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의 남자 - 박성신

제3의 남자
박성신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5월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마치 영화 한편을 보고 난 것 처럼 소설 속 장면과 스토리 들이 머릿속에 스쳐갔다.

황금가지에서 나온 신간, '제 3의 남자'는 다소 두툼한 두께에도 불구하고 앉은 자리에서 거의 이틀만에 다 읽어버렸다. 

정유정 작가의 추천사를 보고 책에 대한 기대가 좀 더 크기도 했는데, 역시 추천할만 했다. 

이야기의 플롯이나 진행방식이 마치 이미 상영된 영화를 글로 옮겨놓은 것처럼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읽으면서 정유정 작가의 소설처럼 박진감 있고 긴장감 넘치는 부분이 비슷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만큼 지루할 틈없이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되어 솔직히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빚에 시달리다가 아내와는 이혼하고, 돈 한푼 없이 고시원에 살면서 여러번 자살시도를 하며 죽지 못해 살고 있던 최대국. 

그에게 어느 날 뜬금없이 아버지의 지인이라는 김부장이라는 사람이 찾아온다. 

자신의 아버지가 총에 맞았고 위독하다는 말을 전해들었지만 대국은 아버지에 대한 걱정보다는 

혹시나 숨겨져 있을지 모르는 아버지의 숨은 재산이나 생명보험금에 더욱 눈독을 들이고 김부장을 따라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 간다. 

거기서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되는데 아버지가 숨겨둔 수첩을 찾아준다면 3억을 주겠다는 것. 

거기다 선금으로 천만원을 바로 주겠으니 당장 수첩찾는 일에 착수해달라고 한다. 

먹고 죽을 돈도 없던 대국에게 우연히 찾아온 일확천금을 가질 기회.

그는 아버지가 숨겨놓은 수첩을 찾기 위해 아버지가 운영하던 고서점으로 향하고... 

수첩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알게되는 사실들을 통해 내가 몰랐던 아버지란 사람에 대해.. 

그리고 숨겨져있던 자신의 과거에 대해 하나 둘씩 알아가게 되는데.. 

대국이 알고 있던 아버지는 대국의 졸업식에도, 운동회에도, 심지어 결혼식에도 얼굴을 비치지 않을만큼 

아들에게 무관심해보였던, 그리고 친구들에게 내보이기 싫은 절름발이 장애까지 가진 고서점 주인, 루저 그게 다였다.

따라서 대국은 아버지에게 존경도, 사랑의 마음도 전혀 없었다. 

태권도 국가대표를 꿈꾸던 대국의 정강이뼈가 부서지게 만들어 꿈을 산산히 부숴버렸던 사람.. 

아버지는 나에게 왜 그랬을까? 

아버지는 왜 자신의 사진 한장 남겨놓지 않을만큼 철저히 자신의 존재를 숨기면서 그림자처럼 살아가려 했던 것일까? 

이 이야기는 북에서 남파된 간첩으로 남한에 와서 북의 지령을 받고 살아가던 아버지 월출의 삶과 사랑 이야기,

그리고 그의 아들 대국이 수첩을 찾는과정 이야기를 서로 교차해서 보여주면서 

퍼즐을 맞춰가듯 진실에 점점 다가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간첩에 대한 이야기라 하면 얼마전 읽었던 남파 간첩에 대한 소설 김영하의 "빛의 제국"도 생각난다. 

"빛의 제국"은 남파된 간첩이 몇십년동안 아무런 지령없이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북으로 돌아오라는 지령을 받고 

오랜 세월동안 북한 사람도 남한사람도 아니게 되어버린 주인공이 겪는 심경의 변화 이야기라면, 

" 제 3의 남자 " 는 남파된 간첩이 지령수행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와중에 겪게 되는 사랑이야기, 지금이나 그때나 많았던 권력의 비리들, 

대국이 커서 알게 되는 생의 비밀 등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버무려져 있어서 재미요소는 좀 더 많았던 것 같다.

특히 소설 끝 부분으로 갈수록 중간중간 던져져 있던 밑밥들을 다 끌어모아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시켜가는 스킬이 대단했던 것 같다. 

인물 한명한명이 가지고 있던 자신의 처지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동기들을 잘 버무려서 이야기를 만들어놓았다. 

남과 북의 냉전시대, 간첩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이야기가 곳곳에 숨어있어서 스토리 흐름을 따라가면서 숨은 진실을 미리 예상해보고 파악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신인작가가 쓴 소설이라고 하는데, 이야기를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건 완전 사실인듯. 

다만 좀 아쉬웠던 것은 초판본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오자가 좀 눈에 띄어 소설의 완결성에 있어 살짝 거슬렸다..ㅠ 

이 부분은 인쇄를 거듭할수록 잘 확인해서 고쳐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오랜만에 정말 흡입력있고, 재미있는 소설을 읽은 것 같다. 

박성신 작가의 다음 작품도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