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란 그렇게 함께 떨어져내리는 것이었다.」 

우리가 평소에 자주 쓰는 '이해'라는 단어가 있다. 
"그래, 니 말 이해해." 
우리는 이 말을 '무슨 말인지 안다'는 의미로 자주 쓰곤 한다. 하지만 정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우리는 정확히 알고 있는걸까. 소설에는 두 주인공 경애와 상수의 마음이 빼곡하게 담겨있다. 소설 첫 시작, 그들은 삼류 코미디 주인공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모자라고 엉뚱해 보이거나 다소 웃픈 모습이었다. 하지만 소설을 읽어가면서 차차 그동안 그들의 삶을 괴롭혀왔던 모욕, 비참, 부끄러움, 슬픔, 상실감 같은 것들을 서서히 느낄 수 있다. 어떤 삶을 이해하려면 그만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소설 속에는 작가가 곳곳에 숨겨놓은, 마음을 표현한 멋진 문장들이 있다. 그래 딱 이거다, 싶은 표현들을 만나면 포스트잇으로 페이지를 표시하며 읽었다. 

「경애를 아예 견딜 수 없는 절망으로 몰아넣은 건 화재의 전말이었다. 발화지점은 건물 지하였고 불이 번지기까지 분명 시간이 있었는데도 그 많은 아이들이 빠져나오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놀란 아이들이 출입문으로 나가려고 할 때 술값을 받지 못할까 걱정한 호프집 사장이 문을 잠갔기 때문이다. 문을 잠갔기 때문이다,라고 신문에서 읽는 순간, 경애는 아주 차가운 무언가가 와서 자신을 꽉 끌어안은 것 같았다. 몸체가 아주 크고 체온이 아주 낮은 그것이 마치 등에 업히듯 자신에게 와서 붙은 것만 같았다. 그것이 팔을 벌려 경애의 머리와 눈과 입술과 마침내심장까지 완전히 장악했다. 이를테면 정말 누군가 잘못 만든 어떤 피조물 같은 것이. 」< 경애의 마음 p.69>

경애는 고등학생 시절, 지하호프집 화재사고로 소중한 친구 E를 잃었다. 경애도 그 자리에 있다가 잠시 전화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사이 화재가 났고 그 자리에 있었던 57명의 학생들이 단지 술값을 받기 위해 문을 잠가버린 주인 때문에 죽었다. 경애는 어쩌면 엄청나게 운이 좋은 단 한명이었던 것이다. 단 몇 푼의 술값이 아이들의 목숨과 맞바꿔야 할 정도로 중요한지, 거기다 그 많은 아이들의 죽음이 고등학생인데 술을 먹으러 간 날라리라는 이유로 애도 대신 '그럴만 했네' 라는 매도를 받았다.  자신의 소중한 친구가 죽은 이유가 고작 술값 때문이었다니, 그 사실을 알고 나서 경애가 느꼈을 충격과 소름이 저 문장에서 확 느껴져 함께 소름이 끼쳤다. 

소설은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의 슬픔의 접점이 좁혀가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떻게든 팀장으로써 팀을 잘 이끌어가보고 싶어 단 한명의 팀원 경애와 의도적으로 친해지려 노력하는 무능력한 팀장 상수와 겉으로 봐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무뚝뚝한 경애 사이에 조금씩 이해를 위한 따뜻한 금이 가기 시작한다. 얼음이 점점 녹으며 쪼개지듯이. 
차가웠던 두 사람의 관계가 점점 따뜻해져가는 과정, 완전한 타인에서 조금은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다.  

「경애 엄마는 그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즐겨 했다. 그러면 경애는 그 순간, "오두막이 무너진거야, 우리는 그 와중에도 그게 웃겨서 다친 줄도모르고 웃고" 라고 하는 순간을 기다렸다. '다친줄도 모르고 웃는다'는 그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경애가 커가면서 엄마에게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되었다. 하지만 막상 경애가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을 때는 다친줄도 모르고 웃을 수는 없었다. 」< 경애의 마음 p.218>

다친줄도 모르고 웃는다는건 아마도 누군가에게 완벽히 공감받고 이해받을 수 있을 때 가능한 것 아닐까. 
소설 속 경애와 상수는 그런 순간이 올까. 
그렇게 웃을 수 있기를, 잠깐이라도 따뜻할 수 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