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기 좋은 방 - 오직 나를 위해, 그림 속에서 잠시 쉼
우지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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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졌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보다 혼자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자유롭게 보내는 시간이 훨씬 행복하다. 그러다 보면 쭈글쭈글하던 자존감도,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갉아먹던 내 조급함도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사람에겐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방, 마음껏 기뻐하고 슬퍼하며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혼자만의 사적인 공간. 그리하여 나는, 지금, 혼자 있다. 

《혼자 있기 좋은 방》은 조용히 숨고 싶은 방 / 완벽한 휴식의 방 / 혼자 울기 좋은 방 / 오래 머물고 싶은 방으로 테마를 나눠 다양한 방의 모습을 나타낸 명화와 함께 조곤조곤 진심 어린 저자의 글이 곁들어진 그림 에세이다.  화가이자 작가라는 이 책의 저자 우지현은 꾸준함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생각으로 매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꾸준함의 힘인 것인가, 그녀의 글은 마음을 두드리고 공감을 일으키며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책 속에 줄긋고 싶은 문장이 많아서 포스트잇 스티커를 붙이며 읽다가 결국엔 너무 많아서 포기하고 그냥 읽었다. 좋은 글과 좋은 그림이 차곡차곡 예쁘게 어우러진 이런 책은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좋은 법이니까.  


「혼자란 모든 것의 기본이다. 일도 사랑도 관계도 삶도 바탕에는 내가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된다는 것.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상대를 배려하는 과정에서 외면된 나의 진짜 마음과 마주할 수 있고, 집단체제 속에서 생략된 나의 실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혼자 영화관에서 영화 보고, 혼자 드라이브하고, 혼자 마트에서 장을 보고, 혼자 식당에서 식사하고, 혼자 서점에서 책을 읽고, 혼자 공원을 산책하고, 혼자 여행을 떠나고, 혼자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일은 얼핏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아는 것, 삶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 < 혼자 있기 좋은 방 p. 105>

그림 속 혼자 있는 여인을 보니 왠지 쓸쓸해 보이긴 하지만 비극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따뜻한 불빛이 가득 비추는 방안의 벽난로 앞에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혼자 책을 읽고 차를 마시며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진 그녀는 분명 아침이 오면 기운을 되찾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혼자 있는 평온한 밤 시간,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분위기의 그림이라서 오랫동안 쳐다봤던 그림이다.  

다니엘 가버, 「과수원 창문」

그중 다니엘 가버의 그림도 기억에 남았다. 그는 가족과의 단란한 시간을 가장 행복으로 여기는 화가였기에 활동하는 지역도 미국 내로만 한정하고, 외딴 시골의 아름다운 자연이 풍성한 곳에서 살며 가족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의 그림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에 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가족들의 일상의 단면을 그대로 포착하여 나타냄으로써 행복은 바로 지금 여기 있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그림만 봐도 그 속에 행복감이 묻어난다. 따뜻한 햇살을 가득 받으며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책을 읽고 있는 딸을 바라보는 아빠의 시선, 너무나 밝고 따듯하지 않은가. 하지만 다니엘 가버의 죽음은 스튜디오에서의 사다리 추락사고로 너무나 급작스럽고 황망하게 찾아왔다고 한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가족들과 함께 순간의 행복을 충분히 누리다 갔기에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복은 바로 지금, 오직 여기에만 있다. 아끼고 미루다 보면 행복은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다. 내일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나에게 주어진 오늘의 행복을 즐기겠다는 자세로 행복을 느껴야 한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지금 최대한 맛있게 먹고,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꼭 시간을 내서 읽고,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바로 찾아서 보고, 그리운 사람이 있으면 당장 달려가서 만나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지금 떠날 수 있어야 한다. 다 하지는 못해도 생각만 하다가 끝나지 않는 삶, 나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하나씩 실천해 보는 힘, 이런 것들이야말로 일상을 풍요롭게 하고 궁극적으로 삶을 견디게 한다. 」 
<p.297> 




명화 그림은 사진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찰나를 붙잡아 맨 현실이 사진이라면, 그림은 철저히 화가의 의도와 상상 속에서 모든 등장인물과 구도와 표정, 색감, 물건의 배치 등이 정해진다. 그래서 화가의 의도를 알기 위해서는 자세히 오랫동안 살펴볼 수밖에 없다. 세세한 물건들과 인물의 눈빛까지 하나하나가 철저히 계산된 화가만의 의사표현인 것이다. 그걸 발견하기 위해 오래오래 그림을 쳐다보는 과정에서 어쩌면 화가의 의도와 감정이 전달되는 것은 아닐까. 사실 그림에 대해선 문외한이라 아는 것이 별로 없지만 책을 통해 그림을 보는 법을 조금은 배운 것 같달까. 문득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감상하고 싶어졌다. 

예술이 꼭 어려운 것은 아니다. 
모든 예술은 인간의 감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 
이 책은 정말 추천, 완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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