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의 공부 - 책에 살고 책에 죽다
이인호 지음 / 유유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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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을 좋아한다. 어디서든 책만 펼치면 딴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 누군가를 직접 만나지 않고도 다양한 이야기와 지식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아무리 디지털이 발달해도 책 산업이 망하지 않는 비법이 아닐까. 현란한 영상과 화려한 그림이 없어도 사람들은 글자들 속에서 더 큰 세계를 만들어내고 상상한다. 그래서 난 개인적으로 영화로 본 영상보다는 책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상상한 장면을 더 오래 기억하는 편이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완성된 화면은 사람을 멍하게 하는데 반해 책은 적극적으로 나만의 세계를 완성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을 보면 그 머릿속에 어떤 세계가 형성되어 있을지 항상 궁금하고, 감탄스럽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책을 읽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지도.  

<책벌레의 공부>는 중국의 실존했던 인물들, 일명 책벌레들이 실제 행했던 공부법과 책 읽는 법을 담고 있다. 단순히 이렇게, 저렇게 읽어야 한다고 하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게 아니라 실제 있었던 사례 중심으로 나와있어 흥미롭기도, 신기하기도 하다. 다만 책이 귀했던 옛날 시대를 배경으로 서술된 이야기라 다소 현실감이 떨어지긴 한다. 한자 위주로 적힌 <논어>나 <주역>같은 책들을 여러 번 읽고 외우며 학문 위주로 공부했던 이들에 대한 얘기라 지금의 일반적인 독서 환경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분명 책을 좋아하는 이들 사이의 공감대가 될만한 내용도 분명히 있기에 이들의 치열하고 피땀어린 공부법을 읽어보는 것도 꽤나 즐거운 일이리라. 

책의 초반 부분부터 머리를 꽝 때리는 부분을 만났다. 요즘 나의 독서 패턴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문장이다. 


「책은 빌리지 않으면 읽지 않게 된다. (.. 중략) 비단 책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 물건이 다 그렇다. 남의 물건을 힘들게 빌려와야 언제 달라고 할지 몰라 조마조마한 마음에 애착이 가는 것이다. 오늘은 나한테 있지만 내일은 돌려줘서 다시 볼 수 없어야 소중히 여기게 된다. 내 것이면 언제든지 볼 수 있으니 오히려 모셔놓고 정작 읽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게 되지 않던가. 」 <p.23>

요즘 내가 집에 사둔 책을 잔뜩 쌓아두고도 도서관에서 빌려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책들만 주야장천 열심히 읽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기에, 그런 책들은 열심히 북마크 해두고 좋은 문장은 옮겨두기까지 한다. 하지만 내 손에 들어온 내 책은 한마디로 잡아놓은 물고기이기에 독서가 한정 없이 미뤄지는 경우가 많다. 요즘 리디북스가 무료로 열심히 재밌는 책을 빌려주는 이유가 다 여기 있는 것이다. 싸게 파는 것보다 차라리 무료로 빌려주는 것이 앞으로의 판매에 있어 플러스가 있겠지. 빌려줘야 사람들이 읽으니까. 그래야 읽은 사람들이 재밌다고 소문을 내고 그 입소문으로 책이 더 잘 팔리니까. 나 또한 무료로 빌린 책들은 기를 쓰고 읽으려고 노력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모든 책을 빌려서 읽어야 하나. 갑자기 집안 곳곳에 쌓인 책들을 보니 죄책감과 함께 한숨이 밀려온다ㅠ 

「옛사람은 책을 읽을 때 숙달되게 읽었지 많이 읽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박학다식을 멀리한 게 아니다. 매일 조금씩 쌓여서 결국 많아지는데, 그렇게 많아지면 잡다해지지 않고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날이 갈수록 더 불어남을 사람들이 감지하지 못할 따름이다. 한마디로 말하여 '꾸준히'가 요령이다. 하다 말다 하는 것은 오히려 아니 함만도 못하다. 」 <p. 112>


책을 읽다 보면 점점 마음이 조급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사람들이 다 읽은 책을 나만 안 읽은 것 같고, 거기다 새로운 책들은 매일 쏟아지고, 읽고 싶은 책 리스트는 한정 없이 늘어난다. 그 속도를 쫓아가다 보면 내가 책을 읽는 건지, 책이 나를 읽는 건지 모르겠는 순간이 온다. 엄청나게 읽은 듯한데도 허망한 기분이 느껴지고, 독서로 무엇을 얻었는가에 대해 확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슬슬 독서도 별거 없구나 하면서 손을 놓게 될 수 있다. 이런 독서법이 어쩌면 가장 위험한 독서법일지 모른다. 조금씩 꾸준히 매일 읽는다는 것, 많이 읽지 않더라도 하나라도 제대로 알아가는 것, 그것이 길게 놓고 보면 더 많은 것을 얻어 가는 독서 방법일 수 있다. 

매달 독서 달력을 정리하면서 남보다 적은 책을 읽은 달은 괜히 분하고 부끄러웠다. 많이 읽은 거랑 많이 배운 거랑은 정비례 관계가 아닐지 모르는데 말이다. 꾸준히 내 속도로 꼭꼭 씹어서 삼키는 독서가 중요하다. 매일 꾸준히 지치지 않고 즐겁게 하는 독서가 결국엔 이긴다. 

매일 읽으면서 배움의 기쁨에 웃음이 배시시 나는 독서를 하고 싶다. 
나의 세계를 넓혀주고, 생각지 못했던 사고를 가능하게 해주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나고 싶다. 
쫓기듯 급하게가 아니라, 매일 밥을 먹듯 편하고 일상적으로. 
그것이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진짜 이유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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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4 2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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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4 20: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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