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흠신서, 법은 누구의 편인가 - 다산 정약용이 풀어내는 정의란 무엇인가?
정약용 지음, 오세진 편역 / 홍익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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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흠흠(欽欽)'이라 한 것은 '삼가고 삼가는' 일이야말로 형벌을 다스리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 <흠흠신서> 서문 중에서


조선 최고의 판례집이자 수사 지침서라 할 만한 다산 정약용의 <흠흠신서>. 이 책이 이렇게 재미있게 읽힐 줄은 몰랐다. 홍익피앤씨의 <흠흠신서, 법은 누구의 편인가>는 크고 작은 사건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임금의 판결과 다산의 견해로 구성돼있어, 마치 하나하나 사건을 풀이하고 판결에 이르기까지 독자가 함께 참여하는 듯 이끌어 낸다.


"정조의 판결문, 다산의 논평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상호 견제, 납득, 인정을 사법 행정에서 중요한 가치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편역자가 서두에서 이같이 밝혔듯 본문에서 이어지는 서른 여섯편의 사건과 판결에서 국가와 법의 역할, 중앙과 지방의 관계,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연 등이 세세히 드러난다.


현대 재판과 다소 거리가 있는 판결도 있지만, 그 속에서 임금이 애민정신과 다산의 원칙과 합리성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다. <흠흠신서, 법은 누구의 편인가>는 <흠흠신서> 중에서 조선의 사례를 담고 있는 <상형추의>, <전발무사>의 사례를 선별하여 편역했다. 각 사례마다 사건 개요, 검시 보고서, 임금의 판결문, 다산의 견해 순으로 구성됐다.


책을 따르다 보면, '따뜻한 법'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법규정은 엄격히 적용돼야함이 옳겠지만, 조선시대 법과 인정을 함께 고려한 사례에서도 교훈을 얻는다. 본문에 따르면 "법이 그렇기 때문에 법대로 한다기 보다는 '백성들이 마음으로 따를 수 있는'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의지가 정조의 판결문에도 고스란이 녹아있다.


방탕한 생활로 가산을 탕진한 아들을 죽인 사람이 옆에 있던 사람에게 죄를 덮어씌운 사건을 해결한 정조. 그리고 이에 대한 다산의 논평을 보자. 다산은 "자식을 죽인 죄는 도리어 작고, 사람을 허위로 고발한 죄가 더 크다. 살인은 우발적으로 발생한 일이지만, 누명은 이익을 취하기 위해 벌인 고의적인 범죄이기 때문이라는 판단에서다. 단순히 조문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까지 범위를 넓히고 있다.


비록 죄인일지라도 인권에 대한 정조의 인식도 놀랍다. 정조는 죄수를 함부로 대하고, 그들을 복종케해 범죄를 저지르게 한 옥졸에 대해 크게 분노한다. "형틀을 세척하고 옷과 약품을 충분히 공급하라. 죄수에게 모욕과 학대를 가하는 옥졸을 엄히 단속할 것을 법령으로 정하라. 나라에 법과 기강이 있다면 어떻게 이럴 수 있겠는가".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옥졸의 악행을 수수방관하고 단속할 방안을 강구하지 않은 수령을 당장 파면할 것을 지시한다.


물론 조선시대의 사회상이 현대와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자면 '아내를 죽인 남편을 벌하는 세 등급'이 그렇다. 첫째, 아내의 간통을 목격하고 저지른 살인 죄는 묻지 않는다, 둘째 시부모에 순종하지 않은 아내를 살해한 경우 형장 100대에 처한다는 것. 그러나 셋째로 부부간에 싸우다가 일어난 범죄는 살인죄로 사형에 처하고 있다.


시대를 떠나 법과 심판에 대해 다시금 생각케 하는 <흠흠신서>. 어렵지 않게 단편소설집을 읽듯 술술 넘어가는, 그리고 그 속에 담겨있는 공정과 원칙에 대한 의미를 느끼게 해주는 <흠흠신서, 법은 누구의 편인가>다.(*)


*컬처블룸 소개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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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오마카세 한국추리문학선 20
황정은 지음 / 책과나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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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이 ‘누구에게, 어떻게 맡겨진 채로 코스요리처럼 펼쳐진 것인지‘...오마카세의 반전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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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오마카세 한국추리문학선 20
황정은 지음 / 책과나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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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중심가 멋진 빌딩에 입점한 세입자들은 인자한 건물주 덕분에 각자의 희망을 키우며 평화로운 일상을 이어간다. '특혜'로까지 비칠 정도의 싼 임대료와 파격적인 계약 기간으로 장기임차인이 많은 무송빌딩. 그러나 미제사건으로 남아버린 뺑소니 교통사고로 건물주가 갑자기 죽음을 당하고, 미국에 있던 그의 아들이 빌딩을 상속받아 귀국하면서 그들의 '평화'는 일순간에 무너져버린다.


황정은의 <살인 오마카세>는 이같은 배경에서 벌어지는 두 개의 변사사건을 풀어내는 추리소설이다. 앞서 벌어진 뺑소니 교통사고까지 덤으로. 전 건물주의 아들은 말 그대로 무송빌딩의 무법자로 안하무인격 행동을 일삼는 패륜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세입자들의 원한이야 당연히 깊어져만 가고. 금전적 피해 뿐 아니라 성희롱, 영업방해 등 무법자의 거침없는 악행이 '독살'로 마감되면서 범인과 동기를 찾아가는 형사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진다.


무송빌딩에 자리잡고 있는 일식집 스바라시, 고운내과, 무송약국, 커피조아, 리노헤어숍, 물들임염색방 등 모든 세입자가 용의선상에 오른 상황. 그들 사이의 관계, 각자의 욕심이 이리저리 얽히면서 추리는 반전을 거듭하며 진행된다.


'맡긴다'는 의미를 지닌 오마카세(お任せ). 일본의 음식점에서 주방장에게 모든 메뉴를 일임하는 코스요리를 뜻하는 말로 일반적으로 쓰인다. 그렇다고 해서 책을 펴기도 전에 <살인 오마카세>라는 제목이니 '그럼 일식집이 범인아냐?'라고 쉽게 단정지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살인이 누구에게, 어떻게 '맡겨진 채로 코스요리처럼 펼쳐진 것인지'에 관심을 두면 흥미가 더할 것 같다.


"우연과 실수가 만나 소름 끼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한 용의자의 항변은 책이 결말로 나아가는 방향타가 된다. 사춘기 때부터 비행을 일삼다 보니 인성이 비뚤어져 공강능력이 현격히 떨어진 사내의 죽음, 연이어 발생한 악착같이 딸 뒷바라지에 열심이었던 미용실 원장의 사망 뒤에 숨어 있는 일그러진 가족의 모습이 <살인 오마카세>가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아니었을까.(*)


*리뷰어스 클럽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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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야구공
전리오 지음 / 초봄책방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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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치 귀신에라도 홀린 것 같았다. 내 손에 들린 야구공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더니 그 안에 봉인되어 있던 어떤 고상한 할머니의 정령이 소환되었고, 뒤이어 그녀를 꼭 닮은 외손녀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외손녀가 신비한 마법을 부리며 나에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전리오의 <할머니의 야구공>, '작가 후기' 가운데


야구공을 손에 들자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이끌려 쏟아진다. 그 속에 뜨거운 가슴을 억누르며 시대를 방황했던 남자와 여자가 서로 엇갈린다. 전리오의 <할머니의 야구공>은 일제라는 암울했던 시대에서 출발해 한일수교를 지나 먼 훗날일 현재에까지 방대한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이문열의 <변경>을 떠올리게 될 정도의 길고도 넓은 무대가 펼쳐진다.


방송PD인 윤경은 외할머니 유품을 받아 정리하던 중 너무나 잘 관리된 야구공을 발견한다. 그리고 '108개'라는 야구공의 실밥수처럼 다난할 <할머니의 야구공>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할머니와는 전혀 관계없을 것처럼 여겨졌던 야구와 야구공, 그 속에 숨은 사연에 가슴 한 켠에서 계속 답답하고도 뭔가 모를 울컥함을 느끼게 된다.


할머니의 유품에서 나온 야구공은 1940년 일본 고시엔 대회에 사용됐던 것으로 밝혀진다. 그해 식민지 조선의 대표로 대회에 참여했던 팀은 영산상업. 그리고, 경상남도 영산은 바로 할머니 김순영의 고향이었다. 윤경의 추적으로 하나하나 의문이 풀리면서, 할머니의 그날-1958년 남자고등학교 운동장에 서있었던 이유-에 대한 미스터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조선의 대표로 열도로 건너갔던 서영웅(일본명:오우치 히데오), 그리고 김순영이 대한민국과 일본이라는 가깝고도 낯선 공간을 두고 교차되는 시간은 급격히 빨라진다. 태평양전쟁, 일본의 항복과 광복 등 거대한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서영웅은 도일, 성공, 입대, 이탈, 투옥 등 마치 격량과도 같은 삶을 이어간다. 그 속에 김순영의 기다림은 단단하면서도 아픈 시간으로 남게 되고.


<할머니의 야구공>이 단순한 러브스토리로 읽히지 않는 것은 두 사람의 사연과 배경에 시대상이 담담하게 녹아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민단과 조총련. 힘없는 개인에게 피아 구분조차 명확치 못했던 시절의 아쉬움은 두 사람을 더욱 아프게 한다.


서두에 작가의 후기를 소개했다. 그 말 그대로 <할머니의 이야기>는 야구공에서 시작된 손녀의 마법처럼 바로 옆에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낸다. 작가는 '물성(物性, physicality)'이라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직접 보고 만지고 느껴봐야만 비로소 좋은 글이 써진다고 설명한다. 책장 한 켠에 놓여 있던 야구공을 꺼내 다시 잡아보게 했다. <할머니의 야구공>의 감정이 혹시 전해지지 않을까 여운을 담아.(*)


*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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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 - 김진명 장편소설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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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날에는 참고 견디라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이 모든 것 하염없이 지나가나 지나간 것은 그리워진다"


- <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에 인용된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Aleksandr Sergeevich Pushkin)의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 가운데



김진명의 작품은 항상 한 편의 예언서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전세계 대륙을 오가는 광대한 스케일 속에 실존인물들을 과감히 등장시키며, 실제 벌어졌거나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대한 해석과 전망이 날카롭게 펼쳐진다. <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배경이다.


오래지 않아 러시아의 일방적인 승리로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보였던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예상을 넘어서는 단결력과 정부의 지도력, 그리고 서방의 지원으로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도록 몰고 가고 있다. 작가는 이 전쟁을 '기울어진 운동장의 결정판'이라고 지적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를 포함해 많은 도시들을 마음껏 헤집어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영토를 향해 어떠한 치명적 무기를 사용할 수 없는 전쟁.




"깊이 들여다보면 이 전쟁은 도깨비야."

"이길 수도 질 수도 없다는 뜻인가?"


미국은 물론 나토의 모든 국가, 심지어 한국과 일본, 캐나다, 호주까지 푸틴의 손가락 끝만 지켜보고 있는 것 말고는 달리 대처 방안이 없는 세계의 고민이자 인류의 고민이 돼버린 전쟁으로 책은 설명한다. 우크라이나에서 이같은 '기형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러시아가진 핵때문이다.


<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은 세계를 향한 푸틴의 '핵 협박'이 실제 상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가정을 두고, 이를 극복해내는 과정을 풀어낸다. 미약한 신을 대신한 한국인 캐빈의 기상천외한 전략이 유라시아를 넘나 든다. '선수인 동시에 룰을 만드는 심판'인 강력한 미국일지라도 '핵'이라는 힘앞에 주저할 수밖어 없는 이유, 서방과 공산진영 국가들의 이기적이고도 나약한 모습도 여과없이 들춰낸다.




핵을 두 손에 쥔 광기어린 지도자를 멈춰서게 하는 것은 475킬로톤의 핵탄두를 288개나 싣고 심해를 누비는 전략핵잠수함 로드아일랜드가 아니라 세계와 인류를 향한 '뜨거운 무엇'임을 <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은 표현한다. 


<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은 엄청난 속도로 전개되는 스토리, 특유의 환경과 사연을 가진 개성있는 캐릭터, 그리고 실존 인물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작품에 쉽게 빠져들게 한다. 결국 우리는 작가의 신념대로 전 세계인이 힘을 합쳐 푸틴의 핵 협박을 이겨내고, 차원 높은 미래로 동행하는 지구를 이해하게 된다.(*)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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