 저자 가오밍의  4년 동안의 500여명 정신질환자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 엮어낸 책이다. 이 책은 600 페이지에 가까운 두툼한 책 두께에도 불구하고 앉아서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온갓 기상천외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저자 가오밍의 대화가 너무나 흥미로워서 두껍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이틀만에 다 읽어냈을 정도로 무척이나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각 환자와의 인터뷰마다 4~5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으로 소개되므로 하나의 주제가 끝나기가 무섭게 다음 주제가 궁금해져 계속 읽어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사람들은 특이한 것에 흥미를 보이기 마련이라 나 또한 특이한 정신세계를 가진 환자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책을 계속 읽어나갈 수록 단순히 환자의생각이 특이하다는 정도를 벗어나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앞뒤가 착착 맞고, 설득적이라서 내가 알던 세계관마저 흔들리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이들은 정신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가지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평범한 인간들은 알아내기 힘든 우주의 원리라던가 생명의 신비를 알아내서 알려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 : 사람들은 몰라요. 개미가 사실은 세포라는 것을요. 

 : 세포요? 무슨 세포요? 

그녀: 어때요, 몰랐지요? 내가 알려주죠. 사실 개미는 어떤 생명의 세포에요. 나는 그것을 '느슨한 생명'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여왕 개미는 대뇌고, 병정개미는 신체의 방어조직이에요. 일개미는 모두 세포죠. 그러니까 입이기도 하고, 손이기도 해요. 음식을 찾거나 전달하고 대뇌유지를 위해 사용되죠. 대뇌인 여왕개미는 생식 시스템을 같이 돌봐요. 일개미가 한데 모여 운반하는 것은 혈액이 영양분을 수송하는 것과 같아요. 일개미는 여러 기능을 해요. 신생 세포, 즉 새끼개미를 돌보기도 하죠. 개미들끼리는 화학물질로 신호를 전달해요. 맞지요? 인간도 마찬가지에요.

당신은 당신의 세포를 지휘할 필요가 없어요. 세포가 다 알아서 해결하니까! 이해하겠어요? 사실 개미는 또 다른 생명 형태지 단순한 곤충이 아니에요. 개미 키워봤어요?키워본 적 없죠? 나는 개미를 키워봤어요. 며칠 안되서 죽더군요. 날마다 먹이를 주었는데도 말이에요. 그 이유는 대뇌의 지휘를 잃었기 때문이에요. 개미를 키우려면 많이 키워야 살아요. 인체 조직을 배양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인체 조직보다 잘살긴 해요. 우리는 그저 기어다니는 개미만 보지, 전체는 보지 못하고 있어요! 한마리 개미는 그저 세포에요. 개미 전체가 비로소 완전한 하나의 생명이에요, 느슨한 생명!


<천 명의 눈 속에는 천 개의 세상이 있다.  76p  > 



교사였던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하루종일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정원에서 돌이나 화초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어 가족들이 이상하게 여긴다. 어렵게 그녀를 인터뷰하게 된 저자에게 그녀는 그동안 관찰해서 얻은 결과와 개미와 돌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개미가 한마리의 곤충이 아니라 하나의 세포고, 느슨한 생명체라니!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개념이지만 이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너무 그럴듯 한 것이다. 앞으로는 개미가 그저 하나의 곤충으로 보일 것 같지가 않다. 그녀가 내 생각까지 바꿔놓았다. 환자들은 우주과학이나 물리법칙에 대해서도 왠만한 전문가보다 박식한 지식을 뽐내며 자신이 생각하는 논리를 그럴듯 하게 펼치기도 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논리는 전문가에게 사실여부를 확인해봐도 어긋나는 부분이 없고, 너무나 그럴 듯 하지만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얘기이거나, 혹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수준의 상식으로는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취급을 받기도 한다. 



저자에게 주로 환자를 소개해주는 저자의 친구인 정신과 의사들은 이런 인터뷰가 고위험군의 일이라며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한다. 환자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들의 말이 너무나 그럴듯하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세계관에 같이 빨려들어가 이 세계에 대해 위험하고 혼란스러운 정신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실제로 인터뷰하면서 자신도 환자들의 생각에 말려들어 설득 당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한다고 쓰고 있다. 매일 밤마다 '생각의 죽음'으로써 '나는 오늘 밤 죽는 것이다'라는 암시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그날 한 인터뷰로 인한 복잡한 생각을 다 털어내고 다음 날에는 새로운 마음으로 일어나서 활동하기 위함이다. 환자들 중에는 과거에 정신과 의사였으나 정신질환자를 치료하다가 자신이 정신질환 환자가 되거나 혹은 자살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고 한다. 그만큼 정신질환자들의 이야기가 완전 터무니없는 낭설이 아닌 나름대로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관을 가지고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도 쉽게 이들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저자는 다양한 이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뛰어난 논리와 지식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지식을 배우기도 하며, 혹은 환자가 자신의 세계에 빠져 대화가 어려운 경우, 일부러 그들과 같은 상태인 척 연기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특별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정신질환자 취급받는 사람들에게는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능력에 대해 이야기 하지 말라고,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며 살짝 귀띔을 해주기도 한다. 그만큼 그들의 생각을 들어주고 이해하려 애쓰기 때문에 그들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마음껏 털어놓아 이런 흥미로운 책이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을 읽으면, 저자도, 저자의 친구인 정신과 의사들도, 그리고 나도 잠재적인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극단적인 모습으로 발현되지 않았을 뿐 어떤 큰 계기가 있거나 촉발점이 있다면 나타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환자들이 말하는 무언가는 정말 진실이어서 그것을 믿지 못하고 그들이 이상하다고 여기는 우리가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은 아닐까 하는 혼란스러운 마음마저 든다. 

책속에서는 4차원 생물체, 다중우주, 전생기억,진화론,양자물리학 등 과학책에서나 나올법한 이론들에 대해 제법 탄탄한 논리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환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알던 세상이 갑자기 낯설어지거나 이 우주와 지구에 대해 다시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중국이라는 커다란 대륙에는 인구수도 어마어마하기에 이런 특이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많은건지,  아니면 우리 주변에도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생각을 세계관으로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원래 이렇게 많은건지 궁금했다. 



역시, 세상은 넓고 특별한 사람은 많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다른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대해 이렇게도 생각할수도 있구나 하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는 것 같아서 무척이나 흥미로운 책이었다. 

정말 제목 그대로 천 명의 눈 속에는 천 개의 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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