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더 레터 - 편지에 관한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
사이먼 가필드 지음, 김영선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멀리 떨어진 사람끼리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건, 카톡이나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보다 훨씬 더 은밀하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직접 쓴 삐뚤삐뚤한 글씨를 공유하며 직접 산 편지지에 고이 접어넣은 편지를 주고받다 보면 산 넘고 물 건너 그 손길이 그대로 옮겨져 온 것만 같아 신기하다. 글씨엔 그 사람의 모습이 담겨있다. 글씨체와 그림에 담긴 그 사람의 마음을 물리적으로 받는다는 건 그래서 특별한 경험이다. 학창 시절엔 여러 친구들이랑 매일 교환 일기를 썼던 기억이 있다. 매일 학교에서 얼굴을 보면서도 또 집에 가서 교환 일기에 편지를 쓴다. 할 말이 없으면 그림을 그리고,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을 붙여서 교환하기도 한다. 그래도 마냥 좋았던 이유는 누군가가 나를 생각하며 편지를 쓰는 시간이 있다는 게 좋아서였을 거다. 편지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오랜 시간을 들여서 쓰는 글이다. 혼자 보는 일기와도 다르고, 공개적으로 책을 내기 위해 쓰는 글과도 다르다. 오로지 받는 사람을 생각하며 정성 들여 쓰는 글, 그것이 편지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투 더 레터는 편지에 관한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대 로마에서 시작된 편지부터 시작해서 유명한 작가들이 주고받은 편지, 혹은 그 편지들이 문학작품이 된 사례들까지 꽤 방대하다. 거기다 무슨 내용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는지 내용도 자세히 공개되어 있어 흥미롭다. 

「부인, 한 사람의 편지에서 그의 영혼은 발가벗겨집니다. 그의 편지는 그가 가진 마음의 유일한 거울이지요. 그의 내면에 무엇이 지나가든 그 자연스러운 과정에서 숨김없이 드러납니다. 아무것도 뒤집히지 않고, 아무것도 왜곡되지 않아요. 그 요소들에서 체계가 드러나고, 그 동기들에서 행위가 보입니다. 」 
<투 더 레터 p. 278>

연예인과 같은 유명인이 꼭 특정인이 아닌 대중에게 진심을 전하고 싶을 때에도 딱딱한 글보다는 직접 쓴 손글씨로 편지 형식의 글을 전하면 훨씬 더 진심 어리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손글씨로 쓴 글에는 항상 어느 정도 진심이 담기기 마련이니까. 

책에는 편지의 그런 점을 이용한 희대의 위조지폐 우편 사기에 관한 내용도 들어있었는데 그 내용이 무척 흥미로웠다.  자신을 최고 재질의 위조지폐를 취급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의 편지다. 

「귀하의 이름을 귀하의 마을에 사는 믿을 만한 사람한테서 받았습니다. 귀하께서는 어떤 수단, 방법, 형태로든 돈을 버는 데 부정적이지 않은 분이라고, 게다가 호락호락 속아넘어가지 않는 분이라고 하더군요. 솔직히 말씀드려, 저는 최고 재질의 위조 화폐를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물건은 품질이 뛰어나지요. 저와 거래하는 사람 가운데 일찍이 아주 사소한 문제라도 겪은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모두가 빠르고 안전하게 거액을 벌었습니다. 저는 귀하가 사는 자취주의 유명한 사람들과 거래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이름을 언급할 수는 없는데, 일부 인사는 사회적 지위가 높답니다. 단언컨대 그들은 이 물건을 이용해 수천 달러를 벌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어떻게  돈을 손에 넣었는지 사람들은 알 수가 없습니다. .....(중략) 
가격은 다음과 같습니다. 
1,500달러는 현금 75달러
4,000달러는 현금 125달러.... (생략)
<p.336>

뒷부분에는 현금을 보낼 주소와 함께 혹시나 의심스럽다면 직접 와서 돈을 교환해도 된다며 주소를 첨부한다. 하지만 현장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결국 편지에 현금을 넣어 보내고, 결국은 답장으로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이런 재밌는 희대의 사기도 있었다니 편지로 참 재미난 일이 많았다 싶다. 예전에 이메일로 떠돌아다니던 다단계 사기 같은 것이 떠오른다. 이메일보다도 직접 손으로 쓴 편지를 우편으로 받으면 그게 더 믿음직스러워서 더 속기 쉽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사람들끼리 순수하게 편지를 주고받는 일은 많이 사라진 것 같다. 하지만 그 자리가 잘 발달된 택배 시스템 덕분에 택배 상자로 대체돼가고 있는 건 아닐까ㅋ 멀리 사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건 너무 쉬워진 세상이니 물리적으로 선물을 주고받는다. 세상에서 제일 반가운 사람이 택배아저씨라고 하지 않는가. 편지가 사라지고 디지털이 아무리 발달했다지만 그래도 마음을 나누는 방법은 물리적으로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한 번쯤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보자. 
삐뚤삐뚤 손글씨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예쁜 카톡 이모티콘으로 대신하는 것보다 훨씬 감동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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