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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왜 이제야 읽었을까. 유쾌하고 웃픈 에피소드들이 많았지만 나는 오베라는 남자가 사랑하는 방식에 집중하며 읽었다.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너무 많았다. 그가 자신의 아내 소냐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랑했는지. 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까칠한 고집불통 노인 같지만 속은 더없는 로맨티시스트였던 오베. 그의 사랑은 무뚝뚝했지만 진짜 같았다.
「그는 철도 회사에서 5년 동안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기차를 탔다가 처음으로 그녀를 보았다. 아버지가 죽고 난 이후 처음 웃은 게 바로 그날이었다.
인생이 다시는 전과 같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오베가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오베가 볼 수 있는 색깔의 전부였다. 」
오베는 원칙을 중시하는 노인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그의 사랑하는 아내 소냐가 죽었다. 오베는 소냐의 뒤를 따라가기 위해 죽음을 준비 중이다. 그녀가 없는 삶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기에..
「그녀를 그리며 상상하는 것 중에서 가장 간절한 건, 정말로 다시 하고 싶은 건 그녀의 손을 잡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기 집게손가락을 접어 그의 손바닥 안쪽에 숨기는 버릇이 있었다. 그녀가 그럴 때면 세상 어떤 것도 불가능한 게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워할 수 있는 모든 것들 중에서, 그것이 가장 그리웠다. 」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이 없다고 상상했을 때, 정말 가장 그리운 것은 그 사람의 따뜻한 손을 잡는 것일 것 같다. 가장 쉬운 일이면서도, 다시는 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 간절함을 왠지 알 것 만 같다.
「그녀는 그냥 웃고는 자기는 세상 무엇보다 책을 사랑한다고 말하더니 자기 무릎에 있는 책들이 무슨 내용인지 하나하나 열심히 말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베는 자기가 남은 일생 동안 그녀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그녀의 입으로 듣길 원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 열렬히 떠드는 것에 대해 듣는 것은 즐겁다. 그의 조금은 흥분되고 미소 띤 얼굴을 보는 것이 좋으니까.
「그녀는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소냐에게 그는 첫 저녁 식사 테이블에 올라 있던 살짝 부스스한 분홍색 꽃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입던 갈색 정장이 살짝 꽉 끼는 널찍하고 슬픈 어깨였다. 그는 정의와 페어플레이와, 근면한 노동과, 옳은 것이 옳은 것이 되어야 하는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 남자였다. 훈장이나 학위나 칭찬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래야 마땅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종류의 남자들은 이제 더 이상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소냐는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이 남자를 꼭 잡았다. 아마 그는 그녀에게 시도 써주지 않을 테고 사랑의 세레나데도 부르지 않을 것이며 비싼 선물을 들고 집에 찾아오지도 않을 테다. 하지만 다른 어떤 소년도 그녀가 말하는 동안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좋다는 이유로 매일 몇 시간 동안 다른 방향으로 가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녀가 자기 넓적다리만큼이나 두꺼운 그의 팔을 잡고 그 부루퉁한 소년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필 때까지 간질이면, 그건 마치 보석을 둘러싸고 있던 회반죽이 갈라지는 것 같은 일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면 마치 소냐의 내면에서 무언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그 무언가는 온전히 소냐의 것이었다. 」
내가 짝꿍씨를 간지럽힐 때 그의 못 참겠다는 웃음이 좋다. 그 웃음은 그의 가족들도 모르는 나만 아는 모습이다. 꺄르르 꺄르르, 그건 온전히 나의 것이다 :)
오베는 얼른 소냐의 곁으로 가고 싶어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때마다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그의 바보 같은 이웃들 때문에, 털이 다 빠져버린 못생긴 고양이 때문에.
「묘석과 고양이 모두 그의 옆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오베가 잠시 자기 신발을 바라보았다. 신음소리를 냈다. 눈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묘석에서 눈을 더 털어냈다. 조심스레 그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보고 싶어." 그가 속삭였다.
오베의 눈가가 살짝 반짝였다. 그는 뭔가 뭉클한 게 팔을 누르는 걸 느꼈다. 잠시 뒤 그는 고양이가 자기 머리를 그의 손바닥에 부드럽게 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고양이와 오베의 귀여운 케미가 너무 즐거웠다. 강아지처럼 어디든 오베와 함께 다니는 고양이라니, 환상적이잖아.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소냐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 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찍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 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때 어느 바닥 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장 문을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에요."」
누군가를, 그리고 무언가를 진정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완벽하기 때문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그의 부족한 부분을 나만 알고 있어서, 내가 그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기에 그 사랑은 더 소중하고 아름답다.
「죽음이란 이상한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양 인생을 살아가지만, 죽음은 종종 삶을 유지하는 가장 커다란 동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죽음을 무척이나 의식함으로써 더 열심히, 더 완고하게, 더 분노하며 산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죽음의 반대항을 의식하기 위해서라도 죽음의 존재를 끊임없이 필요로 했다. 또 다른 이들은 죽음에 너무나 사로잡힌 나머지 죽음이 자기의 도착을 알리기 훨씬 전부터 대기실로 들어가기도 한다.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지만, 대부분은 죽음이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데려갈지 모른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해 갖는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 언제나 자신을 비껴가리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홀로 남겨놓으리라는 사실이다. 」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내가 언젠가 죽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죽을 것이기 때문이리라. 그들을 보내고 홀로 남을 내 상태가 너무 무섭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살아있는 동안 더 열심히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사실 오베라는 남자는 엄청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의 소설인데, 기저에 깔려있는 이야기는 아련하고 마음 아프다.
단순히 성격 까칠한 할아버지에 대한 얘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사랑과 죽음, 사람과 인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 이런 이야기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