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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임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순간부터 '인싸'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인싸는 무리 안에서 잘 어울려지내는 사람들을 나타내는 '인사이더'의 줄임말로 반대말로는 '아싸'(아웃사이더)가 있다. 인터넷에 '인싸 되는 법'이라던가, '인싸 용어집'이 돌아다닐 정도로 사람들은 어딘가에 강력히 소속되고 싶어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임재희 소설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에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일명 '아싸'들의 이야기가 비슷한 변주를 반복하며 이어진다. 한국을 떠나 타국에 사는 사람, 타국에 살다가 한국에 귀환한 사람, 한국에 살지만 온전한 인싸가 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자의 말이 맞았다. 동희는 미국에 살아도 한국에 나와있는 지금도, 뭐가 하나는 쑥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뭘까. 그 커다란 빈 구멍은. 한국 국적을 재취득하면 좀 나아지려나. 동희는 자신도 모르게 상념에 빠져들었다. 」
< p.30, 『히어 앤 데어』 중에서>
처음에는 소설집인지 알지 못하고 한참을 읽다가 단편 세 편쯤 읽었을 때 뭔가가 이상해서 다시 책 표지를 봤다. 장편소설로 착각할 만큼 비슷한 상황의 주인공들이 연이어 등장하는 단편소설이 이어진다. 저자는 왜 이렇게 어디에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들, 주변인들에 초점을 맞추고 이토록 많은 소설을 썼을까. 작품 해설을 읽다 보니 저자도 하와이로 이민 간 이력을 가지고 있다. 아마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했던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이야기에 꾹꾹 눌러 담았으리라. 특히나 작가의 말에서 이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내게 영어는 밥벌이와 생활을 책임진 '생존'의 언어였다고. 오랜 시간 외국에 살면서도 나는 줄곧 모국어로 사유하고 있었다고. 생존의 언어와 사유의 언어가 같은 사람들은 그 미묘한 차이에서 오는 아득함을 어쩌면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이해하지 않아도 좋을 것들이지만 내게는 그 힘으로 뭔가를 쓰게 되었다고.
아이러니하게도 '생존'의 장소들에 관한 얘기들을 내 '사유'의 언어로 쓰게 되었을 때, 그제야 나는 '쓰고' 있다는 위안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내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을 쓸 수 있었다.
< p.270 작가의 말 중에서>
소설 속의 다양한 주인공들을 보며 이들을 하나로 묶으면 무슨 메시지가 남을까 한참 생각했다. 다행히 작품 해설을 읽으며 괜찮은 답을 찾았다. 성 빅토르 휴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고향을 달콤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직 미숙하고, 모든 곳을 고향으로 여기는 사람은 이미 강하며, 전 세계를 타향으로 여기는 사람은 완벽하다."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 -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살다 미국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 한국인으로 미국에서 살다 한국에 돌아오게 된 사람들,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평생 사는 사람들은 고향으로 인해 촉발되는 세 가지 정동을 횡단한다. 그들은 때로 고향을 달콤하게 여기고, 때로 모든 곳을 고향으로 여기며, 때로 전 세계를 타향으로 여긴다. 이들은 미숙하고, 강하고, 완벽한 면모를 지닌 사람들이다. 」
<p.266 ,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우리 모두는 어딘가에 속해있는 동시에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다. 같은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며 한국이라는 나라에 속해있지만 나 외에 누구에게도 속해있지 않다. 고향을 떠나고 터전을 이동하는 것은 크나큰 정체성의 이동을 뜻하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원래 인간은 유목하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조금 더 낯선 곳에서, 조금 더 낯설고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되는 것뿐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는 괜히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미숙하다는 말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완벽하다는 말일 수도 있으니까. 소설 속 미숙하고 강하고 완벽한 존재들을 하나하나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