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카를 찾아서
미치 앨봄 지음, 박산호 옮김 / 살림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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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이 세상에 경이로워하지. 부모들은 그런 아이들의 경이로움에 경이로워하고, 그렇게 우리 모두 같이 성장하는 거야."


긴 부리를 가진 황새가 행복한 표정으로 하늘에서 내려온다. 감격에 찬 부모 앞에 내려놓은 앙증맞은 바구니. 거기에는 천사같은 아이가 담겨 있다. 아이티에서 태어난 치카는 아름다운 꿈과는 달리 미치에게 왔다. 아이티는 국민 60%가 하루 2달러로 살아가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다. 지진, 화산 폭발과 같은 자연재해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치안이나 복지는 이곳 사람들과 거리가 멀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저자 미치 앨봄의 신작 <치카를 찾아서>는 바로 아이티에서 온 천사같은 소녀 치카에 대한 이야기다. 일곱 살 짧은 생을 마감한 치카가 세상에 남긴 교훈, 그리고 슬프고도 아름다운 여정이 녹아 있다. 미치 앨봄과 그의 부인 재닌, 그리고 치카가 이뤄낸 가족의 의미가 담겨 있다. 


<치카를 찾아서>는 아이티의 보육원을 운영하는 미치 앨봄에게 이미 8개월 전 세상을 떠난 치카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불현듯 나타나 "미치 아저씨이이이"라고 부르는 치카와의 대화, 치카와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물론 치카는 죽었고, 남겨지는 것은 종이에 쓴 글뿐이라는 현실을 알면서도 저자는 치카를 다시금 그려낸다.


치카의 본명은 '메제르다 쥔'이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치카'라고 불리게 된 아이. 세 살 치카는 가난과 질병을 피해 저자가 운영하는 보육원을 찾게 된다. 그리고 치카에게서 발견되는 선천적인 확산성 뇌교 신경교종(DIPG). 치료를 위해 아이티를 떠나 미국으로 오게 된 치카는 낯선 땅에서 용감하고 대담한 전쟁을 시작한다. 미치 아저씨, 재닌 아줌마와 함께.


"가족이란 마치 여러 개의 조각을 모아놓은 예술 작품과 같다. 가족은 수많은 재료로 만들어질 수 있다. 가끔 출생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가끔은 우연이 섞여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가끔은 시간과 환경이 합쳐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마치 미시간 부엌에서 마구 휘저어서 만들었던 스크램블드에그처럼."


책은 치카와 미치의 대화, 어린 치카가 몰랐던 자신에 대한 기억을 거치며 '나, 너,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 진다. 특히 미치는 치카가 남긴 일곱 가지 교훈을 털어 놓으며 치카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난 너의 보호자야', '시간이 변한다', '경이로움', '강한 아이',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때', '부부가 가족이 될 때', '우리가 안고 다니는 것' 등 치카의 교훈은 하나의 가족이 생성되고 성장하는 의미를 가르친다.


4개월 선고를 받은 치카 앞에서 새로운 의미의 '보호자'들은 무심코 아무 생각없이 보내던 시간이 지극히 소중하게 여겨지고, 자신의 병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치카의 모습에 좌절이 아닌 희망을 생각하게 된다. '항상 네 곁에서 너와 함께 싸울거야'. 치카를 떠나 보내기 전 의료기록 카드에 적힌 '그런데도'가 갖는 함의는 컸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상황, "그런데도 적극적으로 치료하길 원하는" 가족의 절실함. 치카와 미치, 재닌의 상황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그런데도'. 그 어떤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부딪히며 함께 존재하는 가족의 모습이 이 한 단어에 들어 있다.


미치와 재닌에게 '가장 근사한 부담'이었던 치카.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치카가 남긴 가족이라는 이름의 선물은 위대했다.(*)


*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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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한 열네 번의 인생 수업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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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이 세상에 경이로워하지. 부모들은 그런 아이들의 경이로움에 경이로워하고, 그렇게 우리 모두 같이 성장하는 거야."


긴 부리를 가진 황새가 행복한 표정으로 하늘에서 내려온다. 감격에 찬 부모 앞에 내려놓은 앙증맞은 바구니. 거기에는 천사같은 아이가 담겨 있다. 아이티에서 태어난 치카는 아름다운 꿈과는 달리 미치에게 왔다. 아이티는 국민 60%가 하루 2달러로 살아가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다. 지진, 화산 폭발과 같은 자연재해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치안이나 복지는 이곳 사람들과 거리가 멀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저자 미치 앨봄의 신작 <치카를 찾아서>는 바로 아이티에서 온 천사같은 소녀 치카에 대한 이야기다. 일곱 살 짧은 생을 마감한 치카가 세상에 남긴 교훈, 그리고 슬프고도 아름다운 여정이 녹아 있다. 미치 앨봄과 그의 부인 재닌, 그리고 치카가 이뤄낸 가족의 의미가 담겨 있다. 


<치카를 찾아서>는 아이티의 보육원을 운영하는 미치 앨봄에게 이미 8개월 전 세상을 떠난 치카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불현듯 나타나 "미치 아저씨이이이"라고 부르는 치카와의 대화, 치카와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물론 치카는 죽었고, 남겨지는 것은 종이에 쓴 글뿐이라는 현실을 알면서도 저자는 치카를 다시금 그려낸다.


치카의 본명은 '메제르다 쥔'이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치카'라고 불리게 된 아이. 세 살 치카는 가난과 질병을 피해 저자가 운영하는 보육원을 찾게 된다. 그리고 치카에게서 발견되는 선천적인 확산성 뇌교 신경교종(DIPG). 치료를 위해 아이티를 떠나 미국으로 오게 된 치카는 낯선 땅에서 용감하고 대담한 전쟁을 시작한다. 미치 아저씨, 재닌 아줌마와 함께.


"가족이란 마치 여러 개의 조각을 모아놓은 예술 작품과 같다. 가족은 수많은 재료로 만들어질 수 있다. 가끔 출생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가끔은 우연이 섞여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가끔은 시간과 환경이 합쳐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마치 미시간 부엌에서 마구 휘저어서 만들었던 스크램블드에그처럼."


책은 치카와 미치의 대화, 어린 치카가 몰랐던 자신에 대한 기억을 거치며 '나, 너,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 진다. 특히 미치는 치카가 남긴 일곱 가지 교훈을 털어 놓으며 치카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난 너의 보호자야', '시간이 변한다', '경이로움', '강한 아이',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때', '부부가 가족이 될 때', '우리가 안고 다니는 것' 등 치카의 교훈은 하나의 가족이 생성되고 성장하는 의미를 가르친다.


4개월 선고를 받은 치카 앞에서 새로운 의미의 '보호자'들은 무심코 아무 생각없이 보내던 시간이 지극히 소중하게 여겨지고, 자신의 병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치카의 모습에 좌절이 아닌 희망을 생각하게 된다. '항상 네 곁에서 너와 함께 싸울거야'. 치카를 떠나 보내기 전 의료기록 카드에 적힌 '그런데도'가 갖는 함의는 컸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상황, "그런데도 적극적으로 치료하길 원하는" 가족의 절실함. 치카와 미치, 재닌의 상황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그런데도'. 그 어떤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부딪히며 함께 존재하는 가족의 모습이 이 한 단어에 들어 있다.


미치와 재닌에게 '가장 근사한 부담'이었던 치카.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치카가 남긴 가족이라는 이름의 선물은 위대했다.(*)


*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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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미세스 - 정유정 작가 강력 추천
메리 쿠비카 지음, 신솔잎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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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에 오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산뜻한 새 출발과는 분명 달랐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의사 세이디는 시카고를 떠나 외딴 섬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세이디에게는 남편 윌의 누나가 사망하면서 남긴 집, 그리고 방황하는 십대 조카 이모젠이 주어졌다. 도시에서 동시에 벌어졌던 의료사고, 남편의 외도, 그리고 아들의 퇴학은 세이디를 억지로 섬을 향해 이끌었다.


메리 쿠비카의 장편소설 <디 아더 미세스>는 섬이라는 제한된 지역에서 엄마, 아내, 의사의 역할을 수행해야하는 극심한 심리적 압박을 강요당하는 세이디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릴러물이다. 책은 세이디의 내외적 갈등과 변화를 설명함과 동시에 두 명 여성의 시각이 서로 교차된다.


먼저 세이디의 룸메이트였던 카밀. 품행이 단정치 못하고 남의 물건에도 쉽게 손대는 카밀과 세이디는 애초에 맞지 않았다. 세이디의 남편이 될 윌을 우연히 먼저 만나게 되는 카밀의 병적인 집착은 스토커 형태로까지 이어진다. 세이디를 질투하고 원망하는 카밀의 기행은 윌과 세이디의 섬까지 이어진다.


"자신의 소유물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 그래서 나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 것을 지켜야만 했으니까." 세이디를 불안과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면서 카밀은 스스로 되내인다. 윌과 세이디의 집을 몰래 지켜보고, 침입해 가스 밸브를 열어두거나 가재도구를 마음대로 건드리는 카밀. 윌을 향한 스토커와도 같은 집착을 '사랑'이라고 포장하고 있다.


또 하나의 인물 '마우스'의 시각은 소설에 빠져 놓칠 수 있는 시간을 연결해준다. 책을 많이 읽고 아빠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어린 아이 '마우스'는 일찍 엄마를 잃었다. 그러나 책, 인형과의 대화를 즐기고 아빠가 불러주는 별명 '마우스'를 좋아한다. 아빠가 좋아하니까. 어느날 기다리던 강아지가 아닌 빈 개집만 들고 아빠와 함께 집안에 들어선 '가짜 엄마', 그리고 강아지 대신 맞이하게된 기니피그 '버트'는 '마우스'를 변화하게 만든다. '마우스'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세이디, 카밀, 마우스. 세 명의 시각으로 연결되는 <디 아더 미세스>. 섬에 안착한 세이디가 이웃의 사망 사건을 접하게 되면서 공포는 점점 더해진다. 세이디와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던 여성은 뼈칼에 의해 어린 딸이 보는 앞에서 잔인하게 살해됐고, 딸에 의해 신고된다.


여섯 살 난 아이가 울음을 참으며 교환원에게 이렇게 말한다. "눈을 안 떠요. 모건이 눈을 안 떠요."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르는 아이. 책은 세이디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곳곳에서 섬뜩하게 전달한다. <디 아더 미세스>의 옮긴이는 "이 책은 살인 사건을 다룬 심리 스릴러물이지만 내게는 한 여성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는 성장물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속도를 짐작할 수 없는 긴장감과 예상치 못했던 반전 속에서도 세이디에게 자꾸 시선이 향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세이디의 어깨 너머 휘잉 스치는 바람 속에 섞여 있는 목소리가 마치 읽는이를 향한 듯 날카롭다. "널 증오해, 넌 패배자야, 죽어, 죽어, 죽어버리라고". 책은 한 겨울 조그마한 섬에서 펼쳐지는 수준높은 반전 스릴러를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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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센 뤼팽 넷플릭스 오리지널 에디션 1 (고급 벨벳양장본) -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 외 감수 / 코너스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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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아르센 뤼팽과 셜록 홈즈는 실존했던 인물로 인식했을 정도로 동경 속 인물이었다.뤼팽과 홈즈가 대결하면 누가 이길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은 어린 친구들 사이 간혹 치열한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으니, 그들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이자 악을 응징하는 선의 대변자로 비쳐졌다. 한 명은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사건을 일으키는 도둑이니 선호에 따라 명백한 입장 차는 존재했지만.


오랜 기간 우리를 들뜨게 했던 '괴도신사 뤼팽'-과거에는 '루팡'으로 더 많이 불렸던-을 다시 만났다. 코너스톤에서 출판한 모리스 르블랑의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아르센 뤼팽 넷플릭스 오리지널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멋진 커버 디자인 속에 뤼팽의 대활약이 담겼다. 특히 최근 넷플릭스에서 현대적으로 '뤼팽'을 해석, 방영중인 드라마 <뤼팽>의 원작이란 점에서 더욱 새롭게 읽힌다.



"너 같은 놈이 열댓 명 있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군."


스스로 감옥행을 선택하고 갇힌 뤼팽을 두고 던진 한 형사의 넋두리는 뤼팽의 팬에게 '역시'하는 만족감을 전한다. 책은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 '감옥에 갇힌 아르센 뤼팽', '불가사의한 여행객', '왕비의 목걸이', '하트 7', '영배르 부인의 금고', '흑진주', '헐록 숌즈, 한발 늦다' 등 아홉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첫번째 에피소드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 대서양을 건너 미국을 향하는 여객선에 긴급 타전된 메시지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르센 뤼팽 승선, 일등석, 금발 머리, 오른쪽 팔뚝에 상처, 홀로 여행, 가명은 R...' 배에 뤼팽이 타고 있음을 알리는 무선 전신은 소설 속 등장인물과, 독자들을 함께 흥분시키에 충분하다. 이제 뤼팽의 기상천외한 작전이 개시될테니. 뤼팽을 쫓는 형사 가니마르에게 '너무나 손 쉽게' 체포된 뤼팽. 그러나 곧 그의 치밀한 구상의 실체가 하나 둘 펼쳐내 보여진다.


프랑스 경찰과 사법부를 농락하면서 자신의 범죄계획을 성공시키는 '감옥에 갇힌 아르센 뤼팽', 어이없게도 풋내기 강도에게 당한 뤼팽의 대역전극을 그린 '불가사의한 여행객'에서는 뤼팽이 가진 유머러스한 면이 잔뜩 드러난다. 절도범이지만 도락가, 취미와 적성에 맞아서 하는 일이었으나 또한 이를 즐기는 뤼팽의 모습. 저자의 설명대로 "마치 자신이 연출해놓은 연극에 출연해 실컷 즐기다가 무대 뒤에 가서는 연출된 행동과 상황에 박장대소하는 짓궂은 배우"인 뤼팽, 그대로다.



'왕비의 목걸이' 편은 앞서 언급한 드라마 <뤼팽>과 비교해보면 더욱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루이15세 시절 왕관 보석 세공인이 만들었다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에게 바친 것으로 알려진 전설의 목걸이 도난 사건을 다룬다. 여섯 살에 이미 천재적인 도둑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낸 뤼팽이 장성한 다음 다시 사건을 반추하는 형식이다. 이 아이의 이름은 '라울'로 현재 드라마에서는 뤼팽의 아들과 이름이 같다.


셜록 홈즈에게 왓슨이 있듯, 아르센 뤼팽에게도 그를 위한 '기록자'가 있다. '윌슨'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뤼팽을 처음 만나게 된 사건이 '하트 7'에서 소개된다,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뤼팽이 가는 길목에서 우연히 자신이 서있었을 뿐이라는 설명이 건조하면서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뤼팽의 친구이자 보조로서 그는 뤼팽의 이야기를 충실히 기록하게 된다. 활동 초기 사기당한 뤼팽의 이야기 '영배르 부인의 금고', 누명의 위기를 극적으로 벗어나 사건을 역이용하는 '흑진주'가 이어진다. 


마지막 에피소드 '헐록 숌즈, 한발 늦다'는 고성의 비밀을 풀어내는 뤼팽과 숌즈-사실상 홈즈-의 대결이 펼쳐진다. 모리스 르블랑은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초기작에서 영국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의 주인공 셜록 홈즈(Sherlock Holmes)를 등장시켜 뤼팽과 대결하게 했지만, 캐릭터 사용을 거절당하자 셜록 홈즈의 성과 이름의 머리글자를 바꿔 '헐록 숌즈'를 올렸다.


지독하게 자만심 가득해 보이지만 이면에는 모든 경우의 수를 그려놓은 치밀함, 상대를 녹이기에 충분한 수준의 유머와 매너, 그러면서도 약속을 지키는 신의의 도둑. '에코 드 프랑스' 지면을 통해, 혹은 친절하게도 직접 서신이나 전보를 통해 예고장을 날리고, 행여 사건의 진실을 몰라 당황할 경찰을 위해 상세한 해설까지 남겨주는 도둑. '괴도(怪盜)'는 역시 뤼팽을 위한 최고의 수식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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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성철 2 - 너희가 세상에 온 도리를 알겠느냐
백금남 지음 / 마음서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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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잣집 도련님 영주로 태어나, '가야산 호랑이'로 불리며 우리 시대를 보듬어 주었던 스승 성철(性徹)스님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만난다. 백금남의 <소설 성철>은 평생을 정진한 성철 스님의 일생과 세상에 남긴 가르침을 잔잔히 일깨워 준다. 


'괴각(乖角쟁이' 스님. '괴각'은 괴짜라는 뜻이라고 한다. 성철 스님을 알았던 주위뿐아니라 스스로도 인정했던 별명 괴각쟁이. 일본 승려들의 화려한 겉치레 차도(茶道)에 '원샷'으로 응징하고, 불교계 정화를 위한 시기 "묵은 도둑 쫓아내고 새 도둑을 만들어서야 되겠나"며 일갈하고, 돈이 있건 권력이 있건 불같은 가르침을 내려주었던 성철 스님에 대한 기록에 숙연해진다.



책은 성철 스님의 어린 시절과 출가에 이르는 과정을 중심으로 기록한 1권과 학문과 수행을 통해 위대한 큰스님으로 전진하는 이야기와 세상에 깨달음을 베푸는 모습을 그린 2권으로 구성됐다. 특히 성철 스님과 일생의 도반이 된 자운 스님, 청담 스님과의 대화와 행적은 미처 몰랐던 고민과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읽기에 빠져 총명함을 드러냈던 성철 스님은 '사람이 날아다니면 어떨까, 영원토록 살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등 혼자만의 상상이 즐거운 '엉뚱한 녀석'이었다. "안 된다. 석가야, 날 잡아가라. 내 아들 대신 날 잡아가라." 아버지의 절규를 뒤로하고 출가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스님. '진리 중에 진리'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목마름이었건, 그저 그리될 운명이었건 스님은 유림 가문의 장남이라는 세속의 틀을 벗어나게 된다.



훗날 귀한 아들의 병약함을 걱정해 기도를 위해 절을 찾았던 어머니, 어린 딸과 뱃속의 아기를 두고 어느날 머리를 깎는 남편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아내, 그리고 태어난 딸이 모두 결국 세상과의 인연을 떠나 출가하고 성철 스님의 뒤를 따르게 되니 어쩌면 정해진 뜻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도 큰 기대를 품었던 아들에 대한 서운함이 평생 상처가 됐던 아버지역시 훗날 거목이 된 성철 스님을 보고 나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모습은 성스러운 감동까지 전한다.


스님이 '성철(性徹)'이라는 이름을 얻는 순간 세속의 모든 인연은 그대로 끊어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갖지 마라/미워하는 사람을 갖지 마라/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미워하는 사람은 만날까 두렵다/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동화사, 상원사, 월정사, 송광사 마하연사, 은해사, 도리사, 해인사 등 전국을 돌며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스님의 수행과 만행은 인간의 한계를 넘나든다. 


깊고 그윽한 도의 세계가 아니라 얼핏 느껴지는 인간적인 면모마저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서른 명이 넘는 상좌를 두고서도 단 한 번도 빨래를 맡겨본 적이 없다는 성철 스님은 누가 대신 해주겠다고 하면 "가온나. 니 꺼 내가 빨아주께"라고 했다. "언 놈이 제 땀 밴 것을 남에게 맡긴단 말이고. 그거 하나 제 손으로 해결 못하면 어서 죽어야지"라는 불호령이 이어진다. 도통 남에게 부탁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양반, 한없이 아래로 낮추는 스님의 뜻이 엿보인다.



해인총림의 초대 방장으로서 백일간 두 시간씩 사부대중을 위해 법석을 마련한 '백일법문'은 마치 스님의 육성을 듣는듯 울림이 크다. 1981년 조계종 종정이 되었으나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스님이 취임식 때 '달랑' 보냈다는 법어는 세상을 번쩍 들었다 놓게 된다.


원각이 보조하니

적과 멸이 둘이 아니라

보이는 만물은 관음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이로다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아아 시회(時會) 대중은 알겠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1912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부처님의 제자가 됐고 평생을 수행으로 신체와 정신을 닦다 다시 본래대로 돌아가신 스님. '왜 그리 평생 참회를 많이 하시느냐'는 어리석은 물음에 성철 스님은 "남꺼도 있지 않나"라고 했다고 한다. 세상의 참회까지 짊어진 스님의 일면이다.


"이제 가야겠다. 참선 잘하그라. 다 못 보고 간다." 1993년 늦은 가을 아침 앉은 채 세상을 떠난 성철 스님. 백여 과의 사리는 해인사 운양대 사리탑에 봉안됐다. 그가 쏟아냈던 법어의 향기를 느끼고, 삶의 궤적을 접한 마음이 행복을 느낀다.(*)


* 문화충전200%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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