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 하이웨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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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작가 아서 클라크는 SF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다루는데 우리 대부분은 그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판타지란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다루지만 우리는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설명하며 SF와 판타지를 구분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둘 다에 해당한다.」 <p. 424 옮긴이의 말 중에서>


펭귄은 분명 실존하는 생물이지만 동물원 외의 장소에서 볼 수 있거나 혹은 만질 수 있는 동물이 아니기에 마을 한가운데에 아장아장 걷는 펭귄 무리가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판타지다. 동글동글 통통한 배와 짧막한 다리와 손으로 아장아장 걷는 펭귄을 한 번만 꼬옥 안아볼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펭귄 하이웨이는 너무나 똑똑해서 건방질 정도지만 결코 얄밉지 않은 순수한 과학소년 11살 '아오야마'와 블랙홀이 무섭긴 하지만 우주가 너무 좋은 소년 '우치다', 당찬 대다 똑똑하기까지 한 체스 소녀 '하마모토' 이 세 초딩들의 본격 과학 연구 일지라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여기엔 아주 다정하지만 신비롭고, 도대체 정체가 뭘까 궁금해지는 치과 누나도 있다. 

어느 날 마을에서 펭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남극에 있어야 할 펭귄이 갑자기 왜 우리 마을에?! 지도를 만들기 위해 마을을 탐험하던 아이들에게 처음 발견된 신비한 초원과 그 위에 큰 물방울 모양으로 공중에 떠있는 일명 '바다', 도대체 이 요상한 것들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왕똑똑이 초딩들은 웬만한 어른보다 훌륭한 과학지식과 관찰력으로 하나씩 하나씩 비밀을 풀어가기 시작하는데... 

「"세계의 끝은 밖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아버지는 생각한단다. 웜홀도 그렇지 않을까? 너랑 아빠 사이에 있는 이 테이블 위에 실은 웜홀이 이미 출현했을지도 몰라. 그건 정말로 한순간의 일이라서 우리한테 안 보이는 것뿐일 수도 있어.」 <p.252>

「"다른 사람이 죽는 것하고 내가 죽는 건 완전히 달라. 그건 정말 절대로 달라. 다른 사람이 죽을 때 나는 아직 살아 있고 죽는 것을 밖에서 보고 있어. 하지만 내가 죽을 때는 그렇지 않아. 내가 죽은 뒤의 세계는 이미 세계가 아니야. 세계는 거기서 끝나. "」<p.321>

말도 안 되는 귀여운 판타지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읽다가도 문득 머리를 띵하고 두드리는 이런 문장들을 읽다 보면, 아 맞다 이거 SF 소설 수상작이지, 하는 생각이 혹 떠오른다. 세계의 끝이라는 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우주에 존재하는, 가까이 있는 모든 것을, 심지어 빛과 시간까지도 빨아들이는 블랙홀은 실은 전혀 다른 세계로, 어쩌면 진짜 세상의 끝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구멍이 아닐까 하는 생각.    

모리미 도미히코의 소설은 늘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읽다 보면 이거 생각나는 대로 막 쓰는 거 아니야 싶을 만큼 제멋대로 같으면서도 다른 소설과는 확연히 다른 그만의 분위기가 있다. 현실과 가상을 교묘하게 배열하는 매직 리얼리즘 기법으로 소설을 쓰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들은 영상화될 때 실사영화보다는 총천연색의 판타스틱 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는가 보다. 이번 <펭귄 하이웨이>도 전작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에 이어 애니메이션으로 출시되었다. 예고편을 잠깐 봤는데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모습을 꽤 잘 표현해낸 것 같아서 본편도 기대된다. 

모리미 도미히코 식의 귀염 뽀짝 한 SF 판타지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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