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남극 탐험기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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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남극탐험을 떠난 계기, 남극에서 겪었던 일들, 전부 말이 안 됩니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말도 안되는 헛소리 입니다. 

( 우리의 남극탐험기, p.280 )



그들의 남극탐험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소설 속 이 사람은 그들의 탐험담을 듣고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며 길길이 날뛰고 있는걸까? 


소설 속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가벼운 말장난과 헛소리로 이루어진 듯해 보인다. 

내 생각에 저자는 아마도 그걸 노린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헛소리로만 이루어진 소설을 써보자. 

그렇지만 그 헛소리가 책 전체에서 여러번 반복되어 나오면서 끝에 가서는 단순한 헛소리는 아닌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주인공인 '나'는 중학교때까지 야구부 유격수로 열심히 운동만 해왔지만, 시간이 갈수록 스스로 능력의 한계치도 느꼈거니와, 재능의 부족으로 인해 야구로 부터 내쳐졌다. 자신의 의지로 그만둔 것이 아니라 내쳐졌다는 것에 느낌표 땡땡을 붙이고 싶다. 그렇게 운동만 하면서 살다가 고등학생이 되서야 처음 시작한 공부는 너무나 힘들었고, 그는 그 이름부터 삼류에 딱 어울리는 무광(無光)대학교라는 삼류대학에 들어간다. 거기서 수업하기 싫으니 나가 놀라며 교탁 앞에서 장을 청하는 괴짜 교수도 만나고,  '나'에 비해서는  무척 똑똑하고 집도 부자인 잘난 여자 친구도 만나게 되지만 어쩐지 "나"는 이자리가 영 내 자리가 아닌 것 같다. 



영국의 귀족가문 출신인 어니스트 헨리 섀클턴은 선천적인 병으로 인해 태어난지 2주만에 장님이 되었다. 남달리 똑똑하고 학문에 욕심도 많았던 섀클턴은 전용 책 읽어주는 사람을 고용해서 밥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무조건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에 할애할 정도로 열심히 살았지만, 남과 다르게 태어났다는 죄 때문에 학교에서도 항상 차별을 참아내야 했고, 어디에서도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자기 자리가 아니라고 느낀다.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이 둘을 이어주는 누군가가 있다. 바로 어니스트 헨리 섀클턴과 이름이 완전히 똑같은 19세기의 남극 탐험가인데, 남극점을 찾으려고 분투했지만 결국 실패한 인물이다. 이 탐험가는 두 사람의 머릿속에 마음대로 나타나 자주 헛소리를 지껄인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와 섀클턴'은 한국의 한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섀클턴 박사는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한다. 

"그래, 마침내 우리가 남극으로 떠날 떄가 온거지." 

매우 급작스러운 전개 같지만, 그렇게 그들은 함께 별다른 훈련도 없이, 간단한 먹을 것들과 이동수단으로 스노모빌을 챙겨 몰래 둘 만의 남극횡단에 나서게 된다. 



30대의 몸만 건강했지, 남극탐험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는 나와, 이미 70이 다되어 가고 거기다 장님이기 까지한 섀클턴 박사 둘만의 남극탐험은 처음부터 말도 안되는 조합이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시종일관 "말이 되는 일만 일어나는 세상이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날수도 있는거라"며 소리치고, 그 헛소리에 같이 만족하며 탐험을 한다. 두사람이 떠난 남극 여행의 장면은 정말 여름철 장마의 후덥찌근함과 찐득함을 한큐에 날려보낼 정도로 차갑고, 판타스틱하고, 오들오들 떨리는 일들 투성이다. 그들은 "실패하지 않을거라면 도전하지도 않았을거라며, 실패하기 위해 도전한다"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모토로 함께 실패를 위한 여정을 보낸다. 



탐험 중 일어난 믿을 수 없는, 그렇지만 믿고 싶은 환상적이고 신기한 일들은 남극이라는 세계가 마치 아직 인간에게서 개척되지 않은 판타지 세계인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거기에 더해 19세기의 섀클턴 경이 남극점 탐험에 어떻게 실패했는지 자세한 과정도 소설 중간중간 교차되어 나타난다. 현재의 두사람의 탐극탐험과 100여년 전의 섀클턴 경의 남극탐험이 겹쳐지며 새로운 재미를 주기도 한다. 

참고로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일시적으로 에어컨을 껐다. 에어컨이 없어도 남극의 차가운 눈바람과 온도가 느껴져 잠시나마 주위 온도가 1~2도는 내려간 것 같았다. 

이보다 즐겁고 놀라운 피서가 있을까? 

나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이들의 즐거운 헛소리와 말도 안되는 여행을 지켜보며 문득 남극의 귀여운 펭귄을 안아들고 백만번 뽀뽀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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