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질서 - AI 이후의 생존 전략
헨리 키신저 외 지음, 이현 옮김 / 윌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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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석학 헨리 키신저의 유작 <새로운 질서-AI 이후의 생전 전략>을 만났다. 20세기 말 정보화라는 큰 물결 이래 세상의 모든 분야를 뒤집어놓을 파도인 AI의 등장에 대한 현실적이고도, 본질적인 질문과 전략을 정리한 책이다. 미국 백악관에서 대통령 보좌관을 거쳐 국무장관을 지낸 키신저에 더해 구글 CEO였던 에릭 슈밋, 마이크로소프트 전 연구 책임자 크레이그 먼디가 공저자로 참여해 AI에 관한 사회적, 기술적 면에서 빠짐없이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했다.


"AI는 도구가 아니라 행위자다. 칼과 폭탄은 누구를 죽일지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다. 반면 AI는 스스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고 따라서 인간을 대신하여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유발 하라리 <넥서스> 가운데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AI에 대한 정의는 책의 서문을 열기에 충분하다. 짧은 문장안에서 AI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요구함과 동시에 인류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새로운 질서-AI 이후의 생전 전략>은 AI와 인류에 대한 각자의 정의, 그리고 이 둘의 상관관계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오늘날 AI가 위치한 좌표에 대한 인식을 거쳐 정치, 안보, 번영, 과학 등 4대 분야에서 도래할 미래를 설명한다. 마지막 '전략'편에서는 앞서 언급된 AI로 인한 변화-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에 대해 어떻게 대처 혹은 상호발전하는 것이 좋을 지 구체적인 답을 이끌어 낸다.


AI가 가져온 우리 일상에서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단순 검색기능이 아니라 문장과 이미지, 영상, 그래프 등 축적된 학습을 통해 사람보다 1억 2000만 배 빠른 속도로 정보를 처리한다. 준비하기도 전에 몰려온 변화지만 순응하면서 공생할 수 있을 것인지, 더욱 인간에 이롭게 될 것인지, 아니면 AI에 밀려나는 인간을 보게 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책은 정리하고 있다. 인간이 가진 '존엄성'에 기인함으로써 인류에 관한 정의를 토대로 AI를 통한 인류 전체의 발전을 도모하는 길을 모색한다.


앞으로의 AI시대는 윤리와 철학이 병행되는 AI, 제한된 정보와 개인적 가치에 따른 인간 판단의 오류를 돕는 AI가 인간 고유가 갖고 있는 의미를 더욱 심화시켜 줄 수 있을 지가 관건이 될 수 있다. AI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전망으로 기업, 국가에서 벌어질 수 있는 독점적 현상은 AI시대에 가장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올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전략적 대은 결국 '회피'가 아닌 '공존'임을 <새로운 질서-AI 이후의 생전 전략>은 말한다.


"우리는 AI에 통치받을 것인가, 아니면 AI와 함께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정답은 이미 나와있다. 다만 우리 사회가 우리가 바라는 방향의 '새로운 질서'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의 문제가 남아있을 뿐이겠다. <새로운 질서-AI 이후의 생전 전략>은 이같은 시기에 매우 적절하고도 필요한 문제제기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야할 방향타가 되준다. 책이 우리에게 품고자 요구하는 '냉철한 낙관주의'를 '새롭고, 또 새롭게' 고민해야할 때다.(*)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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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할머니 약국
히루마 에이코 지음, 이정미 옮김 / 윌마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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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할머니 약사가 남긴 ‘호기심, 꾸준함, 다정함, 그리고 시간‘이라는 귀한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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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할머니 약국
히루마 에이코 지음, 이정미 옮김 / 윌마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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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클럽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 앞 사거리에 이런 약국이 있다면 우리 동네가 더욱 건강해지지 않을까. 히루마 에이코(比留間榮子)의 <100세 할머니 약국>을 한장한장 넘기면서 놓칠 수 없는 생각이다. 실제 도쿄 번화가 한 켠에서 자신의 나이와도 같은 약국(ヒルマ薬局)을 75년 간 매일같이 운영해온, 기네스북에 최고령 약사로 등재되기도 한 히루마 에이코가 전해주는 이야기 <100세 할머니 약국>. 원제는 <시간은 약(時間はくすり)>이다.


100세라는 나이가 말해주듯 히루마는 전쟁과 재난을 비롯해 갖은 경험을 다 겪은 세대다. 그러한 약국 할머니가 남긴 말 한마디는 세상 어떤 약보다 더욱 몸과 마음을 낫게 해주는 '처방전'임이 틀림없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살아가야 할 삶이 주어진 것"이라며 "살아 있는 이에게는 그에 맞는 열학과 책임이 있는 법"이라고 설파하는 할머니에게서 모든 이에게, 모든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할머니는 이렇게 다짐한다. '오늘 하루에 관심을 갖고, 오늘을 진심으로 대하자'고.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은 단 하루도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걱정은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상대방에게 관심이 있음을 전하기만 하면 되지요. 그 사람의 마음 깊은 곳까지 들어가 그를 바꾸려고 하면, 그건 참견일 뿐입니다."


남을 걱정해야하는 일을 가진 약사지만, 할머니 약사는 지혜로운 중용을 이야기한다. '만병은 마음에서 온다'는 말과 같이 병은 사실 '참견'에서 오는지도 모른다는 것. 상대방이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불만을 쉽게 내뱉는 사람을 우리는 자주 보지만, 그러할 경우 사람들은 질려서 아예 마음이 떠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바로 다른 사람을 걱정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보라는 가르침이다. 마찬가지로 가족이라는 이유로 남편, 자식이나 손자의 인생에 함부로 끼어들어서는 안된다고 할머니는 강조한다. 남편이나 자식이라도 건드려서는 안되는 자신만의 세상이 있기에.


<100세 할머니 약국>이 알려주는 '건강한 고령'의 조건을 보자. 젊은 시절부터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잠을 충분히 자며, 적당한 운동과 스트레스 해소법을 실천하면서 늘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내용아니겠나. 그 까닭에 할머니는 책에서 꾸준히 '시간'의 중요함과 '자신'을 향한 관심과 믿음을 강조한다.


'감사는 최고의 보약'이라는 약사 히루마의 마음역시 큰 공감을 부른다. 다른 사람을 험담하거나 비난하는 일을 삼가는 대신 '감사합니다'를 자주 말하는 습관을 가지려 노력해왔다는 그는 "감사합니다를 입에 담는 횟수는 바로 '행복의 횟수'와 같다"고 말한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저자는 <100세 할머니 약국> 서문에서 책에 대해 '약과 함께 넌지시 건네는 이야기(言葉のくすり), 마음을 담아 전해 온 이야기, 나에게도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도 조금 더 다정해질 수 있는 처방전'이라고 설명한다. 한없는 겸손과 함께 온기 가득함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책을 통해 100세 할머니 약사가 주는 '호기심이라는 약, 꾸준함이라는 약, 다정함이라는 약, 시간이라는 약'을 마음에 담게 된다. 지난 4월 영면한 약사 히루마 에이코의 명복을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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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 글리코
아오사키 유고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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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을의 도립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게임과 사건을 다룬 아오사키 유고(青崎有吾)의 장편소설 <지뢰글리코(地雷グリコ)>.  모두가 알고 있을 법한 다섯가지 게임에 '독특한 룰'을 추가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악착같은 승부욕과 기발한 발상으로 게임을 펼치는 미스터리한 소녀 마토, 그리고 그녀의 친구 고다가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세세한 부분까지 치밀하게 계획한 전략으로 함정에 빠뜨린 걸까, 로션처럼 미끄러뜨렸을 뿐일 걸까."


청소년답지 않은 마토의 추리와 묘수에 고다가 품은 물음은 <지뢰글리코> 전체를 함께 한다. 다섯 게임이 펼쳐지는 동안 독자는 미스터리 추리물을 따라가면서도, 함께 게임을 풀어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오사키 유고가 깔아놓은 논리구조에 의해서. <지뢰글리코>는 시골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학생들이 가졌을 감정과 인간관계가 예리하게 전개되면서도 '성장소설'처럼 읽히기도 하는 작품이다.


책 제목과 같은 지뢰 글리코, 스님 쇠약, '자유 규칙' 가위바위보, 달마 인형이 셈했습니다, 포 룸 포커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게임이 포함돼있지만 약간의 변형을 가미해 진행되면서 주인공의 활약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예를 들어 그냥 가위, 바위, 보로 승패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가 하나의 요소를 더 집어넣도록 해 상대방의 요소를 파악하게 하고, 자신의 무기를 극대화하는 장치를 집어넣는 식이다.


승패가 갈리는 장면에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치밀한 작전. 어쩌면 책의 전개를 읽다보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떠올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물론 잔인한 도구는 없지만 학교에서, 학생에게는 아주 중요한 무엇을 위해 펼쳐지는 게임이니까.




모든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파악하고, 추론을 세우고, 재빠르게 실행하는 순발력. 어떠한 속임수라도 신속하게 눈치채고 역이용하는 기발함도 필요하다. 독자는 쉴틈없이 기어코 승리하는 마토를 위해 응원하게 되는 구조. 


단순히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게임에 동참하게 되는, 새로운 미스터리 장르같은 느낌마저 받게 되는 <지뢰 글리코>. '신감각 두뇌 배틀 소설'이라는 책소개만큼이나 등장인물들이 펼치는 치열한 머리싸움은 짜릿한 재미를 느끼게 한다.(*)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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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흠신서, 법은 누구의 편인가 - 다산 정약용이 풀어내는 정의란 무엇인가?
정약용 지음, 오세진 편역 / 홍익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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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흠흠(欽欽)'이라 한 것은 '삼가고 삼가는' 일이야말로 형벌을 다스리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 <흠흠신서> 서문 중에서


조선 최고의 판례집이자 수사 지침서라 할 만한 다산 정약용의 <흠흠신서>. 이 책이 이렇게 재미있게 읽힐 줄은 몰랐다. 홍익피앤씨의 <흠흠신서, 법은 누구의 편인가>는 크고 작은 사건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임금의 판결과 다산의 견해로 구성돼있어, 마치 하나하나 사건을 풀이하고 판결에 이르기까지 독자가 함께 참여하는 듯 이끌어 낸다.


"정조의 판결문, 다산의 논평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상호 견제, 납득, 인정을 사법 행정에서 중요한 가치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편역자가 서두에서 이같이 밝혔듯 본문에서 이어지는 서른 여섯편의 사건과 판결에서 국가와 법의 역할, 중앙과 지방의 관계,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연 등이 세세히 드러난다.


현대 재판과 다소 거리가 있는 판결도 있지만, 그 속에서 임금이 애민정신과 다산의 원칙과 합리성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다. <흠흠신서, 법은 누구의 편인가>는 <흠흠신서> 중에서 조선의 사례를 담고 있는 <상형추의>, <전발무사>의 사례를 선별하여 편역했다. 각 사례마다 사건 개요, 검시 보고서, 임금의 판결문, 다산의 견해 순으로 구성됐다.


책을 따르다 보면, '따뜻한 법'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법규정은 엄격히 적용돼야함이 옳겠지만, 조선시대 법과 인정을 함께 고려한 사례에서도 교훈을 얻는다. 본문에 따르면 "법이 그렇기 때문에 법대로 한다기 보다는 '백성들이 마음으로 따를 수 있는'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의지가 정조의 판결문에도 고스란이 녹아있다.


방탕한 생활로 가산을 탕진한 아들을 죽인 사람이 옆에 있던 사람에게 죄를 덮어씌운 사건을 해결한 정조. 그리고 이에 대한 다산의 논평을 보자. 다산은 "자식을 죽인 죄는 도리어 작고, 사람을 허위로 고발한 죄가 더 크다. 살인은 우발적으로 발생한 일이지만, 누명은 이익을 취하기 위해 벌인 고의적인 범죄이기 때문이라는 판단에서다. 단순히 조문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까지 범위를 넓히고 있다.


비록 죄인일지라도 인권에 대한 정조의 인식도 놀랍다. 정조는 죄수를 함부로 대하고, 그들을 복종케해 범죄를 저지르게 한 옥졸에 대해 크게 분노한다. "형틀을 세척하고 옷과 약품을 충분히 공급하라. 죄수에게 모욕과 학대를 가하는 옥졸을 엄히 단속할 것을 법령으로 정하라. 나라에 법과 기강이 있다면 어떻게 이럴 수 있겠는가".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옥졸의 악행을 수수방관하고 단속할 방안을 강구하지 않은 수령을 당장 파면할 것을 지시한다.


물론 조선시대의 사회상이 현대와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자면 '아내를 죽인 남편을 벌하는 세 등급'이 그렇다. 첫째, 아내의 간통을 목격하고 저지른 살인 죄는 묻지 않는다, 둘째 시부모에 순종하지 않은 아내를 살해한 경우 형장 100대에 처한다는 것. 그러나 셋째로 부부간에 싸우다가 일어난 범죄는 살인죄로 사형에 처하고 있다.


시대를 떠나 법과 심판에 대해 다시금 생각케 하는 <흠흠신서>. 어렵지 않게 단편소설집을 읽듯 술술 넘어가는, 그리고 그 속에 담겨있는 공정과 원칙에 대한 의미를 느끼게 해주는 <흠흠신서, 법은 누구의 편인가>다.(*)


*컬처블룸 소개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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