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유정아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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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니 미친 듯이 앞만 보고 달렸던 나의 20대가 생각났다. 그땐 뭐가 그리 욕심이 났는지 남들이 우러러볼 수 있는 성공의 위치에 가겠다며 매일 코피를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공부했다. 그래서 성공했냐고? 아니, 그냥 수많은 실패의 경험을 안고 사는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 성공한 경험보다는 실패한 경험이 더 많고,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이 더 많은 시시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난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한다. 차라리 어릴 때 많이 실패해봐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됐고, 다른 사람들의 실패의 아픔에 심히 공감할 수 있으며,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꼭 성공하지 않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에는 저자의 '실패로 끝났기에 이야기는커녕 추억으로도 남기지 못했던 내 삶의 가장 찌질하고 구질구질한 순간들'이 담겨있다. 성공해야만, 특별한 재능이나 콘텐츠가 있어야만 책을 내는 게 아니라는 작은 충격과 함께 책 곳곳에서 보이는 공감 100%의 현실감 있는 글들이 마음을 울린다. '그래, 우린 다 똑같은 사람이야' 같은 동질감 같은 것. 
어쩌면 우리에겐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어요." 하는 다그침의 글보다는 "시시하면 어때요, 저는 이렇게 살고 있어요." 하는 공감의 글이 더 필요했는지 모른다. 바로 내 친구의 얘기 같은, 어쩌면 내 얘기 같은 글들이 가만가만 우리를 위로한다. 

「 그다음부터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어차피 해피엔딩이야.'라는 말을 주문처럼 속으로 외운다. 어쨌든 나는 결국 행복해질 것이고, 지금의 고통은 만화 속의 한 에피소드 정도일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면서. 놀랍게도 이 생각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꽤 도움이 된다. 
인생이 끝날 즈음의 내가 행복할지 아닐지는 모른다. 하지만 미래의 행복을 믿는 게 현재의 고통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된다면 굳이 그것을 회의할 이유는 없다. 반대로 그렇게 견뎌 낸 일상들이 행복한 결말을 만들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그래서 나는, 내 삶이 해피엔딩일 것을 믿는다. 」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p. 25>

나도 한때 많이 써먹었던 방법이다. 어릴 때 난 주변 어른들에게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넌 오복(五福)을 타고났데. 세상 모든 복을 다 타고났으니 넌 무조건 잘 살 거야. "
그렇게 복을 많이 타고났다는데, 내 삶은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때마다 어차피 잘 되기 위해 이 정도 실패 겪는 건 필요하지, 삶에도 클라이맥스는 필요하니까 하는 생각을 하며 버텼더랬다. 삶의 끝이 어디일지, 어른들의 그 말은 사실일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내 삶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이 하나라도 있다는 건 힘든 삶 속에서 꽤 큰 자산인 것 같다. 내가 지닌 복 덕분인지, 믿음 덕분인지 우선 착하고 좋은 남자를 만났고, 그는 나의 행복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주는 사람이다. 이것만으로도 해피엔딩에 부쩍 다가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정말 힘들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즈음 목표 세우기를 그만뒀다. 그만뒀다기 보다 자포자기에 가까운 심정으로 놓아 버린 것에 가까웠는데, 결과는 예상 의외였다. 이제껏 돌아볼 틈 없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 시간, 물건이며 음식과 분위기 같은. 매일매일을 분 단위로 쪼개지 않아도, 그런 것들을 즐기는 것만으로 충분히 삶을 채울 수 있었다. 
지금은 딱 하나의 목표만 남겨 두었다.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사실 그 좋은 사람의 기준도 주관적인 것이므로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라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나태해 보일 수 있겠지만 그것까지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내 인생에서만큼은,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
<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p. 180>

한때 뭐라도 안 하고 있으면 불안하고,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을 매일 느끼며 살았다. 내 몸이 망가지는 지도 모르고 일에만 매달리고, 누굴 위한 것인지 모를 노력을 매일 했다. 그러다 한순간 방전 상태를 경험하고 나서 나도 저자처럼 목표 세우기를 그만뒀다. 안달복달하며 사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싶어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기 시작했고, 쓸데없는 인간관계는 정리했다. 그런데 의외로 그 이후 삶이 훨씬 행복해진 것을 느낀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내 맘대로 산다는 것, 좋아하는 것들만 즐기면서 자유롭게 산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사회적 성공보다 훨씬 중요한 거였다. 

시시하고 시시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나와 상관없는 남의 눈으로 나를 보는 기준이다. 
세상에 시시한 사람은 없다. 
남들에게 시시하게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시시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을 뿐.

남들 보기에 좀 시시하면 어때서, 나를 진정으로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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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6 22: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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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9 15: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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