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벨 죽이기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배우 윤복희가 열연한 어린이 뮤지컬 '피터팬'이 떠올랐다. 어머니 손을 잡고 찾은 극장, 몇 살이었는 지도 모를 까마득한 과거지만 화려한 무대 위를 멋지게 날아 오르는 피터팬의 퍼포먼스와 불쌍한 아이들을 '나쁜 어른'의 상징인 후크 선장으로부터 지켜내는 스토리에 흠뻑 빠졌던 추억이 되살아났다. 고바야시 야스미(小林泰三)의 <팅커벨 죽이기(ティンカ-ベル殺し)> 표지를 바라보며 잠시 젖은 회상이다.



"후크 선장이 누군데?"

"기억 안 나?"

"난 죽인 놈들은 잊어버리거든."


"나를 만나면 팅커벨은 기뻐할까."

"팅커벨이 누군데?"


고바야시 야스미의 <팅커벨 죽이기> 첫 장. 시간이 한참 지나 만난 어른이 된 웬디와 피터팬의 대화는 이제 곧 아련했던 동심을 처참히 짓밟아 버릴 심산이다.


<팅커벨 죽이기>는 우리가 기억하는 피터팬의 모험이 끝난 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피터팬은 숙적 후크 선장과의 싸움에서 승리했고, 여섯 명의 잃어버린 소년들은 웬디 가족의 양자가 된 상황. 어른이 되길 거부한 피터 팬이 웬디와의 약속을 뒤늦게 기억하고 다시 함께 네버랜드로의 모험을 떠나는 장면부터 출발한다.


변치않은 어린이의 모습으로 악당을 무찌르고, 가련한 잃어버린 소년들을 이끌며 네버랜드를 수호하는 피터팬은 잊자. 상대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큼도 없으며 살인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악행에 대한 죄의식조차 없는 무시무시한 독재자 피터팬이 <팅커벨 죽이기>에 존재한다. 


'꿈의 나라' 네버랜드는 피터팬과 잃어버린 소년들, 해적단, 붉은피부족 들의 살육이 늘상 벌어진다. 제임스 매튜 배리의 원작에 등장하는 피터팬의 모습또한 다르지 않다고 하니 독자들의 잘못된 상상이었을 뿐, 고바야시 야스미가 원작에 충실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결코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 온 걸 환영한다."


천진난만하면서도 사악한 웃음을 짓는 피터팬. 상상만으로도 오싹한 기운을 전한다. <팅커벨 죽이기>는 의문의 '팅커벨 살해사건'을 현실 세계와 네버랜드를 넘나들며 풀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며, 권선징악을 강조하는 잔혹한 도시괴담이기도 하다.


피터팬과 웬디가 네버랜드로 떠나는 즈음, 지구의 이모리 겐은 눈 덮힌 산골 료칸에서 열리는 초등학교 동창회로 향한다. 고바야시 야스미의 '죽이기' 시리즈에 등장하는 도마뱀 빌, 그리고 빌의 아바타인 이모리의 시선이 교차되면서 현실과 네버랜드를 오간다.


꿈인듯 현실인듯 네버랜드에 살고 있는 누군가-혹은 무엇-와 기억을 공유하는 동창회 참석자들. 그들은 각각 네버랜드에 존재하는 캐릭터의 아바타다. 네버랜드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임을 당하는. 그러나 현실에서의 죽음은 그저 꿈처럼 리셋될 뿐이다. 그들은 인간의 몸으로 지구에 살고 있지만 네버랜드에서 발생한 '팅커벨 살해 사건'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으며, 뭔가 거스를 수 없는 힘에 휘말린 느낌이다.



<팅커벨 죽이기>는 미스터리 자체로서도 흥미를 끈다. '쌍둥이 트릭'이 절묘하게 사용되면서 팅커벨을 죽인 진범을 찾아가는 과정이 현실과 네버랜드에서 동시에 전개된다. '탐정이자 형사이며 재판관'을 자처하지만 피터팬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요정을 관장하는 마브 여왕은 피터팬을 가리켜 '켄싱턴 연못 속 섬에 만든, 결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낙원에 머물고 있는 저주받은 존재일 지도 모른다'고 했다.


말미에 소개되는 '제임스 매튜 배리와 피터팬에 대하여'는 원작과 <팅커벨 죽이기>를 비교하면서 이해도를 높이는데 기여한다. 배리의 생애와 각 작품의 줄거리를 통해 <팅커벨 죽이기>에 등장하는 인물과 작동하는 요소를 맞춰보는 재미가 더해진다. 그리고 도마뱀 빌과 이모리의 모험은 <팅커벨 죽이기>에서 멈추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중전쟁 (30만부 돌파 기념 특별 합본판)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한민국의 독자적인 핵 개발을 둘러싼 미묘한 국제정세와 정치 상황을 그려냈던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1993년 출간과 동시에 큰 반향을 끌어냈다. 박정희 대통령, 그리고 천재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를 주축으로 조국의 자주국방을 위한 노력이 실제 상황으로 느껴질만큼 큰 감동을 얻어냈으며, 주변 강국의 책략은 냉혹한 현실을 다시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됐다.


<미중전쟁>은 한반도 핵문제를 넘어 세계 질서 재편이라는 큰 주제 속에서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북한의 체제존립을 위한 핵 개발이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의 거대한 음모와 맞물려 대한민국을 비롯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의 뒤엉킨 이해관계가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출판사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싸드>의 종결판으로, 25년 작가 인생을 걸고 쓴 김진명의 충격적인 팩트 소설"로 소개했다.


책은 특히 트럼프, 시진핑, 푸틴, 김정은 등 실존 인물을 그대로 등장시켜 현실감을 높였으며, 그들이 바라보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가감없는 시선도 그대로 적시된다. 김진명이 가진 국제정세에 대한 특유의 감각과 논리적인 해법은 <미중전쟁>을 통해 다시 한번 위력을 발휘한다.



"용기와 결단없이 해결할 수 있는 난제는 없다." 작가의 말에 이미 <미중전쟁>의 결론은 드러난다. 북핵문제, 외교문제에 있어서 분명한 시각이나 태도를 취하지 않고 그저 눈치만 보는 문재인 정권을 지적하면서 '눈치만 보다가는 우리가 설 자리를 스스로 잃어버리고 만다'는 지극히 간단한 진리를 강조하고 있다.


국제자금세탁을 조사하기 위해 비엔나에 위치한 세계은행 오스트리아지부를 찾은 김인철. 워싱턴 세계은행 본부 특별요원으로 근무하던 인철은 국제적인 펀드매니저의 석연찮은 자살 사건을 접하게 되고, 그가 운용하던 엄청난 자금의 실체와 주인을 밝히기 위한 추적을 시작한다.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에서는 미군 폭격기의 눈을 피해 수소폭탄 실험을 진행하고 마침내 강산이 미친 듯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김정은은 개발 완성의 축배를 든다. "오늘부로 우리는 미 제국주의자 놈들과 똑같은 힘을 가졌소. 조선반도 100년 숙원을 푸는 거야."


"북한에 대한 공격에서 가장 장애가 되는 건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입니다." 

"정신 나간 거 아닌가? 자기네 국민을 지키려고 방사포를 때려잡는데 대통령이 반대해?"



그즈음 워싱턴 백악관 워룸에서는 트럼프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위해 북한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준비한다. "최고 수준의 전면공격을 선택하겠어. 내가 워룸에 다시 들어노는 바로 그 순간부터 한 시간 안에 북한의 모든 걸 완전히 파괴해버리는 거야."


'슈퍼 차이나'의 꿈. 미국의 반대편에 서있는 시진핑은 중국몽 실현을 위한 '일대일로'에 따라 중국을 태양으로 하는 새로운 우주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이어간다. 세계경찰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에 맞선 '빅2'로서 유라시아에 막대한 영향력을 키우는 중국. 그리고 이러한 중국 옆에는 공존과 견제를 거듭하며 '과거의 영광'을 노리는 러시아의 치밀한 셈법이 작동한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미국, 중국, 러시아의 관계라는 가시적인 세계 이면에는 또 다른 거대한 세계가 존재한다. 실제 세상을 설계하고 작동하는 힘. 미국이라는 성배를 지키고 수호하기를 자처하는 이른바 '성배기사단'이라는 결사체는 세계의 정치, 경제, 금융, 군수, 언론을 지배하고 있다. 미국을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 즉 '달러와 석유'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기 위해 그들은 전쟁마저도 도구로 삼는다.



전쟁을 해야만 하는 운명을 가진 슬픈 나라 미국. 이같은 미국과 혈맹인 대한민국의 선택이 <미중전쟁> 전면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나간다. 김진명의 예리한 관찰력과 예측이 책의 긴장감을 드높인다. 미국 편을 들자니 중국이 압박하고, 중국에 잘보이자니 미국이 멀어지는 그야말로 '남는게 없는 장사'를 거듭하는 대한민국. 게다가 북한 눈치까지 살펴야하는 정권의 고민이 깊어 진다. '전쟁의 논리'를 이겨낼 수 있는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을 찾아가는 과정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소설 <미중전쟁>은 우리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북한에 대해선 핵 포기가 없는 한 어떤 타협도 대화도 없다는 원칙, 미국에 대해선 어떤 군사작전도 반드시 우리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원칙, 중국에 대해선 이 순간 이후 어떤 치졸한 보복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그것을 굳게 지켜나갈 때에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북핵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강조한다. 앞서 밝혔듯 '용기와 결단'없는 '해결'은 없다는 뜻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사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시 한번 경고한다. 이 책은 읽으면 안 된다."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 해설이다. 작품의 의미를 다시 풀이해주고, 가치를 드높이는 것이 '작품 해설'이기 마련인데 마리 유키코(真梨幸子)의 책에는 대놓고 '읽지 마라'는 경고가 새겨져 있다. 심지어 본문보다 해설을 먼저 보라는 권고까지 붙어 있다. 당혹스럽지만, 그 이유가 짐작된다.


여섯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마리 유키코의 <이사(引っ越し)>. 문, 수납장, 책상, 상자, 벽, 끈 등 이사와 관련된 소재가 각각의 이야기를 주도한다. 보편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사건이라기보다 엽기적이고 흉악한, 또는 이해하기 힘든 사연이 단편마다 숨어 있다.



마리 유키코는 이야미스(イヤミス)장르의 여왕으로 불린다. 이야미스는 '싫어'라는 뜻의 일본말 '이야'와 '미스터리'를 붙여 만들어진 조어다. 간단히 말하면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읽어 버리는', 즉 '처음부터 끝까지 손 놓지 못하고 읽히지만, 뒷맛이 개운치 못한 이야기'라 하겠다. <이사>의 옮긴이는 '인간의 어두운 측면을 가차 없이 그려내기에 읽고나면 기분이 찜찜하고 불쾌해지는 미스터리'라고 설명했다. <고백>, <N을 위하여>, <야행관람차> 등으로 유명한 작가 미나토 가나에(湊かなえ)도 대표적인 이야미스 장르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이야기는 급히 새로 옮길 집을 찾고 있는 기요코의 사연에서 시작된다. 첫번째 단편 '문'. 모처럼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 여기저기 둘러보는 기요코. 그러나 벽에 남은 아주 작은 구멍들과 함께 '비상구'라고 적힌 문 뒤에 숨은 작은 방을 발견하게 된다. 무엇이 꿈인지, 현실인지조차 헷갈리는 상황 속에서 기요코는 "와, 돌아버리겠네."를 연발한다. 부동산직원 아오시마는 기요코가 흘린 손수건을 챙겨 든다.


수상한 엄마 나오코의 이사 준비를 그린 '수납장'. 미혼모의 딸인 나오코는 오랜 시간 방치해 둔 골판지 상자를 두고 고민에 빠진다. 가져가야할 지, 버려야할 지. 상당히 개인적이고 은밀하지만 결코 꺼내볼 일이 없었을 상자를 열어보면서 '처분, 보관, 그리고 보류'로 구분하고 추억에 빠지는 나오코. 하지만 딸 가오리는 알고 있다. '엄마가 또 뭔가를 저질렀다'는 것을. 멘션관리인 아오시마는 나오코의 밤늦은 이사준비를 지켜 본다.



신체 일부가 없는 신원미상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기사에서 출발하는 '책상'은 아오시마 운송이라는 작은 회사 전화상담 직원으로 취업한 마나미가 등장한다. 남편의 벌이로 충분치 않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시작한 부업이지만 마나미는 사장과 그의 누나 아쓰코의 행동이 미심쩍다. 결국 마나미는 '누군지 모를 당신에게'로 시작하는 선배 직원이 책상 속에 숨겨둔 편지를 읽게 되고, 퇴직을 결심하게 된다. 


"내 상자, 내 상자는 무사할까." 33층에 이르는 대형 회사의 대규모 배치전환-부서이동과 비슷한 의미로 보인다-과정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파견사원으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유미에의 사연이다. 정사원을 향한 파견직원 아줌마들의 고의적인 괴롭힘으로 유미에는 자신의 골판지 상자를 잃어버리게 되고, 친구 교코에게 의지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나 교코는 겉과 달리 유미에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다. 파견사원 우두머리격인 아오시마는 유미에를 어느 한 곳으로 몰아간다.


다섯번째 단편 '벽'은 회사, 그리고 집의 이웃에 관한 이야기다. 아버지의 불평, 이어지는 소란과 폭력. 늘 같은 악몽에 시달리는 하야토. 꿈 속에서 "엄마! 그만해, 하지 마!", "아빠! 안 돼, 안 돼. 그 이상은 안된다고!"를 외친다. 회사 동기 이토는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어느날 과한 부부싸움 소리를 듣게된 이토는 부인의 안전이 걱정돼 경찰을 소환하면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회사 동료 아오시마의 귀엣말이 예사롭지 않다. "대신 해줄까요?" 친절하면서 소름돋는다.


마지막 이야기 '끈'. '무서운 이야기'와 '이사'를 좋아하는 방랑자 사야카의 또 다른 취미는 포털사이트의 '거리뷰' 돌아보기다. 인터넷을 통해 실제라면 가보지 않을 곳을 직접 걷는 듯 모험을 즐긴다. '거리뷰'를 통해 자신이 사는 멘션 곳곳을 둘러보던 사야카가 비상구 앞에서 여러 개의 검은 끈을 발견하게 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멘션 관리인 아오시마는 여성용 손수건 또는 뭔가를 들고 그녀를 줄곧 지켜본다.



<이사>에 실린 여섯 가지 이야기는 하나로 연결돼있다. 특히 모든 단편에 등장하면서 점차 본색을 드러내는 캐릭터 '아오시마'의 정체는 책의 재미를 더해 준다.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 우리 주위에 늘상 놓여있는 문, 수납장, 책상, 상자, 벽, 끈들은 '매우 꺼림직한' 대상으로 바뀌어져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책을 덮는 것이 현명하다', '그래도 계속 읽겠다는 사람은 알아서 책임을 지도록 하라'는 작품 해설의 경고는 틀리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체인 아르테 오리지널 12
에이드리언 매킨티 지음, 황금진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두 가지를 기억해라. 첫째, 네가 처음도 아니고 분명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둘째, 명심해라, 이건 돈 때문이 아니라 체인 때문이라는 걸."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은 범죄의 사슬에 몰입하게 된다. <체인>을 여는 첫 장부터 읽는이는 주인공 레이철 가족과 함께 사슬을 풀어 마침내 탈출하고, 기어이 사슬을 끊어내고자 하는 목숨 건 전투를 이어나갈 것이다. 에이드리언 매킨티의 <더 체인>이 가진 흡입력이 대단하다.



착실히 암을 이겨내며 딸 카일리와 자신을 위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이어가던 레이철에게 악랄한 장난같은 사건이 발생한다. 카일리의 납치, 그리고 거액을 요구하는 협박 전화. 그것 뿐이 아니다. 자신과 카일리마저 범죄에 개입토록 만드는 잔인한 지시가 이어진다. '체인'에 걸려든, 혹은 '체인'과 하나가 되버린 레이철. 딸을 구하기 위한 엄마의 피말리는 투쟁이 시작된다.


저자 에이드리언 매킨티는 2012년 멕시코시티에서 발생한 '피해자 교환 납치'라는 개념을 접하고 난 뒤 <더 체인>을 구상했다고 한다. 책에서 '체인'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감정인 사랑을 이용해 돈을 버는 끔찍한 장치로 작용한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 형제자매간의 사랑, 또는 연인의 사랑이 없는 세상에서는 먹히지 않을 수단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전혀 없거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시오패스만이 쓸 수 있는 것이 바로 '체인'이다.


무언가 혹은 누군가 때문에 자식이 위험에 처하는 일을 당해봐야 비로소 공포를 경험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는 체리철의 말은 옳다. 부모에게 인생 최악의 일이란 것은 죽음이 아니라 자식에게 변고가 생기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마저 부조리에 빠져들게 하는 '체인'에 몸서리치면서도 이를 극복하고자하는 레이철의 노력이 고단하다.



<더 체인>은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실종된 소녀들'에서는 '체인'에 걸려든 레이철의 딸을 구하기 위한 분투가, '미궁 속 괴물'에서는 '체인'을 만든 이들의 전모와 맞서 싸우는 과정이 그려진다. '마약과 섹스 컬트 대학살'의 주인공 문빔과 머쉬룸에서, 올리버와 마거릿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는 쌍둥이 남매는 존재 그 자체로 섬뜩하다.


'당신은 벌판에서 여우 세 마리를 죽이고 노란 화살을 받게 됩니다.'

역경(易經)을 펼쳐 든 레이철. 육효 중 뇌수 해(雷水解) 해방 부분의 점괘는 중요한 암시가 된다.


한 번 '체인'에 들어오면 영원히 소속된다는 무시무시한 협박, 어느 때고 자신과 가족을 지켜보고 있는 '체인'의 지배자들은 마지막장까지 레이철을 옭아맨다. 마치 낙하산에서 내리니까 지뢰밭인데 심지어 출구도 없는 형국이다. 누군가를 미끼로 잠재적 배신자마저 가려내는 '체인'의 치밀함은 레이철을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도록 만든다. 그녀를 갉아먹고 있는 몸속의 'C'는 암(Cancer)이 아니라 체인(Chain)이다.


그러나 레이철을 절망에서 구하는 것은 역시 삶에서 필요한 바로 그것-가족, 친구, 응원-이란 점을 <더 체인>은 강조한다.



개방과 공유라는 허울 속에 무방비 상태로 SNS에 빠져 있는 실태에 대해서도 <더 체인>은 적절한 비판을 가한다. 인스타그램에 빠져있다 납치당하는 장면, 새로운 희생자를 찾기 위해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탐색하는 모습, SNS를 통한 과도한 정보 노출로 '체인'에 걸려드는 가족 등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지적이다.


"레이철은 차츰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의 인기 주제에서 밀려난다. 어떤 불쌍한 다른 인간이 나타나 그녀의 자리를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불쌍한 인간은 그 후에 또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또 그 후에도, 아주 흔해빠진 상황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쿄의 마야 Maya in Tokyo K-픽션 27
장류진 지음, 채선이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외국에 살고 있을, 특히 일본에 살고 있을 많은 한국인이 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정체성, 그것과 관계없이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다른 시각. 장류진의 <도쿄의 마야>는 바로 이 시각에 대해 담백하게 풀어 놨다. 몇 장 되지 않는 단편 속에 많은 행간을 넣어두면서, 독자로 하여금 더욱 깊은 생각으로 이끄는 공간을 열어 뒀다.


<도쿄의 마야>는 '경구형'에 대한 이야기이자, '경구형'의 딸 '마야'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 속 화자 '나'는 결혼 후 처음 맞는 아내의 생일을 맞아 도쿄 여행을 떠난다. 항공권 사이트에서 저렴한 도쿄행 티켓을 발견하고, 도쿄에 가보고 싶다던 아내의 말을 떠올랐으며, 부부가 낸 연가에 주말을 끼워 '생일 여행'이라고 이름 붙인 여행에 나서면서 책은 시작된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내가 도쿄에 있는 '경구형'을 떠올린 것은 거의 마지막 단계다.



'경구형', 한국이름 '안경구'는 나의 나이많은 대학동기다. 자신의 이름을 비롯해 우리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재일교포 경구형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에 대한 시선은 '다른 동기들'과는 다르게 출발한다. 해외교포라는데서 오는 선입견, 우리와는 다른 옷차림과 말투. 


'저 사람은 한국 사람에 가까울까, 일본 사람에 가까울까'라는 질문은 처음부터 시작된다.


'경구형'이 보여주는 모습역시 일관적(?)이지 않다. '씨발'이라는 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모습에서 친근감을 주다가도, 위화감을 가질만큼 지나친 개인주의적인 면을 기습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그냥 발음 좋은 '도쿄'가 아니라 진짜 일본사람의 '도쿄'가 입에서 나올 때면 한참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그러다가도 어눌한 말투로 "나카타 좆밥, 박지성 짱짱."이라며 웃어보일 때는 '울트라 닛폰'이 아닌 '붉은 악마'다.


현지인들이 찾을 법한 스시집에 데려간 경구형과의 대화.


"여기가 진짜 맛집이야. 아베의 입맛이 있는 집이거든."

"아베가 단골인가봐?"

"아닌데."

"총리 세프인가?"

"아닌데."


몇 차례 '아닌데'가 이어진 후에야 내려진 결론은 '총리가 먹는 좋은 김을 쓰는 스시집'이라는 뜻이란다. 이 간단한 말조차 재일교포와의 대화는 어렵다. 스시를 손으로 집어 먹는 일본 사람들, 그 속에 젓가락을 쓰는 나는 이유없을 위화감을 갖는다. 아내처럼 그냥 일본 사람을 따라 손으로 먹어도 마찬가지다.



우리말을 알아듣기는 하지만, 입으로 말할 수는 없는 '경구형'의 아내역시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의 사이에 놓여 있다. 이름은 분명 한국 사람이지만, 나와 아내에게 먼저 다가오는 모습은 '거의 일본 사람'이다. <도쿄의 마야>는 마지막 부분 의외의 메시지를 갑자기 툭 던져 놓는다.


"일본 사람들은 듣던 대로 정말 친철하네요."라는 아내의 말에 '경구형'은 "원래 일본놈들이 겉으론 친절해요."라고 답한다. 당연하다는 듯이. '일본놈'이라는 말은 '거의 일본사람'이라는 오해를 벗어놓기에 충분할 지 모르지만, 반대로 '거의 한국사람'과 사이에 놓인 '경구형'의 위치가 그대로 드러난다.


경구형이 안고 있던 아기 '마야'. 마야역시 경구형의 사촌 누나처럼 일본 성, 일본 이름 모두 따로 갖고 있다. '거의 경구형'의 얼굴을 하고 있는 조그만 생명체, 지금은 '마야'라고 불리고 있는 아기에게 나는 질문한다.


"아가야, 이름이 뭐라고?"

뺨에 눈물자욱이 말라 있던 마야는 이제 말없이 웃기만 한다.


서울에, 도쿄에, 그리고 그 어딘가에 많은 '경구형'이 있을 것이다. 우리 자신 조차 누구에겐 또 다른 '경구형'으로 비쳐지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거의 어디 사람'이 아닌 그냥 '경구형'이길, 마야역시 그저 '마야'로 존재하길 <도쿄의 마야>는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