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3
진 웹스터 지음, 김지혁 그림, 김양미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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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스탠드를 켜놓고 이 책을 읽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드는 생각. 

"아, 행복하다! 나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길고 긴 편지를 쓰고 싶어라!"

키다리 아저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제루샤 애벗이 키다리 아저씨에게 쓰는 편지만으로 진행되는 소설이다. 편지 안에 그녀의 기쁨과 슬픔, 분노, 행복, 변덕이 다 들어있다. 편지글만으로 사랑스러운 그녀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다. 어찌 이런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 며칠 전에 읽었던 <투 더 레터>라는 책에서 '편지에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라는 말을 봤었는데, 정말 그 말이 딱 맞다. 


고아원에서 자라난 제루샤 애벗은 어느 날 리펫 원장님에게서 돈 많은 어떤 평의원님이 그녀를 후원하여 대학교에 보내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녀의 국어 실력을 높이 평가해 작가로 키우고 싶다는 말이다. 대신 조건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자신이 배우고 있는 것들과 생활에 대해 그분께 편지를 보내야 한다는 것, 단, 절대 답장은 기대해서는 안된다. 자신을 후원하는 사람이 정확히 누군지도 모른 채 대학교에 간 제루샤 애벗은 그가 키가 크다는 정보 하나 만으로 키다리 아저씨라 부르며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고아원 원장이 전화번호부에서 랜덤하게 골라 제멋대로 지어준 제루샤 애벗이라는 본명 대신, 자신을 사랑스러운 '주디 애벗'이라 칭하며.


키다리 아저씨의 원제목인 Daddy long leg는 사실 우리말로 '장님 거미'라는 뜻이다. 다리가 긴 거미인데, 아니 이렇게 스윗한 느낌의 고전 소설의 제목이 사실은 벌레 이름이라니, 우리나라에 장님 거미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왔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ㅋ  키다리 아저씨의 후원 덕분에 대학교에 가서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는 주디 애벗은 처음엔 고아원 안에서만 살아왔던 과거 탓에 일반적인 가정 환경에서 살아온 친구들에게 소외감을 느끼곤 하지만 곧 특유의 솔직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친구도 잘 사귀고 공부도 잘하는 사랑스러운 숙녀로 성장해 나간다. 

 


이 책이 쓰였을 당시에는 여성에게 투표권도 없을 때였나 보다. 그만큼 여성은 남성보다 하등하다는 인식이 많을 시대였을 텐데 주디 애벗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생각이 뚜렷하고, 멋진 독립심을 지닌 여자다. 필요한 돈보다 더 많은 후원은 딱 잘라 거절할 줄 아는 뚝심도 지녔다. 사실 한참 사고 싶은 거 많고, 스스로를 치장하고 싶은 여대생이 용돈을 거절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거기다 그녀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솔직한 모습 때문이다. 자신의 편지에 답장은커녕 아무런 반응도 없는 키다리 아저씨에게 삐지고 화내는 모습부터 그 나이 젊은 숙녀의 설레는 일상 모습까지 편지에 너무 예쁘게 담겨있다. 특히나 책 속 일러스트가 너무 예뻐서 한참이나 그림을 쳐다보게 된다. 어쩜 이렇게 사랑스럽게 표현했을까. 



「맥 빠지는 일이 이렇게 줄줄이 일어나는 하루를 경험해 본 적 있으세요? 큰 시련이 닥쳤을 때만 인격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위기에 대처하거나, 치명적인 비극에 맞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날그날의 사소한 불운들을 웃음으로 넘기는 일은 '정신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답니다. 

제가 키워 나가야 할 게 바로 이런 종류의 인격이에요. 저는 인생을 요령 있고 공정하게 헤쳐 나가야 하는 놀이로 생각할 거예요. 놀이에서 지더라도 그냥 어깨를 으쓱하며 웃어넘길 거예요. 이겨도 마찬가지고요.」 

< 키다리 아저씨 p.71>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에 한없이 감사할 줄 알며, 매일매일 닥치는 작은 불운도 웃음으로 넘기려 노력하겠다는 그녀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랑스러운 주디 애벗에게 매일 편지를 받았던 키다리 아저씨는 그녀의 편지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었으리라.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로맨스 이야기에 야밤에 혼자 콩닥콩닥하며, 입꼬리가 나도 모르게 귀에 걸렸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이기에 이미 아는 얘기라며 넘겼던 사람들도 꼭 다시 읽어보기를.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키다리 아저씨가 아니다. 

멋진 여자 주디 애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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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5 22: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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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6 11: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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