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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 뻔한 세상
엘란 마스타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어쩌면 우리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있고, 로봇이 귀찮은 모든일을 처리해주며, 아침이면 음식 합성기가 개개인의 입맛에 맞춰 음식을 만들어주고, 의복 합성기가 아침마다 그날의 스케쥴과 날씨에 따라 옷을 제조해주는 시대에 살 수도 있었다. 무공해 청청 에너지가 무제한으로 공급되기에 지금처럼 미세먼지에 시달리지 않고 매일 파란 하늘을 보며 살수도 있었고, 아침마다 헤어 관리기에 머리를 집어넣으면 자동으로 머리를 감겨주고 그때 그때 원하는 스타일링이 자동으로 완성되는 시대에 살수도 있었단 말이다. 사람들은 힘든 업무에 지칠 필요도 없으며, 수많은 기업들의 지상 최대 과제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엔터테인먼트 아이디어다. 어쩌면 지금 우리 시대는 유토피아에 가까운 천국일 수도 있었다. 주인공 톰 베런이 1965년으로 돌아가서 일을 망치지만 않았다면...
진짜 현대 사회가 이런 모습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발전된 기술 덕분에 모든 사람들이 부유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최소 지금처럼 미세먼지 때문에 매일 문을 꼭꼭 닫아놓고 고생하지 않아도 됐을텐데 말이다.
소설은 우리가 살 뻔한 세상에서 지금의 현실로 왔다고 주장하는 톰 베런의 회고록 형식으로 쓰여졌다. 1965년에 발명된 구트라이더 엔진 덕분에 원래의 2016년은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고도의 발전된 사회였다. 구트라이더 엔진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에너지로 전환하는데 성공해 지구에 무제한 청정 에너지를 공급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처럼 화력발전, 핵발전 같은 것이 전혀 필요없기에 하늘은 훨씬 맑았으며, 그러면서도 모든 사람이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고도로 발전된 사회에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력은 또 무엇이 있을까? 바로 타임머신의 발명이다.
톰 베런의 아버지 빅터 베런은 엔터테인먼트의 최고봉 기술, 시간여행이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생각해낸 일명 천재였던 것이다. 타임머신은 시간과 공간의 동시 이동을 다뤄야 해서 생각보다 꽤 까다로운 기술이 필요했다. 하지만 구트라이더 엔진에서 뿜어내는 타우 방사선이 하나의 동아줄이 되어 일시적으로 1965년 구트라이더 엔진이 역사적인 가동을 시작하는 그 시간, 그 장소에 다녀오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천재적인 아버지 밑에서 항상 기대에 못 미치는 멍청한 아들로 살아온 톰 베런은 어느 날 홧김에 아버지 몰래 타임머신을 멋대로 조작해 1965년으로 간다. 시간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사건들에 영향을 미칠 수 없도록 원래 비물질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럼 그 시간 그 공간에 존재하며 주변을 관찰할 수는 있지만 그 공간의 사람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사물을 만질수도 없어 과거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톰 베런은 홧김이라 비물질화 과정을 깜박하고 가는 바람에 현재의 발전된 사회에 가장 결정적인 역사에 영향을 미치고 마는데... 바로 역사적인 구트라이더 엔진의 시험 가동을 망쳐버려 현재 유토피아의 토대가 되는 무제한 청정 에너지의 존재를 묻어버린 것이다.
시간 여행이나 타임머신 소재의 이야기가 그렇듯 그것은 나비효과를 일으켜 원래의 유토피아 같던 2016년은 통째로 날아가고 현실의 평범한 2016년이 되어버리고 만다. 바보 같은 실수로 고도로 발전된 세계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린 톰 베런은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오랜만에 읽은 SF소설인데 너무 재미있어 이틀만에 다 읽어버린 엄청난 페이지 터너 소설이었다. 주인공이 천재 과학자가 아닌 보통 사람과 비슷한 수준의 '과알못'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인칭으로 서술되기에 전반적으로 과학 이야기가 꽤 친근하고 쉽게 쓰여있다. 꽤 그럴듯하고 복잡한 과학적 토대 위에 만들어진 이야기임에도 결코 어렵지 않게 머릿속에 콕콕 박힌다. 챕터 하나하나가 짧게 치고 나가며 끊임없이 호기심을 유발시키기에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다. 현실에 기반을 둔 공상 과학 소설은 그래서 더 재밌다. 어쩌면 진짜 이럴수도 있지 않을까. 평행우주, 또다른 시간선 같은 것이 정말로 존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때문에 흥분된다. 동시에 잘 쓰여진 SF소설은 현실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역할 을 해서 다른 각도에서 현실을 생각해보게 하기도 한다.
곧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라는데 어쩌면 우리가 살 뻔한 세상이라는게 어떤 곳이었을지 눈으로 보는 재미가 쏠쏠할 듯 하다.
절대 멈추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는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이용한 에너지 발전은 꽤 신박한 아이디어인 것 같은데 실제 발전 가능성은 없는건가?
과알못은 혼자 진지하게 궁금해했다고 한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